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이 살아가는 스타일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스타일과 그 자리에서 맴도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 자리에서 맴돈다는 것은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나 능력 있는 교회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진취적이고 추진력을 발휘하며 활발하게 전진합니다. 그러나 능력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은 소극적이며 침울하고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있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예배하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이대로 좋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열심을 내거나 목숨 걸고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하고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려고 하면 히브리서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의 상태를 점검하려면 일 년에 한번은 꼭 히브리서 전체를 정독하고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 히브리서 12장과 13장은 종말을 준비하는 믿음의 삶에 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특별히 교회를 봉사하는 사람들 즉, 직분자들이 놓치지 말고 기억해야 될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2:1을 다같이 읽겠습니다.“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브리서의 저자는 종말신앙을 경주하는 사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목표성을 말합니다. 사람이나 교회나 목표를 세우지 않고는 달릴 수 없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목표가 있어야 목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목표가 있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경주하는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서 3:12절 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14절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어떤 목표로 달려 가야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 잡힌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야 됩니다. 처음부터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먼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향하여 달려가야 할 것인가라는 목표를 정해야합니다.
고린도전서 9:24-26 절입니다.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열심이 대단하고 믿음이 뜨거운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신자의 믿음을 운동장에서 달리는 경주자들의 모습에 비유합니다. 목표도 없이 무작정 달리는 모습은 향방 없는 것 같이 허공을 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도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혹시 목표도 없이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가 목표를 세우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1. 목표는 장애물을 이기도록 해 줍니다.
본문 1절입니다.“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달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왜 경주하는 사람에게 인내가 필요합니까? 마지막까지 달리는 것,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 버리라고 합니다. 달리는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제대로 달릴 수 없습니다. 또한 얽매이기 쉬운 죄에 끌리게 되면 힘들어서 달리지 못합니다. 달리는 사람은 또한 어떤 유혹이나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고 도중에 탈락하게 됩니다. 달리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내하며 달려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짐과 유혹의 죄를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조금 만 더 참으면 해결되는데 그냥 포기하고 맙니다. 그래서 목표를 정하라는 것입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이런 장애물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최후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너무 많은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감당하기에 벅차고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배신과 채찍에 맞고 침 뱉음을 당하십니다. 사람들의 죄를 홀로 져야하는 그 무게는 예수님이 지시기에는 너무 힘든 것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이런 저런 무거운 것들 때문에 목표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인내하시고 결국 목표를 다 이루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들로 인하여 세운 목표가 흔들리는 분은 없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런 것들을 개의치 않으신 예수님처럼 여러분도 참고 가셔야합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여기서 끝내는 것은 절망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말하면서 주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9-21절입니다.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살아야합니다. 예수님은 목표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목표를 이루어야합니다. 물론 우리 앞에는 무거운 짐도 있고 유혹도 있고 고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들을 개의치 않고 달려갈 수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세워진 사람은 그 목표를 향하여 끝까지 이루기 위하여 온갖 것을 참으며 마지막까지 달려갈 때 승리자가 됩니다.
2. 목표는 이탈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 줍니다.
교회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교회의 목표는 이를 위하여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서로가 격려하고 힘을 모아 같은 방향으로 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목표를 모르는 사람은 공동체로부터 이탈하게 됩니다. 한교회의 가족이지만 목표를 같이하지 않을 때 생각이 다르고 말하는 것이 다르며 행동하는 것도 다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나 아픔들은 대부분 생각의 차이로 인하여 일어납니다.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목표가 같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4:3절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로마서12:5절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교회에서 서로가 하나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되지 못한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생각하며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그 이유는 하나 되지 않고 서로 이기적이며 성도끼리 싸움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제발 하나 되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고린도전서 1:10절입니다.“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우리 교회의 성도들도 이 말씀을 잘 들어야합니다. “온전히 합하라”는 것은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 되게, 뜻을 하나 되게, 말을 하나 되게 해야 교회가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분열되는 원인은 마음이 둘로 나눠지기 때문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을 강조했던 사도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으면 정함이 없는 자라고 합니다(약1:8). 마음이 성결하게 하려면 두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합니다(약4:8). 하나 된다는 것은 같은 목표를 향하여 달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되지 않을 때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고 공동체는 서로 틈이 생기고 벽이 생겨 공동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앞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은 하나 되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것은 우리만이 해야 될 일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일입니다.
