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확장이나 부흥,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개인의 능력 있는 영적 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도 믿음입니다.
믿음은 모험입니다. 믿음은 담대함입니다. 믿음은 비전입니다.
그러므로 특히 모험의 믿음이 없으면 교회 부흥이나 개인 부흥은 볼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항상 미래를 바라보도록 하고(looking to the future), 한발자국 씩 앞으로 가도록 합니다(one step ahead).
교회는 인간의 자연적 반응(natural reaction)을 기대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 반응(supernatural reaction)을 기대하는 곳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큰 일을 성취하시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 교회에 꿈의 사람들(dreamers)이 없이 조롱을 하고 있다면 그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지지 않을 것입니다. 꿈을 갖는 것은 믿음이 전제 조건입니다. 꿈은 믿음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꿈이 있다라고 한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라는 말과 같고, 만일 꿈이 없다라고 한다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정확하고 분명하게 꿈과 비전의 사람은 누구인가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1-3). 교회부흥은 눈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고 사는 삶은 눈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비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그림입니다.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의 비전과 꿈의 실현 가능성은 믿음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높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을 증거해 주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얼마나 모이는 것에 따라 부흥이나 성장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모인 사람들 중에 믿음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인 사람의 수와 믿음있는 사람의 수를 계산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목사나 커뮤니티가 산을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을 보는 일입니다. 믿음은 비전을 이루는 원천입니다. 교회의 미래를 비전으로 바라보고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성장을 주도하는 교회의 리더들인 목사, 장로, 권사, 집사는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성장이나 성취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라는 절대적인 믿음이 교회를 부흥시키고 새롭게 하며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간혹 교회 성장을 신지식이나 새로운 아이디어에서 찾으려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지혜(wisdom)로도, 명철(insight)로도, 모략(plan)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succeed)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21:30-31). 교회 부흥이나 성장은 하나님이 일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으면 부흥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교회나 탁월한 교회로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교회,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보고서에 의하면 교인들의 95%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교인들이며 그들의 영적인 상태와 교회생활의 모습은 일종의 벤치 와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벤치 와머(bench warmer)란 교회의자의 앉은자리만을 따뜻하게 하고 돌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 95%가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예배당에 나와서 한 시간 동안 예배를 드리면서 의자를 따뜻하게 하고 사라질 뿐 단지 5% 그리스도인들만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충격적인 분석입니다.
교회 안의 95%에 해당되는 명목상의 신자(nominal christian) 그들은 누구입니까? 일주일에 한번 정도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와 종교의식에 참여할 뿐 어떤 영적인 영향력이나 변화도 없이 적당하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그들의 삶은 영적인 힘을 잃고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 강력한 힘을 주지 못하고 무기력하고 어둡고 메말라 있습니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활동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신앙의 어떤 감격이나 의미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새로운 삶의 도전이나 변화에 대한 의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상위 5%에 해당되는 믿음으로 사는 참 신자(real christian)가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행동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봉사하며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통해 교회는 모험을 하고 도전을 하고 새로운 일들을 창조적으로 이루어 갑니다. 만일 95%의 명목상의 신자로만 교회에 가득하다면 그 교회는 점점 침몰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5%의 참 신자, 즉 믿음의 신자가 있다든지 그런 부류의 신앙인이 되기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성도들이 늘어가고 있다면 교회는 엄청난 변화와 함께 큰 부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다루고 있는 메시지가 그 내용입니다. 빈집의 비유로 알려져 있는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귀신이 들렸다가 귀신이 나감으로 깨끗해졌습니다. 이 귀신이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머물 곳을 찾지 못하자 다시 전에 머물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예전의 집은 청소를 깨끗이 해 놓은 집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쫓겨나지 않기 위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함께 거합니다. 오히려 귀신의 상태는 처음 빈집에 머무를 때 보다 더욱 악하고 더 심각해졌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렸기에 예전보다 더 포악해지고 더 더럽게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려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깨끗이 청소한 빈집이 주제가 아닙니다. 교회를 깨끗하게 하라든지 자신을 깨끗하게 비우라는 것이 주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빈집이란 채우지 못하고 있는 공허한 집과 같은 유령의 집입니다. 이 모습을 신자의 영혼 상태로 적용을 하면 이렇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상태는 우리의 영혼이 세상적인 것들로 가득 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깨끗하게 영혼을 청소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영혼이 깨끗해 진 것입니다. 죄를 씻은 받은 것입니다. 육정과 세속을 따르는 사상이나 생각을 깨끗하게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세상 것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내 영혼은 비어있다는 것입니다. ‘빈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상태를 가리켜 ‘영혼의 빈집’이라고 말합니다. 깨끗하게 청소는 했지만 아직도 그 집은 비어있는 상태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과 저의 영혼의 집에 예수 그리스도가 왕노릇 하지 못하며, 마음과 삶을 다스리지 못하며,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빈집 즉 공허한 집일뿐입니다. 물론 회개를 통해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믿음의 일차적인 길입니다. 그러나 회개했다고 해서 영혼의 집에 무엇이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항상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아십니까?
