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감사의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요셉을 들고 싶습니다. 요셉은 어머니 라헬을 일찍 잃게 되었습니다. 배다른 형들의 미움으로 결국 애굽의 노예로 팔려갑니다. 형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으로 요셉은 불행해지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식량을 사러 온 형들을 땀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 야곱이 돌아가신 후 요셉이 자기들을 해하지 않을까 그들은 두려워합니다.
요셉이 혹시 자신들을 미워하여 복수하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요셉에게 형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라고 하셨다는 유언을 꺼집어 냅니다. 요셉은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받은 상처와 아픔 때문에 불행해지고 오히려 자신을 통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미리 보내셨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형통한 신자의 비결은 분노와 미움을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로 바꾸어 오히려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신약에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감사의 인물로는 바울을 들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과거에 자신이 특별한 계시나 환상을 체험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자신이 경험한 것 때문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4절 하반절입니다.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바울은 과거의 자신이 경험한 것 때문에 자랑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에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성도들이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받은 계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찌르는 육체의 가시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1.가시 때문에 감사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당신을 찌르는 가시로 인해 감사해 본적이 있습니까? 너무 아프고 힘들었기 때문에 한번도 해보지 못한 감사가 있습니까? 사도 바울에게는 그것이 내게 떠나가게 해달라고 세번 씩이나 하나님께 기도했던 제목이 있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사도 바울에게도 자신을 쿡쿡 찌르는 가시로 인해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그 가사를 제거해달라고 세번 씩이나 기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갖고 있는 가시는 본문 7절에 보면 육체의 가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가시가 안질 혹은 간질이라고 합니다. 어떤 가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제발 그것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는 기도가 응답을 받았습니까?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본문 9절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지 않는 것도 응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기도의 응답이 거절당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응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2.거절 때문에 감사
본문 7절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사람에게는 가시가 있어야 그것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누가 주셨다고 합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도록 사탄에게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시로 인한 고통보다는 그 가시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받아들입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하게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어떤 상황이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십니까? 혹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고 섭섭해 하지 않습니까?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다고 어떤 사람을 원망하고 비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시 때문에 단 한 번도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가시 때문에 계속해서 찔림을 당하고 힘든데 감사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가시는 제거해주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가시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는 지 몰라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바울이 육체의 기사로 인하여 힘들어하는 것을 다 보셨습니다. 가시 그 자체는 찌르기 때문에 아프지만 그것을 통해 얻는 유익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크고 강하면 그것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생각지 않은 일로 인해 꺾이게 되면 주님을 찾게 됩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능력은 내 능력+하나님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내 능력이 꺾일 때 나타납니다.
3.약함 때문에 감사
본문 9절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한계를 느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크게 기뻐합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있는 여러 약한 것들을 자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와 약점들은 꺼내지 않고 덮어두려고 합니다. 누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알까 봐 두려워하거나 긴장합니다. 심지어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더 이상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갑자기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어서 그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육체의 가시가 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육체의 가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크게 기뻐하고 오히려 약한 것들을 자랑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9절 하반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자신의 약함 때문에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래서 약할 그때에 곧 강해지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곧 강함이라.”
바울은 자신의 모든 약한 것들에 대해 슬퍼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약한 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여 오히려 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기뻐하고 자랑하게 된 것입니다. 신자의 삶은 내 능력에 하나님의 능력이 합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는 만큼 강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약한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강해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은혜를 주실 때 감사하려고 하지 말고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자. 나를 괴롭히는 가시 때문에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교만하지 않게 되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베풀어주신 은혜가 네게 족하고 하십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 하나까지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감사 가운데 하나는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8살 때 배꼽 위로 수술한 자국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목욕탕에 가기를 싫어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내 수술한 부위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수술 할 때의 정황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시는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제가 하루는 배가 너무 아파서 5분 간격으로 방바닥을 데둘데굴 구르고 있을 때 새벽 2시에 전화 벨 소리가 집안에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님이 다니시던 교회에서 어떤 권사님에게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장로님 제가 방금 꿈을 꾸었는데 둘째 아들 지금 당장 병원에 데리고 가서 수술하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이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위생병원에 갔습니다. 간호사가 저금 안고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수술을 잘 마친 후에 의사가 아버님에게 하시는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만약 그때 마로 병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당신 아들은 죽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아버님에게 전화를 해주셔서 바로 병원에 달려가게 되었고 그래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사건, 그 사람, 그때 일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던 과정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사람,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람, 그 상황, 늘 그것 때문에 괴로워했던 사건이 있습니까? 그 자체는 물론 힘들었지만 그것을 통해서 유익하게 만들어 주셨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바로 왕에게서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 사건을 통해서 많이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당신을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 자체는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되었다면 그것 때문에 감사해야 할 제목입니다. 두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손양원 목사님이 한 인사말입니다. “제가 이 시간에 무슨 답사를 하고 무슨 인사를 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서 몇 말씀 드립니다.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장례예배는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손 목사님은 슬퍼하기보다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하고 찬송을 힘차게 불렀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에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해 본적이 없고, 감사하다고 말해본 적이 없는 그것 때문에 감사해보십시오.
막힌 것이 뚫어지게 됩니다. 상처가 치유됩니다. 악한 영이 떠나가게 됩니다. 당신을 그렇게 오랫동안 눌러왔던 것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당신의 분노와 미움이 눈과 같이 녹게 됩니다. 하나님 그것 때문에 너무 마음이 아팠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영적인 회복의 기회가 되었다면 감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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