본문 바로가기
책리뷰

구원의 서정(3)

by liefd 2024. 8. 11.
반응형

회개. 잘못을 인정했다고 용서해 주면 안된다(마 4:17)

 

교회용어사전(생명의 말씀사)에 나오는 회개에 대한 몇 가지 용어를 정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개: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 죄에 대한 자각과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깨달음, 그리고 죄인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죄성을 깊이 깨닫고 죄로부터 결정적으로 돌이키는 신앙행위.

속죄: 값을 치르고 죄나 속박에서 해방됨,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행위.

 

대속: 노예나 죄인을 자유케 하기 위해 그 빚(죄)를 대신 갚음. 남의 죄나 고통을 자기가 대신 당함, 긍극적으로는예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죄인들의 죄를 대신 감당하시고 구원하신 일을 말한다. 

 

고해성사? 회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교회에서 말하는 회개를 고해성사와 동일한 단어로 취급합니다. 그만큼 사람에게는 무엇인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한주간의 삶이 형편없었으니, 당연히 회개를 통해 이런 저란 잘못을 고백합니다. 미처 모든 잘못을 고백하기 전애 기도 시간이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면 내가 회개를 충분히 못한 것인가? 어느 정도까지 기도하고 어느 정도까지 회개해야 내 잘못이 하나님 앞에 용서되는 것인지 몰라 찜찜합니다.  

 

회개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내가 어느 정도까지 눈물을 흘려야 주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개했다고 인정해주실까요?

 

회개가 좋은 소식이라면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밤에 어느 교회의 청소년부 담당 교역자와 고 3수험생들이 차를 타고 모델촌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청소년으로서 신앙의 열정을 가지고 있던 어떤 학생이 창문을 열고 모텔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왜 이 말을 했을까요? 이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잘못 행동하고 있는 거예요! 빨리 하나님한테 잘못했다고 말하세요! 내가 죄인이라고 말하세요! 회개를 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이 여러분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회개하라고 말하는 것도 당연히 좋은 소식이어야 합니다. 

 

한번 그 모텔촌에서 죄를 짓고 있던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지나가던 청소년의 외침을 들은 그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나쁜 소식입니다. 위협이요 공포입니다. 불쾌하고 좋지 않은 말입니다. 내 잘못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이 부담으로 위협으로 들려지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누군가가 회개를 한다고 해서잘못을 용서해 주면 되는 걸까요?

 

잘못을 인정했다고 용서해 주면 안됩니다  

 

회개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잘못을 용서해 주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 유효하려면잘못과 관련된 보상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파스타 가게에 식사를 하러 갔다고 합시다. 주문을 받는 아르바이트 생에게 알리오 올리오 파스카 주세요라고 주문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메뉴가 나왔는데 까리보나라를 가져왔습니다. 주문이 잘못 들어간 것입니다. 다시 저는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시켰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르바이트 생이 깜짝 놀라며 정말 죄송합니다손님, 제가 잘못

했습니다. “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곤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서빙하러 지나다닐 때마다 죄송하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그게 끝입니다.

 

무엇이 잘못 된 걸까요? 계속 죄송하다고 말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과가 유효하려면 주문한 메뉴를 다시 가져와야 합니다. 잘못에 대한 대가, 보상이 있을 때 사과가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잘못에 대한 합당한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했다고 용서해 주다니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회개하도 지금까지 상쾌한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요? 내가 자꾸 삶에서 잘못했다고 말만 읊조리고, 실제적으로 대가를 치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외서 잘못했다고 기도하면 다 되는 것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내 죄는 큰데, 너무나 간단하고 불안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절대 용서해 주시면 안될 죄입니다. 그래서 더 쎄게 눈물도 흘려 봄니다. 과연 이렇게 회개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죄송하다는 말이 점점 과격해질 뿐입니다. 

 

회개를 이해하는 핵심 1. 속죄

 

지금 이 회개 속에는 무엇이 빠져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속죄입니다. 속죄는 죄를 배상하는 것입니다. 잘못에 대해서 보상한다는 말입니다. 죄를 갚는 보상이 없으면죄송하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보상이 없으면 회개 자체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말하는 것으로 회개가 된다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죄의 대가를 대신 치렀다면 어떤가요?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잘못에 대한 보상을 치를 때에만 죄송하다는 말이 유효합니다. 만약 내가 죄를 지어서 네가 죽어야 할 모든 형벌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다면우리는 회개할 수 있게 됩니다. 죄에 대한 대가가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회개란 나를 대신하여 내 죄를 용서해 주신 만난 자의 삶의 반응입니다. 속죄를 깨달은 자의 삶의 반응입니다. 삶의 반응은 고백, 슬픔과 감격, 죄송함과 기쁨을 넘어서 삶의 태도가 변화되며, 평생에 걸쳐 지속됩니다.

