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인 클라이슬러사 회장인 리 아이아코카(Lee Iaccoca)는 말하길 ‘좋은 리더는 95%의 정보를 갖고 있을 때 결정을 내린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결정을 내리기 위하여 100퍼센트까지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너무 100퍼센트만을 강조하다가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믿음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을 때 행동하는 용기를 말합니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다시 누가복음 17:6을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겨자씨 믿음이라는 것을 왜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도대체 겨자씨 믿음은 어느 정도의 믿음입니까? 이것은 믿음이 적다라는 차원보다는 실천하는 용기에 대한 말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을 명하는 것이나 뽕나무 뿌리를 말씀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산을 움직이는 것은 믿음의 용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만일 산을 옮겨야 하는데 겁에 질려 포기를 먼저한다면 그 산은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시작을 하면 시간이 문제이지 언젠가는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계산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확신이 온다든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면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뽕나무를 바다에 심는다는 것은 이치 맞지 않는 억지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용기이며 도전이며 모험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소극적인 요소가 아니라 적극적인 요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두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과 믿음은 적은 것 같은데 행동에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은 믿음은 있지만 의심이 많은 사람이고 후자의 사람은 믿음은 적지만 신뢰가 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데리고 일을 하시겠습니까? 행동이 강한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4:30-32을 보시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할 때 겨자씨에 비유했습니다. 겨자씨는 이 세상의 어떤 씨보다 작은 씨입니다. 그러나 그 씨가 심기우면 자라서 커지고 새들이 깃들을 만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점진적으로 커가는 곳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의 실천교육을 시키신 것이 바로 ‘풍랑 훈련’입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막4:35-41).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겨자씨 비유를 설명하셨고 믿음을 말씀했는데도 불구하고 풍랑이 일어나자 제자들은 무서워 떨며 어찌할 줄 모르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들어야 할 말은 오직 한마디뿐입니다. “어찌 믿음이 없느냐.”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엄청난 믿음이 아니라 적은 믿음입니다. 재산을 바치고 큰 기적을 나타내는 믿음이 아니라 풍랑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는 겨자씨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신학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경험의 믿음이 아닙니다. 배우서 아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믿음이며 실천하는 믿음이며 용기 있는 믿음입니다. 교회에는 많이 안다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적은 것이라도 실천하며 행동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1-3). 그동안 믿음의 증인으로 살아간 사람들을 말하면서 인내하고 경주하며 십자가를 참으며 낙심하지 않고 예수를 바라보고 살아간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믿음을 기억하라고 한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예수를 바라보자 그리고 예수를 생각하고 따르는 로드십(Lordship)의 믿음이 겨자씨 믿음입니다. 이것이 능력의 믿음입니다. 가장 능력 있는 믿음의 사람이란 예수를 따르는 믿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용기가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인내가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습니다. 십자가를 집니다. 오늘의 신자들이 약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겨자씨의 믿음만이라도 살아있다면 흔들리지 않을 것인데 제자들을 책망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믿음이 없는 세대입니다.
교회는 믿음으로 세웁니다. 겨자씨 믿음으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가 서는 것입니다. 실천 믿음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믿음의 행동이 약한 교회는 무능력한 교회입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따르는 겨자씨 믿음이 있으면 우리 교회는 산을 옮기고 바다도 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까? 그 대답이 오늘 본문 11절에 있습니다.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은 주님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42:1-5에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신앙이 깊으면 깊을수록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힘써 여호와를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나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신자들이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에 안식을 얻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오신 목적 그리고 예배드리는 목적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오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을 키우는 방법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오늘 본문은 신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역대하 14장은 아사 왕의 이야기입니다. 아사 왕은 유다의 여섯 번째 왕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고 이방제단과 산당을 제거하고 주상을 부수고 아세라상을 찍고 태양상을 거부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향하였기 때문에 유다 나라는 평안했고 싸움과 전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셨고 아사 왕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아사 왕의 생각이 점점 인간을 의지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그 다음의 사건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아사 왕은 성읍을 건축하고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빚장을 만들어 아주 견고하고 튼튼한 성읍을 건축했습니다.
