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토마스 오덴(Thomas Oden“은 “설교는 사람을 구원하고 회심시키며 그들의 행위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이다”고 말했다.
제 1부 하나님의 생명을 전하는 설교
제 1장 메시지의 소통 : 이 책을 먹으라, 유진 피터슨
목회자들은 성경 말씀을 듣는 영혼들 속으로 들어가서 이 내용을 그저 하나님의 정보로 머리에 저장해 두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경배, 그리고 거룩한 삶으로 빚어질 수 있도록 성경을 설교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 책에서 전해오는 말씀이 요한의 귀에는 일곱 우렛 소리로 들려 왔다(계 10:1-3). “나는 이 말씀들이 종이 밖으로 나와서 귀로 들어가고 삶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노라. 나는 이 말씀들이 설교로 전달되고 노래로 불려지고 가르쳐지고 기도로 울리면서 살아나기를 원하노라.”
에스겔도 책을 먹으라는 명령을 들었다(겔 2:8-3:3). 또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계시, 거룩한 말씀을 바당 먹었다(렘 15:16).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지 못하도록 광범위한 압력들이 내리 누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목회자로서 이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먹이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먹어야 한다.
무한한 성경의 세계
우리는 마치 이 세상이 본래 현실이고 성경은 다만 이 세상을 돕거나 교정하기로 된 보조 세계라도 되는 것처럼 ‘성경을 오늘날의 세상과 연관되도록 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성경은 우리가 배워온 어떤 교리나 실천 사항을 증명하거나 성립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끼워 맞춰진 본문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고…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신 세계로 안내한다(고전 2:9-10 참조).
순종
하나님에 관한 모든 올바른 지식은 순종에서 나온다(칼빈)
만일 우리가 성경에 계시된 현실세계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또 칼빈이 업급했던 순종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면, 우리는 아마도 성경 읽기에 많은 관심을, 최소한 오랫동안은 기울이기 어려울 것이다.
순종이란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구체적인 행위이다. 본문에 관해 우리가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본문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나는 묻엇을 순종해야 하는가?이다.
“당신은 이 내용대로 살아봐야 해, 그러면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밖에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어요. 그 말씀 속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그 말씀이 당신 속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해요.”
예전적인 목회자
예전은 교회가 성경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다듬어가려고 할 때 살아있는 거룩한 공동체와의 생생한 접촉을 계속 유지하도록 하는 수단이다.
예전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로, 예전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믿으면서 경배하며 정성을 바치는 장소인 지성소 안으로 인도한다. 그 다음에 예전은 다시 우리를 지성소로부터 끌어내서 다시 세상 속으로 순종과 사랑의 장소로 안내하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선 제물로 살아가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한다.
예전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셨고, 지금도 행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행하실 모든 것들의 중심부에 머물러 있는, DEPQO하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라는 정황 속에서 성경을 간직하며 또 이를 펼쳐 보여준다.
제 2장 성결을 설교하기, 하나님의 속성과 그리스도인의 성품, 제임스 얼 매시
사도 바울이 설교와 목회에서 추구했던 목표는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었다(골 1:28)
이와 동일한 목표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기록된 베드로 자신의 고백이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거룩하심 :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인간 차원에서 자신의 거룩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계시의 핵심인 동시에 현실이시다. 복음서 기록된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그분 삶의 핵심은, 육신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현시하는 것이다(히 1:3; 요 12:45, 14:9; 엡 1:3-6)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통한 기독교적 성결
기독교적 성결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것이다(엡 4:24)
1.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말미암은 거룩은 첫째로 개인적인 거룩이다. 그래서 기독교적 성결에 관 한 설교는 청중 앞에 더 충만하고 풍성한 경험에 관한 가능성과 필요성, 탁월성, 그리고 그 유효성들을 제시해야 한다.
2.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거룩은 또한 확인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기독교적인 성품을 “습관적인 의지”와 동일시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에 본능적인 관심을 갖는 통일성있는 완벽한 자아이며 변화한 의미를 의미한다. 우리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에 온전히 복종할 때 성령은 직접 우리 안에서 큰 능력으로 역사한다.,
기독교적인 성품은 “그리스도 닮기로 가장 잘 설명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 쉽게 드러난다(갈 5:22-23)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할 때”(고후 7:1),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은 거룩하고 새로운 무르심에 순종하도록 우리를 다듬어 가신다.
3.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거룩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발생했고 지금도 진행되는 것들에 대해 주위를 기울이며, 그것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설명할 수 있다.