 

회개할 수 있다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회개하라는 말 역시 좋은 소식이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입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위협인가, 소망인가? 소망입니다. 죄인은 형벌을 통해서 구원하지 않으시고, 회개를 통해 구원하십니다. 회개할 수 없고 형벌을 받아야 했던 우리가 누군가 대신 형벌을 받아 회개함으로 죄를 씻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은 분명 좋은 소식입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내가 용서받는 것은 나의 잘못의 인정에 있지 않습니다. 인정했다고 용서해 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인정했기 때문에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잘못에 대한 속죄 때문에 회개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네 죄에 대한 모든 행동의 대가를 직접 치르지 않도록 대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신 예수님, 그 공로를 의지하여 나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회개 속에는 나의 속죄가 없다

 

교회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회개를 한다는 말은 내가 내 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속죄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어떤 행동으로도 나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를 수 없습니다. 속죄는 나를 대신해서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셨습니다. 참된 회개 속에는 신자의 속죄가 아니라예수님의 대속만 있다는 것을 헤르만 바빙크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참된 회개는 결코 속죄의 성격을 지니지 않습니다. 비록 사람이 회개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죄로 인해 형벌을 받아 마땅함을 인정할지라도그는 회개 가운데 죄의 형벌을 스스로 죄를 지거나 속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죄에 대한 형벌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오로지 하나님이 죄인을 죄로부타 해방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형벌이 아니라 회개를 죄인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결코 속죄의 성격을 지니지 않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왔다.” 이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당신이 이것이 눈물로 받아들여지십니까?     

 

회개를 이해하는 핵심 2. 남은 고난

 

회개한 많은 신자가 목회자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아니 목사님, 이상하네요. 아무리 회개를 해도 내가 절못을 했다면 상대에게 책임을 져야 하지 않습니까? 법적으로 내가 잘못하면 경찰이 와서 잡아가고 거기에 따른 형벌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회개했다고 해서 내가 담당해야 할 고난과 역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내 삶에서 겪게 되는 모든 결과들은 죄의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가시는 징계의 과정일 뿐입니다. 

 

앤서니 후크마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겪어야 하는 역경은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닌 부성애적인 징계입니다.” 프렌시스 투테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수를 갚고자 하는 심판주에 의한 응보의 심판과 아버지로서의 징계의 성격을 지닌 심판은 서로 다릅니다. 전자는 율법에 의한 것이고, 후자는 복음에 의한 것입니다. 전자는 진노와 증오로부터 나오고, 후자는 사랑과 긍휼로부터 나옵니다. 전자는 멸망과 죽음을 위한 것이고, 후자는 바르게 함과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전자는 악인들과 반역자들에 대해 집행되고, 후자는 경건한 자들과 믿는 자들에 대해 행해지는 것으로서, 그들을 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그들을 가르쳐서 그 후로 더 조심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

 

회개는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떨면서 형벌을 받을까 봐 공포에 사로잡힌 행위가 아닙니다. 회개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내가 지은 모든 죄에 대하여 나에게 쏟으셔야 할 모든 형벌을 예수님께 쏟으시고, 예수님이 순종하신 모든 일은 모두 내가 한 것처럼 여겨주시고, 나의 삶을 온전한 구속과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여정을 말합니다. 

 

평생 회개하는 삶

 

내가 회개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평생 회개하게 됩니다. 회개는 강요가 아니라 특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형벌 대신 그리스도의 속죄에 근거한 회개로 내 죄가 씻어지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제 나는 형벌의 길이 아니라 징계의 길을 걷습니다. 진노의 길이 아니리 사랑의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회개할 때마다 고백합니다. “예수님, 제가 회개하는 근거는 저 자신이 회개하는 열정, 회개하는 강도에 있지 않고, 예수님의 속죄의 공로에 있습니다. 

회개는그리스도의 속죄를 인정하는 소망의 사건입니다. 속죄가 있어야 회개가 가능합니다. 

 

 

 

 

 

 

 

 

 

 

 

 

 

 

 

 

 

 

 

 

 

 

 

 

 

반응형

'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원의 서정(5)  (0) 2024.08.11
구원의 서정(4)  (0) 2024.08.11
구원의 서정(2)  (0) 2024.08.11
구원의 서정(1)  (1) 2024.08.11
교회 성장 모음집  (0) 2024.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