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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도구, 고난, 폴 트립

by liefd 2024.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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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르시는 확성기이지만 그분의 부르심보다 다들 자신의 고통에 집중하는 나머지 그분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주어진 것인가? 하나님은 이 질문에 답하는 대신 어떻게 고난을 이길 수 있는지, 고난 중에도 어떻게 소망을 품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답하십니다.

 

아무도 내 고통을 덜어주려고 하지 않은 이유를 궁급해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어느 순간에 아들 에단이 아버지, 의사들이 지금 당장은 아버지의 고통에 신경을 쓰지 않지만, 분명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아버지가 안정을 찾으시면 그대 고통을 달래줄 조치를 취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고난은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육신이 병들었을 때 소망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주님께 소망을 두지 않았다는 증거다.

고난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인격적이고, 실제적이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고난의 신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로와 인도와 보호와 신념과 소망을 가져다주기 위한 수단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고난의 신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로와 인도와 보호와 신념과 소망을 가져다주기 위한 수단이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 누구나 단순히 현재 일어난 고난을 겪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 일을 대하는 방식대로 고난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고난을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

1. 그릇된 신학

내가 고난을 겪는 이유는 하나님이 내 죄를 징벌하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달려가야 할 때 오히려 그분과 그분의 백성으로부터 도망챠 숨으려고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과 징벌을 단번에, 완전하게 짊어지셨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8:1-4). 우리의 고난은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직접적인 징벌이 아니다.

 

성경은 고난을 우리가 저지른 그릇된 일과 연관시키지 않는다. 우리 삶의 시련과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원하시고, 또 우리 안에서 이루려고 애쓰시는 선한 일과 연관시킨다(1:2-4).

로마서 828절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은 모든 일결국에는 잘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선은 우리의 구원을 가리킨다. 창세 전에 작정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뜻한다.

2. 하나님에 대한 의심

고난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어디에서 의미를 추구하며 소망을 찾으려 했는지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의 임재나 약속, 그분의 선하심이나 신실하심을 의심할 경우에는 고통이 훨씬 더 가중된다는 것이다.

 

3. 삶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

첫 번째는 현재의 상태가 그대로 늘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다. 두 번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철저하게 망가진 상태라는 점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기대다.

 

4.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

우리는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과 상처와 그릇된 판단과 배척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5. 교만

여기에서 교만은 오만함이 아닌 자만심, 곧 자기 의존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을 의지하며 살다가 느닷없이 계획하지 않은 일이나, 예기치 못한 일이나, 원하지 않는 일이나, 고통스런 일이 닥치면 깜짝 놀란다. 그 이유는 우리의 보잘 것 없음과 연약함과 취약함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6. 물질주의

내가 말하는 물질주의는 우리의 집과 소유, 육체의 건강과 직업, 예금통장과 은퇴계획 같은 물리적인 것에서 우리의 안전과 소망을 찾으려는 경향을 가리킨다.

7. 이기심

우리는 미기심 때문에 어떤 종류의 고난도 유익하게 여기지 않고. 그런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과연 선하신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우리를 세상의 중심에 세우면 우리가 겪는 고난이 훨씬 더 괴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고난을 당할 때에는 단지 육체의 건강이나 관계나 인종차별이나 불의나 결혼생활이나 명예나 일자리를 위해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위해 싸우는 동안 마음으로는 또 다른 싸움을 싸워야 한다.

분노의 덫

고난은 우리의 상황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도 압력을 가한다. 고난은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우리 안에 안정되게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고난의 이유를 알기 위해 고심하느냐 마음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린다.

두려움의 덫

고난이 너무 크게 보여서 마음의 눈을 지배하고 생각을 통제하게 되면 주님의 위대하심과 능력이 왜소하게 보인다.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과 경이로운 능력과 임재의 위로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관점과 생각이 눈앞에 묶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두려움이 엄습하게 된다.

 

두려움에 쫓겨 결정을 내리면 후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

두려움은 망각을 부추긴다. 시편 118편과 136편은 망각을 물리치는 싸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려움이 삶을 바라보는 렌즈와 우리의 결정을 좌우하는 규준이 되도록 허용하면 안된다.

두려움은 오직 두려움으로만 물리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두려움이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뿐이다.

시기심의 덫

옳은 일을 하면 축복을 얻고, 그릇된 일을 거부하면 시련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다. 축복은 우리가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니고, 시련은 우리의 잘못에 대한 징벌이 아니다. 이런 인과관계의 등식은 잘못된 영적 셈법에 해당한다. 우리가 누려온 축복은 우리의 공로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당하는 시련은 그분의 사랑에서 비롯한 결과다. 그 이유는 시련이 하나님의 구원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시기심은 신속하게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대상을 찾고, 결국에는 마음을 굳게 닫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시편 73편은 심령을 쇠약하게 만드는 시기심의 분노를 정확하게 파헤쳤다.

시기심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회의하게 만든다. 아삽처럼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73:13).”

 

고난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그 고통이 훨씬 더 심해진다.

시기심은 이 세상의 위로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시기심은 영원한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일시적인 것을 탐하도록 유혹한다.

시기심은 원망하는 마음을 부추긴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분노가 싹트고, 그 분노를 오래 품고 있으면 원망으로 변한다(10:1). 욥은 주위를 돌아보며 내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이 혐오스럽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원망은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원망은 축복에 대한 관점을 흐리게 만들어 그것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원망은 삶을 부정적으로먼 보게 만들기 때문에 모든 희망을 앗아간다.

 

시기심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계획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뜻밖의 일을 당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변함없는 임재와 선하심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시기심은 영원을 망각하게 만든다.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만 현재의 고통스런 현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시기심은 날마다 우리의 삶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비교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만들어 영원이라는 영광스럽고 소망 가득한 위로를 앗아간다.

 

시기심이 이 모든 해악을 초래하는 이유는 진실을 가리기 때문이다. 시기심은 우리의 삶과 다른 사람들의 삶과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든 관점을 흐리고,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위험한 거짓말을 속삭인다.

의심의 덫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어 우리의 삶을 그릇된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그가 모든 관계를 끊고 절망에 사로잡혀 지낼 때 저지른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믿음을 포기한 것이었다.

 

궁금해 하는 의심은 건전한 신앙생활의 정상적인 요소다. 두 번째 의심은 그렇지 못하다. 이 의심은 판단하는 의심으로 불린다. 이 의심은 우리의 상황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선하지 않으시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 지을 때 생겨난다.

사탄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임재와 사랑과 능력을 의심하도록 부추긴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의심하면 더 이상 그분께 나아가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심신을 무력하게 만다는 의심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감사다. 감사하는 마음은 의심하는 마음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어책이다. 의심이 드는 순간에는 주님에게서 도망치지 말고 힘써 그분에게 달려가야 한다(11:28-30).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아니다. 그 고난이 우리의 마음에 마치는 형향이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어 우리의 삶을 그릇된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따라서 고난을 당할 때 의심이 일면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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