4.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거룩은 또한 우리에게도 유익을 가져다 준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공유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의 운명을 미리 ㅈ둔비할 수 있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율법의 완성인 사랑과 더불어 율법의 요구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한다(롬 13:10, 5:5)
“그리스도의 복음은 종교 그 자체보다는 사회적인 종교를 말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성결이 아닌 사회적인 성결을 강조한다-존 웨슬리
제 3장 하나님과의 만남으로서의 설교, 대리어스 솔터
설교를 염두에 두는 본문이라면 어느 본문이든 설교자는 이 본문에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폴 스캇 월슨은 “성경 분문으로부터 하나님은 누구이신지에 관해, 또는 하나님께서 무슨 일로 하셨고, 또 지금도 무엇을 하고 계시며 무슨 약속을 하셨는지를 선포하여 이를 성도들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일을 결코 멈추자 말라.”
하나님은 의사소통의 전문가이다
1. 말씀을 보여주기
아브라함 헤셀은 “하나님의 이미지는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불타야 한다
성경의 이미지들은 무제한적이다. 즉 무제한적인 죄와 무제한적인 사랑, 그리고 무제한적인 은혜를 전달하고 있다.
2. 말씀의 감정이입
맥 빠지고 지루한 설교는 인생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관점이 부족함을 드러낸다.
헤셀은 이렇게 말했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분석해 보면 이들ㅊ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체험은 하나님의 느낌과 하나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설교자의 마음 속에 사랑과 분노, 질투, 실망, 그리고 기쁨과 같은 하나님의 감정들을 촉발시킨다.
오늘날 설교에서 보이는 점잖고 기사도적인 방식은 강단의 효과를 더욱 떨어뜨릴 뿐이다. 말이 효력을 나타내려면 먼저는 감동적이어야 한다. 사소한 일로 마비;되어 졸음에 빠진 사람들을 깨우려면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열정과 긴박감이 핑요하다. 선지자들의 메시지 전달은 강렬한 정도로 뜨겁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이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 23;29).
3. 말씀을 연관성 있게 연결하기
사실 알고 보면 성경보다 더 실제적인 책은 없다. 성경 진리를 시간을 초월하여 사실 그대로를 담아낸다.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는 이야기들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통한다. 용서와 사랑, 그리고 친절 뿐 아니라 탐욕과 욕망, 시기, 배반, 속임수, 탐욕, 악의 것들은 인생의 단골소재가 아닌가?
다윗의 인구조사로 인해 칠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고 말았다. 다윗의 살인과 간음 때에는 단지 한 사람의 생명만 취하셨는데 인구조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칠만명의 목숨을 앗아가셨다. 인구 조사가 뭐 그리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이 죄악의 핵심은 하나님의 신뢰에 대한 부족이었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계산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는 일에서 실패한 죄악이었다. 열개의 검과 하나님을 더한 것은 여전히 하나님 한 분이다. 백 개의 검에 하나님을 더해도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천개의 검도 마찬가지이다. 정말로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이다. 검도 없이 골리앗을 무너뜨렸던 건장한 청년은 어느덧 검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우리의 성도들을 바보처럼 대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을 만났던 설교자만이 청중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다.
제 2부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설교
제 4장 은혜의 복음, 빌리그래함
복음의 위력
내게는 고린도 사람들이 복음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할 만한 어똔떤논리력이나 논증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이런 답변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바울이 십자가에 담긴 놀라운 능력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몇 가지 확실한 가정들
a. 사회적 개선이나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사람들의 필요를 전적으로 충족시킬 수 없다.(눅 12:15).
b. 그리스도가 없는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는 본질적으로 공허함이 있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는 파스칼의 통찰은 정곡을 찌르고도 남는다.
c. 우리의 청중들은 고독하 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우주적인 고독이라고 표현한다 내 친구들 중 하나는 정신과 의사의 이면서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언젠가 나는 그 에게 이렇게 물었다. 자녀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찾아오는 환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독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하나님을 떠난 고독이 자리하고 있다네
d. 우리는 복음을 설교할 때 죄책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한다. 런던에 있는 한 정신과 병원 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만일 환자들에게서 죄책감을 제거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나는 입원한 환자들 절반을 당장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계란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이며, 십자가 그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해주라!
e. 모든 이들의 마음에는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두려움이 있다. 텔레비전이 계속 죽음을 완화시킨다 해도 미묘한 두려움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영광스러운 소식을 접한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죽음을 폐기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그는 죄와 죽음 그리고 지옥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셨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이다.
복음 전파에 관한 몇 가지 원칙들
a. 권위를 갖고 복음을 선포하라(롬 10:17)
스펄젼이 말했던 것처럼 “본문 말씀은ㄹ 붙들고 즉시로 십자가로 나아가라!”