회개하라 해놓고 반드시 복음을 믿으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속적인 보충이 필요함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한 번 은혜 받은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 기도했다고 해서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빈집을 채우는 것은 날마다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회개가 우리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죄로부터 돌이키게 만드는 사건이라면 믿으라는 것은 죄에서 돌아선 다음에 내가 새롭게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더러운 집을 청소하는 일이라면 믿는 것이란 빈집에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는 일입니다. 회개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것이라면 믿는 것이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입니다.
교회에 이 말씀을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교회가 진리에 서고 바른 교회가 되기 위하여 더럽고 추한 것을 씻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깨끗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깨끗하게 해 놓았다고 해서 교회의 사명이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2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깨끗한 교회에서 채우는 교회로의 변화입니다. 강권적으로 집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 다른 말씀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막11:17). 교회는 기도로 채워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성경은 말하길 “신령한 집”(벧전2:5)이며 “향유 냄새가 가득한 집”(요12:3)으로 “성령이 가득하게 채워진 집”(행2:2)으로 깨끗한 것 뿐 만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져 있는 영적 충만의 장소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정화 운동이나 교회 개혁만을 부르짖는 곳이 최고의 목표가 아니라 좀더 적극적인 믿음으로 채우는 길을 모색하라는 것입니다.
비우는 교회보다 채우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를 비난하거나 교회를 경멸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아니라 이제는 신령한 것으로 채우는 교회요, 기도로 채우는 교회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우는 교회로의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될 영적 충전소의 역할입니다.
다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을 던지고 내 삶을 던져서 신뢰해야 할 분을 발견하고 그분과 더불어 맺는 인격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믿음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멘토(mentor)로 하는 삶입니다. 그 분과의 관계를 통해 양육을 받고 그분의 삶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약한 것이 바로 멘토 신앙입니다. 주님이 나를 끌고 가고 도와주고 돌보시도록 배려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찬양을 부릅니다. 기도를 합니다. 봉헌하면서 신앙고백과 응답을 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이렇게 예배드리는 순간 과거의 죄에 대해 깨닫게 되고 그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이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이 죄를 떠나야 해! 강렬한 성령의 감동이 내 마음을 붙잡기 시작할 때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눈물도 흘립니다. 새로워져야 한다고 결심을 합니다. 아파합니다. 뉘우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납니다. 그만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잘못을 뉘우쳤던 그 뉘우침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 분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분을 따라가는 삶과 연결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과 함께하고 이어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다음 발걸음이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울며 뉘우치고, 아파하고, 결심도 하지만 사흘도 못돼서 다시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도 베드로가 묘사한대로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고 나서 더러운 구덩이로 다시 돌아가 그 자리에 눕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주님은 본문에서 지적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뉘우침, 단순히 죄에 대하여 아파하고 새롭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하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적극적으로 그분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내 마음과 영혼과 삶을 다스리는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신앙생활을 ‘관계 신앙’이라고 합니다.
주님과 깊이 있는 관계 때문에 예배가 있는 것이고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지 못한 집은 별수 없이 약령의 처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귀신들은 신자의 삶을 약탈하고,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영혼을 파괴시킵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빈집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져 있는 집입니까?