에베소서 2:14-18절입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을 십자가에서 소멸하시면서 둘이 화목하여 하나 되도록 만드신 분이십니다. 우리도 이런 목표를 가져야합니다. 서로에게 화평을 만들어 내는 피스메이커(peacemaker)가 되어야합니다. 용서하고 섬기고 베풀고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 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마지막 유언적인 기도를 하실 때 “하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7:21-23절입니다.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우리의 기도도 예수님의 기도처럼 하나 되게 하는 사랑의 기도, 목표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 입을까하며 자신의 욕망이나 만족을 위하여 부르짖던 기도에서 예수 안에서 하나 되고 교회가 하나 되고 성도가 하나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제 서로 같은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교인수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 되지 못함에 있습니다. 둘이 라도 하나 되면 대립하거나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둘이라도 하나 되지 않으면 서로 이탈하고 떠나려고 몸부림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모든 성도가 하나되어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3. 목표는 차원 높은 삶을 살도록 해 줍니다.
본문 12, 13절입니다.
“12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일반인들은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과 저는 다리로 불안한 삶을 삽니다. 어디를 가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모두가 나름대로 살면서 걱정이 있고 염려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위험과 위기의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내일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오늘 경제가 좋다고 해서 내일도 좋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오늘 몸이 건강하다고 내일도 건강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이나 기업이나 경제나 세상은 불안해 할까요? 참된 목표를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잘 들으셔야 합니다. 차원 높은 삶과 차원 낮은 삶이 있습니다. 상류사회냐 하류사회냐, 빈이냐 부이냐, 약자냐 강자냐에 따른 높고 낮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6-10절입니다.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이 세상을 믿고 사는 사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 고아처럼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 사랑을 받으며 사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사람은 정말 차원이 다르게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사는 의미가 다르고 인생의 목표가 다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미움 속에서 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며 외롭게 사는 사람은 사는 의미도 잃게 됩니다. 인생의 목표도 망가지고 하루하루 자포 자기한 모습으로 처절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히브리서 저가가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의 의미를 잘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징계, 채찍질이라는 말이 크게 들리면 안 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10절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징계나 채찍질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우리의 유익과 거룩하심에 참여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배려이며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삶의 차원이 다릅니다. 어려움이나 힘든 과정들 속에서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더욱 연단을 통하여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삶이 성숙한 삶이고 종말에 지켜야 할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들었고 이해하고 깨달았습니까? 중요한 핵심은 목표입니다. 인생의 목표, 믿음의 목표, 교회의 목표, 사역의 목표, 가정의 목표를 정하셨습니까? 아직 목표를 정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오늘 한 가지 목표를 정하라고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본문 2절의 말씀인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제1 목표입니다. 예수에게 눈을 맞추십시오. 마음을 맞추십시오. 삶을 맞추십시오. 그리고 말씀하시고 만나주실 때까지 바라보십시오. 그렇게 할 때 그가 길을 보여주시고 진리로 인도하시고 생명을 주셔서(요14:6) 승리의 노하우를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목표가 정해진 사람은,
첫째, 장애물을 이기도록 해 줍니다.
둘째, 이탈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 줍니다.
셋째, 차원 높은 삶을 살도록 해 줍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사도 바울의 목표는 사명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명의 목표를 향하여 마지막까지 달려온 것입니다.
저와 성도 여러분들도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주 예수를 바라보며 나에게 주신 사명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여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2장과 13장을 이번 주에 깊이 묵상하며 읽고 어떤 믿음의 목표를 세워야 하는지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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