사드 보넬 박사는 프린스턴 신학교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만일 여러분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에 힘입어 설교하면 성도들은 여러분읭 므성이 아닌 또 다른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b. 복음을 단순하게 설교하라
에딘버러에서 사역했던 제임스 스튜어트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청중이 머리를 향해 메시지를 전했다면 목표를 잘못 정했다는 것이 곧 입증될 것이다.
C 반복적으로 설교하라
글라스코에서 사이가는 제임스 데니 교수는 예수께서는 아마도 500번 이상을 반복해서 언급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d. 절박한 자세로 복음을 설교하라
당신이 복음을 설교할 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생의 마지막이 마지막 기회 일수도 있다.
e. 설교자는 자신의 거룩한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당신의 설교는 당신의 인격에서 우러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걸어간 사람이 이어야만 한다. 로버트 맥체인은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고 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 고백한다(고전 9:27.)
마귀가 복음전도자를 공격하는 세 가지 공격루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돈과 도덕성 그리고 자만심이다 당신은 평생에 걸쳐 이세 가지와 싸워야 한다.
f.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복음을 소통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g. 우리는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스톡홀름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목사님은 어디에서 동기부여를 받았습니까? 제 부친의 복음주의 설교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h. 우리는 성령 안에 일치 속에서 복음을 전한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며 서로 협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자 임무다.(엡 4:3)
제 5장 성경의 권위를 선포하기, 엘리자베스 악트마이어
정말로 에례미야가 말한 것처럼 그 말씀이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고 뼈를 불사르는 뿔과 같다면, 설교는 당연히 이를 듣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자유를 가져다 주고 그들을 변화시키는 구원의 역사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예레미야 2:4-13의 법정 기소문 중에서 여호와는 자신을 생수의 근원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같은 구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사막에서 물을 가두지도 못할 터진 웅덩이를 스스로 파기 위해 이스라엘이 무진장한 생수를 팽개친 것을 고소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구절을 신약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요한복음 4장 10-14절과 연결된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즉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칠 장 38 절에서 주님은 자기 나오는 자들의 심령에서 솟아나는 생수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이렇게 구약 본문에 대한 신학의 대칭 구조들은 구약에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성도들 역시 어디에서나 영원한 생명수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제 3부 준비된 설교자
제 6장 설교자의 거룩, 맥시 더남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최상의 요구는 목회자 개인의 거룩함이다. 목사님은 진정 거룩해지고 싶습니까?나는 정말로 거룩해지기를 원하는가? 나는 정말로 내가 원하는 만큼 그렇게 줄 수 있음을 계속 확인해 오고 있다.
가장 먼저 확신있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리더십으로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결실과 진보는 그의 인품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하다.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세상의 요구는 목회자 개인의 거룩함이라는 맥체인의 조언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목회자의 인격적 성숙을 방해하는 2번째 요소로, 고용 안정에 대한 필요와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 바로 목회자의 자전이동이다. 사육지를 자주 바꾸면 사에게 문제점을 분명히 파악하거나 자신의 인격과 상품에서 개발하는 문제들을 직면할 기회도 사라지고 만다. 또 다른 요소는 과중하고 비현실적인 기대감이다 목회자의 인격적 성숙을 방해하는 다른 장애물로는 높은 기대감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족의 압력도 목회자의 인격 성장을 가로막고 거룩을 추구하는 우리의 노력에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목회자인 우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 한다.
1. 나는 가능한 솔직하게 생활하면서 특정한 이미지로 자기를 꾸미려는 유혹에 잘 저항하고 있는가?
2. 나는 그럴 때 보이는 타인의 칭찬과 그에 따른 자기만의 잘 대처하고 있는가?
3. 나는 고용 안정과 경쟁 의식의 유혹에 대응하면서 주교로부터 부름받은 소명들을 분명하게 유지하고 있는가?
4. 시간 활용과 영적 훈련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혹시 나는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가?
5. 자신의 결정과 선택에 따른 결과로 인해 타인을 비난하지는 않았는가
이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도전이다. 다음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라
1.나는 지금 성장하고 있는가 ?
2.나는 변화를 원하는가?
3.거룩헤지려는 나의 열망은 얼마나 간절한가?
성인들의 작품에 몰두하면서 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공통점들이 있음을 발견했다. 성인들은 경건훈련을 실천했으며 그중에 핵심은 기도였다. 성인들은 순종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성인들은 황홀경을 추구하지 않고 대신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성인들은 선교를 갈망했다.
