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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리콴유 - 작지만 강한 싱가포르 건설을 위해, 김성진 지음

by liefd 202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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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시대를 만든 인물이라는 평가다. 리콴유(李光耀, 1923~ ) 전 싱가포르 총리는 동갑내기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로부터 이와 같은 극찬을 받았다. “시대가 인물을 만드느냐, 아니면 인물이 시대를 만드느냐 하는 오래된 논쟁에서 리콴유는 후자가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했다

 

그는 2007223일 연례 신년 만찬회에서 싱가포르는 제1세계의 하층부에 올라왔지만 앞으로 10~20년 안에 세계 최상층부(top half of the First World)로 진입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과감한 개방, 삶의 질 개선 그리고 최고의 거주 환경과 자녀 교육 구조를 제공해 최고급 선진 인력을 끌어들여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콴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석을 할 정도의 뛰어난 머리도 있었지만 그 비결은 정작 따로 있다.

 

그 첫째 비결은 국가에 대한 헌신과 진정성이다.

 

그의 일생은 작은 섬나라 싱가포르의 생존을 위한 외길 투쟁이었으며, 권력을 행사할 때는 한 치의 잘못도 용납하지 않았다.

 

둘째 비결은 국가의 발전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에게서도 거리낌 없이 배우는 실용주의 정신이다.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에게서조차 배울 게 있다면 당당히 배웠으며, 도움이 된다면 싱가포르 정책에 반영하기도 했다. 이데올로기나 민족주의 따위도 싱가포르에서는 발붙일 곳이 없다. 또 싱가포르에서는 능력만 있다면 내국인, 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능력 있는 다른 국가의 젊은이들을 유치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셋째 비결은 안정을 추구하기보다는 변화와 진보를 선택하는 모험 정신이다.

 

리콴유는 권력자이면서 변화와 모험을 통해 싱가포르를 더욱 살기 좋은 나라로 발전시키려 했고, 국민들도 자신을 따라 같이 노력해 줄 것을 끊임없이 부탁하면서 이끌었다. 권력에 도취해 권력 행사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넷째 비결은 한번 세운 원칙은 어떤 난관이 있어도 지켜 냈다는 점이다.

 

마지막 비결은 능력주의와 업적주의다.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까지 단결과 투쟁으로 지켜 내려 하는 노조운동이 싱가포르에서는 발붙일 수도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적했듯이 싱가포르 국민은 삶의 질을 올려 주면 계속 권력을 보장해 주겠다는 일종의 거래를 통치자와 하고 있는 것 같다.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민의를 활발히 논의하는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각 개인이 누릴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리콴유가 일본 점령기 시절 배운 교훈 가운데 싱가포르에 그대로 적용된 사례는 아무래도 엄벌주의 법 집행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들은 싱가포르를 좋은 나라(fine country)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그 의미는 벌금(fine)의 나라라고 조롱하는 뜻이 담겨 있다.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지 않거나 침을 뱉어도 벌금을 물어야 한다. 물론 콘도미니엄에서 모기에 물리면 관리를 잘못했다고 해서 손님이 배상을 받기도 한다.

 

리콴유는 군 건설 초기부터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혹은 그에 준하는 명문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국군 장학금을 만들었다.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이들 군인들은 전공에 관계없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대학의 전 과정을 국가 장학금을 받아 유학할 수 있었다. 월급뿐만 아니라 학비, 생활비 등 일체를 지급해 주었다. 조건이 있다면 유학 이후 8년 동안 군에서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 군대는 무조건 갔다 와야 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상상하기 힘든 특혜를 주었다. 따라서 군에서 능력만 발휘한다면 싱가포르에서 충분히 유능한 인재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싱가포르 정부는 의무 복무를 마친 군부 엘리트들을 정부 관료나 정부 산하 위원회에 우선적으로 임용함으로써 이들을 싱가포르 정부의 엘리트로 충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군의 우수성도 높일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인재 자원을 탄탄하게 만드는 효자 노릇을 했다.

 

리센룽 총리는 민중주의, 획일적 평등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엘리트 교육을 포기하고 교육의 평준화를 고집한다면 국가의 열등화와 사회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해 결국은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까지 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1997년부터 생각하는 학교(Thinking Schools)와 배우는 국민(Learning Nation)’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학업 성적보다는 문제 해결 능력과 사고력, 창의력 배양에 초점을 맞춘 교육 개혁을 추진해 왔는데 그것이 바로 싱가포르 스타일의 사회민주주의였다. 싱가포르의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절묘하게 섞여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함한 사회주의 요소가 아주 강하지만 사유재산이 인정된다. 가장 큰 특징은 개인보다는 국가 이익과 공동선을 유지하는 데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리콴유는 플라톤이 얘기한 지배층의 영혼을 정화하라!”는 것이 싱가포르의 국운을 좌우할 것이라고 믿었다.

 

싱가포르에서 상류층이 되려면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리콴유 정부는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실험 정책의 하나로 클린 & 그린(Clean & Green Singapore) 정책을 오랫동안 실시해 왔다. 리콴유는 회고록에서 세면대가 부서지고 수도꼭지가 헐겁고 수세식 변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주변이 황폐해지고 정원이 흐트러졌다는 것은 한 나라가 부패했다는 증거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가 솔선수범하면 당연히 국민들에게도 같은 요구를 하게 마련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독한 공공질서 유지 정책이다. 거리에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리면 500싱가포르 달러(한화로 약 35만 원 상당)의 벌금을 내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흡연도 엄격히 금지된다. 특히 담배는 금연 캠페인의 일환에서 면세가 없다. 무단 횡단을 해도,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지 않아도 벌금을 낸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불편하게 생각했지만 습관이 되어 싱가포르는 더욱 쾌적해졌다.