또한 예수를 믿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안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집은 빈집과 다를 바 없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는 하지만 주님이 주인 역할을 못하는 상태에 있을 때 그 집은 쓸모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우리의 영혼에 주님의 활동이 멈춰지면 곧 바로 사탄과 악령들의 놀이터가 되버리고 맙니다. 세상의 것들에 지배를 받으면 신자의 마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 2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강력하게 왕 노릇하시며 나는 그분 앞에 순종하며, 그분은 거룩한 영으로 내 마음과 의식을 채우시며 나를 지배하게 될 때 영혼의 집은 안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자는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충만한 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다같이 고린도후서 5:1-7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장막집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하늘의 집입니다. 하늘의 집은 영원한 집이며 그곳에는 찬양의 소리, 승리의 함성, 기쁨의 축제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장막집을 하늘의 집으로 만드는 유일한 길은 성령이 채워져야 합니다. 성령이 채워지면 믿음으로 행동하고 보이는 것에 따라 행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회가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세상 세워져있는 건물이라면 좀더 큰 장막집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워져 있다면 하늘의 축복을 느끼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체험하는 하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믿음으로 행동하며 감동과 감격을 느끼며 능력 있는 예배를 드리고 기쁨으로 하나 되는 것을 나타낼 것입니다.
오늘 분문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11장에서 예수님이 기도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본문 앞인 9절부터 13절까지 말씀입니다.“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왜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무엇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꼭 먹고 입고 사는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성령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왜 성령입니까? 신자란 성령 충만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투를 하는 군사들입니다. 교회는 영적 전투자를 만들어 내는 연병장입니다. 만일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거나 영적인 충만함이 없으면 일곱 귀신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악한 영들과 귀신들의 놀이터가 되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령 충만하기 위해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고집해야하는 것입니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성령의 활동이 강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사회적 압력(social pressure)을 보십시오. 갖가지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anxiety-provoking situation)들이 신자들을 유혹하고 있으며 사탄은 더욱 강렬하게 그 속으로 끌고 가려고 신자들을 괴롭힙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세상의 흐름들이나 활동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교회 부흥이 힘들고 교회 성장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신자와 교회가 승리하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 붙잡아 주고 성령에 이끌리며 살아야 능히 이기게 됩니다. 다른 능력으로는 신자와 교회들을 넘어지게 하는 악한 영들로부터 승리하지 못합니다. 성령을 채워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혼의 집을 성령의 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컵이 있습니다. 이 컵에 공기를 어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물을 부으면 됩니다. 만약 성령이 내 속에 충만하게 임재 하시면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은 내 속에서 사라질 것이며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스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당신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성령이 당신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성령 충만으로 사십시오.
내 마음의 집, 영혼의 집을 빈집으로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장막집으로 내버려 두지마십시오. 주님과 연합되고 성령으로 채움을 받고 적극적으로 내 몸과 내 시간과 내 물질과 내 삶을 드리며 주님이 충만 된 영혼의 집을 만드십시오. 성령의 주권(spirit anointing)을 강력하게 요구하십시오. 말씀의 접촉(word contacting)을 끊임없이 하십시오. 믿음으로 채우십시오,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성령으로 채우십시오.
그렇기 위해서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열심히 예배 생활과 기도 생활에 성공해야 합니다. 귀신도 이기고 죄악도 이기고 모든 문제와 좌절과 허무함도 이기는 비결이 영혼의 집을 주의 능력으로 채우는 길이 신자가 끝까지 싸워야할 믿음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의 믿음을 점검(check up)해 보십시오. 내 영혼의 집이 비어있는지 무엇인가 채워져 있는지 따져보십시오. 얼마나 주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며 그 분의 활동을 수용하고 그분의 지시에 따를 수 있는지 믿음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좋은 열매가 남습니다. 이제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 모두가 탁월한 믿음과 모험의 믿음으로 충만하며 성령이 일하시는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교회를 찾고 계시며 능력 있는 교회를 원하십니다. 세상 장막집이나 빈집으로 서 있는 교회가 아니라 능력으로 채워져 있고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 기도로 충만한 교회, 믿음으로 충만한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가 그러한 교회가 된다면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도 개인 한사람 한사람이 그렇게 되어야 하고 우리 교회도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모험입니다. 믿음은 도전입니다. 믿음은 새로운 나라를 향한 꿈입니다. 믿음의 꿈을 갖고 달려가는 교회를 세우는 믿음의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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