제 8장 강해설교란 무엇인가, 해돈 로빈슨
참된 설교란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설교자의 인격과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능력의 통로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 속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오늘 자신의 백성들에게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며 그리스도다운 성품이 더욱 성장하고 더욱 풍요로워지도록 도우시기 때문이다(딤후 3:15-17)
강해설교의 정의
성경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해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의 진리 앞에 서게 하는 설교가 바로 강의 설교다. 강의 설교란 성경 본문에 원래 맥락에서 역사적 문법적인 문법적 및 문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얻어지고 천수된 성경적인 진리를 성형 하나님께서 먼저는 설교자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고 그다음에는 설교자를 통하여 청중에게 적용시키는 의사소통을 의미한다.
강해설교의 목적
강해설교와 성경의 근적인 목적은 성령께서 이를 사용하셔서 사람들의 삶과 운명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제 9장 예배로서의 설, 윌리엄 윌리몬
존 낙스는 설교의 예배적인 특성은 설교 준비 단계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설교는 일종의 예배 행위로, 즉 설교자의 봉헌인 기도 가운데서 준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설교는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이다. 즉 설교자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바로 설교이다. 그래서 설교 준비 과정은 일종의 헌신이라는 훈련된 행위이기도 하다. 설교하는 것은 사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고. 기도 가운데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한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볼 때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며 또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목적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설교가 예배의 한 행위라는 말 속에는 몇 가지 실제적인 의미가 있다. 첫째로 설교를 예배 행위로 이해할 때 우리는 설교가 무언가를 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4부 어떻게 전할 것인가?
제 10장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설교하기
마틴 루터는? 유럽과 보험이란? 차이를 이렇게 일을 했다. 즉 일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를 누릴 자격이 없지만,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자비를 내게 가져오셨다는 것이다. 리차드. 리스천은 설교자들이 성도들을 유복으로 방망이질 하지 말고. 장학과 회계, 새로운 전망, 그리고 공동체의 삶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자발적이고 체험적인 발견의 과정 속으로 성도들을 이끌어 들이라고 촉구한다.
율법과 복음에 변증법적인 지위가. 선포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동시에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거룩과 사랑에. 완벽한 조화는? 당신께서 비록 하나님이시지만 사랑 안에서 성부 하나님의 뜻에 완벽하게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삶으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이라는. 변증법적인 진리에 대한 인간의 반응 역시 두려움과 사랑의 결합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지혜롭게 생각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거룩과 사랑이라는 변증법적 구도 안에서 특별히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해할 때, 그리고 최소한 두 요소의 상호작용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이해할 때. 하나님의 진노를 언급하는 성경 구절에 대한 우리의 설교는 상당부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에서 표출된다면 이 세상 안에서 악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도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참으로 엄청난 자유의지를 주셔서 그분을 사랑하고 순종하거나 반대로 그렇지 않은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을 임의로 침해하지 않으신다.
제 11장 성육신적인 설교, 예나 차일더스
비우호적인 메시지가 우호적인 메시지보다 더 강력하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유명한 심리학자인. 알보트 메라비안. 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면으로 얼굴을 마주한 상황에서 진행된 의사소통에서 얻은 의미 중에서. 55 퍼센트는 청중의 눈에 들어오는 연사의 몸빛 행위를 통해 전달된 것이며, 38 퍼센트는 음성으로, 그리고 언어를 통해 전달된 의미는 겨우 칠 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첫째, 강단에서 제스처나 다른 몸짓 동작의 표는 미리 연습할 때 설교자가 염두에 둬야 할 우선순위는 그 움직임이 내면에서 바깥 방향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발은 다른 신체 중에서 가장 정직한 지체이다.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입술로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의 손가락 끝에서는 계속해서 진실을 쏟아낸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끼면 손을 감춘다. 분노감이 느껴지면 허공을 향하여 삿대질을 한다. 또 주저하거나 모호한 느낌으로 답답하면 발을 동동 구른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어 하는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신경질적인 마음, 신경질적인 말을 들어서 작지만 계속해서 정신없이 움직이는 발은. 우리 대부분이 공감하는 이런 고통스러운 감정, 즉 나 여기서 좀 꺼내줘 라는 의미를 그대로 전달한다.
셋째, 시각적인 관심사는 청각적인 관심사만큼이나 중요하며. 청중의 시각적인 관심사는 상단 앞쪽 중심부에 높여 각도, 그리고 이 공간에 대한 전략적인 활용을 통해 조성된다.
넷째, 움직임은 결정적인 순간에 활용되어야 된다. 만약에 설교자가 면단에 가만히 있어서 부드럽고 조용히 말하며. 청중을 자기 손에 가만히 쥐고 있으며, 설교자 뒤에 앉은 성가대원들은 가만히 다리를 꼬고 있다면 참으로 절망적이다. 움직임의 능력은? 그리고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움직임은 설교사의 가장 중요한 도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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