 

실리와 원칙, 약소국 외교의 본보기가 되다

 

첫째, 싱가포르는 국가의 이념이나 정체政體에 관계없이 선린 우호 관계를 유지한다.

 

리콴유는 싱가포르 안에서는 공산주의를 가혹하게 탄압하지만 대외 관계에서는 공산국가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하고나 무역하고 거래하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는 이웃이면서 이슬람 정체성을 가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구축에도 노력하지만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돈독하다.

 

둘째, 싱가포르는 국제사회에서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생존은 싱가포르의 손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다.

 

셋째, 싱가포르가 지켜야 할 국익이나 원칙이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켜 낸다.

 

강대국이 싱가포르 입장에 맞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경우에도 어떤 난관이 있어도 원칙을 지켜 낸다는 정신이다.

 

기본 원칙은 국가적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킨다

 

리콴유 경제 정책의 특징은 대외적으로는 완전 개방 체제를 만들어 해외 자본 유치에 국운을 걸었다는 점이다.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싱가포르 시스템을 바꾸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해외 자본 유치에 모든 것을 건 이유는 싱가포르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공무원의 기본 정신은 비즈니스 마인드

 

정부가 똘똘 뭉쳐 외국 기업 유치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제조업의 경우 관세를 3%까지 내렸으며, 법인세는 40%에서 4%까지 낮췄다. 수입 설비에 대해서는 아예 수입세조차 면제해 주었다. 싱가포르 경제의 빨간불이었던 노조 운동을 완전히 와해시킨 것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국가가 임금 인상에 직접 개입하는 국가임금위원회(NWC)1972년에 출범시켜 임금 인상이 생산성을 절대 앞지를 수 없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도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이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변화의 리더십

 

리콴유 리더십은 시대를 앞서가는 변화의 리더십이다.

 

대체로 권력을 장악하면 권력 유지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대 흐름을 소홀히 하거나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리콴유와 그 후계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변화를 견인한 주인공들이다.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을 때마다 앞서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변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불가능하다며 이끌고 나아갔다. 이것이 바로 작은 섬 싱가포르가 생존을 넘어 초일류 국가로 쉴 새 없이 달려온 비결이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 국민들도 스스로 변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고통은 분담할 각오가 되어 있다.

 

리콴유 리더십은 유연한 실용주의이면서도 확고한 원칙을 내다보고 싱가포르 국민이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예측했고 그런 전통은 그 후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1965년에 리콴유가 3세계에서 제1세계를 창조한다는 전망을 제시했을 때 그 누구도 그 꿈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리콴유는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싱가포르를 완전한 대외 개방 체제로 전환했다.

 

해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싱가포르가 변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 리콴유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해외 기업이 들어올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싱가포르의 모든 요소들국민의 문화 수준, 환경, 교육, 언어을 국제화해야 했다. 심지어 클린 & 그린 싱가포르라는 구호까지 내세워 정원의 풀 한 포기, 가로수 한 그루까지도 정성을 기울여 가꾸었다.

 

물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가혹한 형행 제도를 시행해 벌금공화국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지만 리콴유는 개의치 않았다. 리콴유의 리더십은 한번 원칙을 세우면 어떤 장애가 있어도 마침내 이루어 낸다는 집념의 리더십이었다.

 

경제 정책에서도 제조업 중심의 발전이 한계에 부딪히자 금융, 교육, 의료 등 서비스 허브로 발전할 전망을 제시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21세기 들어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그리고 태국이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중국과 인도가 떠오르자 첨단 기술 연구개발(R& D) 허브로서의 싱가포르를 내세워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바로 리더십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리콴유 리더십은 인재 양성에 사활을 걸었다.

 

자원이 없는 싱가포르는 이 문제를 인재 양성으로 해결해 왔다. 그 결과가 바로 정부 경쟁력 세계 1위라는 사실로 증명되었다. 리콴유를 비롯한 역대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인재 구하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왔다. 또한 국내에서 구할 수 없다면 다른 나라에서 구하겠다는 신념으로 임했다. 지금도 싱가포르 정부의 인재 찾기는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리콴유는 스스로 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하기도 했지만, 인재 등용에 관한한 서구의 경영 이론을 뛰어넘는 파격으로 일관했다. 정부의 중앙부처 국장에 20~30대가 즐비한 것은 오래전 얘기다. 심지어 연공서열이나 명령 체계가 생명인 군부의 참모총장급 지도자 중에는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어 40대 전후의 지휘관이 수두룩하다.

 

리콴유의 리더십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칙에 철저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정부패와의 전쟁이다. 부패에 연루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권력자나 관료들의 특권도 직무에 따른 개인에게만 허용된다. 리콴유는 총리 시절에도 전용기를 이용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싱가포르 공연장에는 고위 관료들을 위한 특별석이 있지만 철저히 관료들에게만 개방되며 가족은 일반석으로 가야 한다. 리콴유 총리 재직 시절에 그의 부모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늘 일반석을 이용했다는 것은 싱가포르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리콴유의 리더십은 철저한 능력주의와 업적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리콴유가 불법 노조와 투쟁을 전개할 때 열등한 노동자를 지키려는 노동조합 운동은 피해야 한다. 모두가 똑같은 임금을 받게 된다면 그 누구도 열등한 노동자보다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까지 강조했다. 사람은 누구나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리콴유 리더십의 일관된 원칙이었다.

 

싱가포르 교육제도는 철저히 능력주의와 업적주의에 따라운영된다. 능력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가능한 일찍 걸러 내 국가 차원에서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주도록 하고 있다. 군대의 지휘관이나 공무원도 능력이 없으면 진급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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