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5장 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홍해바다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이 삼일도 가지 못하고 또한 어려운 상황 앞에서 원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기 15장 22-23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니”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하나님을 사랑을 알고 구원의 기쁨을 찬양한 후에 언제든지 마라의 쓴물과 같은 어려움과 고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 가운데서 목회자와의 관계에서 쓴물을 만났습니까? 가정생활 가운데 남편이나 아내와의 관계에서, 고부간에, 부모와 자녀 간에 쓴물을 만났습니까? 사업상의 어려움으로, 질병의 쓴물을 만났습니까? 그렇다면 염려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운 일들을 주시는 것은 결코 우리를 괴롭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쓴물을 달게 변화시켜 주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은 ‘부부가 화해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헤를 나누고자 합니다. 혹시 부부 사이의 관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부부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만났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할 대상이 미움이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로 원망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등, 부부간의 쓴물로 인해 가정의 울타리가 점점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무조건 기도만 한다고 해서 부부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반드시 성경에서 아내와 남편에게 하시는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각자 자기의 법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의 법과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의 법과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서로 다른 법과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계속 평행선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먼저 부부 간에 쓴물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 가지 지켜야 할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이제 자신의 법만을 더 이상 주장하지 말고 하나님의 법아래 들어가자는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더 이상 자신의 경험이나 기준을 내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부가 결혼하여 가정을 세워 가도록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를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만드신 그분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부부가 하나 되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앞으로 결혼하게 될 청년부와 중고등부, 유초등부 어린이들을 위하여 권면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결혼 상대자를 구할 때 외모와 제산이나 학벌에 비중을 두지 말고 신앙생활 잘하는 가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면 서로 법이 다르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각오를 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결혼해서 예수 믿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20년 이상 속 썩어야 한다는 각오를 하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이 성경 말씀에 대한 믿음 안에서 하나 되는 축복을 우리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내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절 말씀입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와 같이 아내 된 자는 자기 남편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하돠 “이와 같이” 하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베드로전서 2장 23-24절 말씀입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이와 같이”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욕을 당하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않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말합니다. 마찬 가지로 아내들이 남편에게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혹 도를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라도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 남편이 아내들에게 서운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고 무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자신이 잘못했으면서도 자신이 잘못햇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를 물었을 때 아담이 어떻게 대답합니까? 창세기 3장 12절 말씀입니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즉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아내 탓으로 돌립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탓으로 돌립니다. 이때부터 남편은 가정에서 뭐가 잘못되면 “당신 때문이야”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대개 남편들은 자신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로부터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아내들은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가장으로 세우신 이유를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비록 남편이 부족하더라도 세워주고 인정해 주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내들이여! 당신의 주장을 남편에게 관철시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남편들은 아내가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좀처럼 변화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아내는 말로 꺾이는 것을 죽는 것보다 더 싫어합니다. 말없이 져주면서 아내가 행동으로 자신에게 감동을 시켜주는 것을 바랍니다. 그래서 아내가 먼저 변화되면 남편이 덩달아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을 단장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전서 3장 3-4절 말씀입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믿음의 가치관을 가지고 마음에 온유함과 신실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아내는 순종하는 자세로 감동을 끼치고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가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들에게만 순종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남편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요구하십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끼는 차원에서 압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으시고 교회를 위하여 주셨듯이 남편은 아내를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 말씀입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남편은 먼저 아내의 지식을 따라 동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사정을 깊이 헤아려 주고 함께 느껴 주고 공감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여자는 남자와 다른 존재로 연약한 그릇이라는 자체를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입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영생의 축복을 함께 누리게 될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요 보배로운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무엇보다 남편은 아내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기도의 문이 막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을 세우신 목적인 손을 들고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축복 기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따라서 남자에게 있어서 기도의 문을 막히는 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남편은 아내를 연약하고 소중한 존재요, 영원한 파트너요 중보기도자인 것을 깨닫고 사랑으로 압도하고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자요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화해하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나 때문에 다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잘 해야 합니다. 자녀들 때문에 부모님이 화해하고 믿음이 좋아지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축원합니다. 부부는 자녀들 앞에서 다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부부가 자녀들 앞에서 다툴 때 자녀는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고 자신감을 잃게 되고 심지어 결혼의 꿈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부간의 관계가 정말 행복하게 볼 때 자녀들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게 되고 그 후손이 자자손손 복을 받게 됩니다. 부부가 서로 화해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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