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징후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면 불안감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가장 초기에 나타나는 징후 가운데 하나는 피로도와 잠자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동시에 잠을 잘 때 밥새도록 뒤척일 수 있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싫어하며 떠나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이제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피로와 더불어 식욕과 갈증이 줄어듭니다. 장기들이 기능이 다해서 많은 음식을 받아들일 능력을 상실한 탓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물과 음식을 권하되 그가 원하는 것보다 많은 양을 강권해서는 안됩니다.
죽음이 가까이 오면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습니. 그래서 팔 다리에 반점이 생기고 차가워집니다. 그렇게 되면 보통 몇 시간 내로 사망합니다. 죽기 직전에 대개 호흡이 매우 불규칙해집니다.
가파르게 호흡을 하다가 오랫동안 멈추기를 반복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의 반응은 줄어들지만 죽기 직전에 정신이 또렷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환자들이 마지막 말을 하거나 천국으로 해석할 수 있는 환상을 말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나서 환자는 곧바로 숨을 거둡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의 돌봄
환자가 어디서 생을 마치기를 원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들이 있는 집에서 죽음을 맞기를 원합니다. 많은 환자들이 거족들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짐이 될까봐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요양시설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더라도 자신의 죽는 모습이 자녀에게 평생 충격으로 남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요인은 환자가 얼머나 오래살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임박하면 의료의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의료진이 주기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환자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뺨을 문지르거나 어깨를 안아주는 식의 인간적인 접촉이 필요합니다.
생각이 바뀌는 경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돌봄에서 공격적인 치료를 받으려고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배우자나 자나들이 그것을 원하거나 의사나 간호사가 좋은 의도로 마지막 한 가지 치료법을 시도해 보자고 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지 않은 돌변변수가 발생할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다시 전환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죽음이 아름답지 않을 때
존던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은 잘 살면 잘 죽을 것이라고, 죽을 때도 조용히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여기서 잘 살면 영원히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첫째, 영적의심
죽음 직전에 많은 것을 잃다보면 하나님에 관해 의심이 들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의심 때문에 우울증이 생길 수 있으며 소망과 목적, 기쁨을 잃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남들에게 짜증을 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거리를 둡니다.
의심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두려움이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반드시 영적 나약함의 증거는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죽음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언대로 하옵소서“(마 26:39).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순간을 기악하면 죽어가는 과정의 괴로움을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 청교도 리차드 백스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약속하셨던 약속을 한번도 어기신 적이 없다. 나를 실망시킨 적도 없고 버리신 적도 없다. 그런데 어찌 마지막에 그분을 의심할 수 있단 말인가?
휘튼 대학의 레이몬드 에드먼 박사는 “하나님이 빛 가운데 보여주신 것을 어둠 속에서 의심하지 말라”는 고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 4:18)라고 했습니다.
지금 의심의 구름 가운데 있다면 성경의 약속을 반복적으로 인용해 보라. 요한복음 3장 16절과 5장 24절, 로마서 8장 32절. 37-39절, 요한일서 3장 1, 2절이 좋습니다.
둘째, 두 가지 감정
죽음이 임박하면 두 가지 감정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병과 그로 인한 고통스러운 치료는 싫지만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셋째, 가족간의 갈등
죽음을 목전에 둔 어머니가 애원을 해도 두 형제는 화해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갈등이 있는가 하면 죽음 직전에 빚어지는 갈등도 있습니다. 부모의 치료를 둘러싸고 자녀들이 의견대립을 빚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첫째,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
죽음을 앞둔 대부분의 환자들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시간은 항상 좋습니다. 부드러운 터치는 언제나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합니다. 포옹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곁에서 손을 잡아 주는 것을 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둘째, 환자에게 솔직하게 말하라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이 이ᅟᅡᆷ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건강해 보이세요라고 말하기 보다는 지금 당신을 볼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당신이 떠나고 나면 정말 그리울 거예요.”
셋째, 소망을 전해주라
죽음이 눈 앞에 이른 순간에도 소망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환자의 남은 수명에 대한 예측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삶의 소망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아울러 천국의 소망도 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순간에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영생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소망을 전해야 합니다.
넷째, 미리 슬퍼하고 계획하라
먼저 가족들은 환자에게 그가 떠나면 너무 그립고 자신의 삶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환자도 가족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젊은 나이에 죽음이 찾아올 때는 특히 이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남은 사람들이 빈 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까?에 대해서도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일들을 나누어야 합니다.
다섯째, 떠나 보내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아무럼 미련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가족들에 대한 부담감에서 해방된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편안하게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가?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을 때 하늘에 계신 예수님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행 7장). 사도 바울은 천국으로 올라가는 체험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을 떠나기도 전에 영광의 맛보기를 보여 주실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환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에 대한 더 큰 확신을 심어줍니다.
예수님 안에서 쉬라
이제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삶의 통제권을 주님께 맡길 기회가 눈 앞에 있습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주님 안에서 쉬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 영원한 본향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 이미 작별을 고했습니다. 하나님은 죽는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편 23편 4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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