또한 유다를 지키기 위해서 8절에 방패와 창을 잡은 자 30만, 작은 방패와 활을 당기는 자가 28만 합해서 58만의 군대를 만들고 용사를 양병합니다. 이렇게 아사 왕은 자기 나름대로 평안한 인생을 누리기 위해서 견고한 성읍과 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될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유다 나라를 누가 지켜주셨으며 오늘이 오기까지 누가 안정되게 하셨으며 강하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아사 왕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을 갖기보다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견고한 성읍과 군대를 의뢰하기에 이르렀고 인간의 보편적 본성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현대 신자들이 아사 왕의 스타일과 비슷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가진 사람은 더욱 갖고 싶어 하는 욕망, 편안하면 더욱 편안해지고 싶은 욕심, 성공하면 더 성공하고 싶은 열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서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성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를 잃든지 막막한 상태가 되어서야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될 때, 생각이나 나의 능력보다 더 축복이 될 때 자기를 살피는 지혜가 있어야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시 아사 왕의 상태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사 왕을 감찰하고 계셨고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며 자기 생각과 계획, 인간의 방법과 지식으로 자기 성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떠난 아사 왕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사 왕이 돌아오기를 기다려도 그는 10년이란 세월동안 계속해서 자신의 힘으로 유다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아사 왕,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아사 왕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알리셨습니다.
아사 왕이 하나님을 모르니 하나님은 손을 쓰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본문 9절에 의하면 구스 사람 세라가 군사 백만, 병거 삼 백승을 거느리고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지금 아사 왕의 군대는 얼마입니까? 58만입니다. 구스왕 세라의 군대는 100만입니다. 또한 창과 활과 방패를 가진 아사 왕에 비해, 세라 왕은 병거를 앞세워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아사 왕에게 약 20만 정도 군대를 이끌고 왔다면 그가 하나님을 의뢰하겠습니까?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백만 군대를 보내어 아사 왕 스스로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찾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제 아사 왕은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합니까? 세라의 백만의 군대를 보면서 그는 어떻게 행동을 합니까? 싸우러 나갑니까? 작전을 세웁니까? 아닙니다. 11절에 보십시오.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사람이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아사 왕은 비로소 하나님을 향합니다.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나만을 의지하고 내가 지키려고 하던 방법을 버립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믿음을 갖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행동합니다.
아사 왕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이 우리를 한계에 부딪치게 하고, 우리의 지식과 재능과 방법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주십니까? 왜 신자에게 위기(crisis)를 주십니까? 넘을 수 없는 언덕을 왜 보여주시고 내 힘으로 불가능하게 보이고 앞뒤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시고 꼼짝하지 못하도록 숨이 막힐 것 같은 일들이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왜 무거운 로드(짐)를 어깨에 얹습니까? 바로 믿음을 갖도록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대부분의 어려움들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개입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나를 움직이지 않으면 나태하거나 게으르고 욕심을 쫓기 때문에 믿음을 키우는 하나님의 방법은 어려움을 주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아사를 만드는 것도, 아브라함을 만드는 것도, 욥을 만드는 것도, 바울을 만드는 것도 동일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내게 발생하는 문제의 시각을 믿음의 시각으로 보지 않을 때 오히려 문제에 시달리고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풀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만일 문제가 시작되었다면 자기 포기를 먼저하는 영적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도울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고백을 하고 그분 앞에 엎드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느 경우 문제와 대항하고 결투하는 것이 하나님과 결투하는 모습일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하고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생각이 끝나는 곳이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고 믿음이 출발하는 시발점입니다. 인간적인 노력이 한계에 부딪쳤을 때 하나님이 나를 찾고 계시고 하나님을 의뢰하게 하시는 기회임을 알고 아사 왕처럼 하나님을 찾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도와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사 왕도 얼마든지 자기 계획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 인물입니다. 더 많은 군대를 모집하고 더 많은 장비를 모아 전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얼마나 무의한 것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를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사 왕이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갔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다시 본문 12-13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을 아사와 유다 사람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 구스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아사와 그 좇는 자가 구스 사람을 쫓아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이 엎드러지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이 이것입니다. 희생을 치르지 않고 이기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희생 없는 승리입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온갖 고통을 주고받으면서 싸워 이긴 것은 승리가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떤 싸움의 상황이나 경쟁의 상태에 있을 때 서로 아픔을 당한 다음에 승자가 되는 길을 가지 마십시오. 오히려 상대에게 기쁨을 주면서 하십시오.
누구하나 다치거나 사람을 잃지 않는 방법을 택하십시오. 누군가가 당신으로 인하여 아픔을 당하면 언젠가 당신도 그런 아픔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혹 그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결말이 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시련을 주고 깊은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으로 인하여 벌어지는 일이나 관계에서 그것들을 풀기 위하여 접근하기 전에 신자들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방법 즉 믿음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서로 아픔이나 상처를 주지 않고 해결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지는 쪽을 택하고 낮은 곳을 원하고 고난을 당하는 쪽을 선택하는 이유는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의 유익이나 자기가 좋은 것이면 다른 사람에게 아픔을 주든 말든 무작정 그 길을 고집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그가 상처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배려합니다.
이제 무엇이 믿음의 길이며 겨자씨의 믿음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며 하나님이 주신 그 능력으로 행동하는 믿음이 겨자씨 믿음입니다. 이것은 작은 믿음이 아니라 거대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교회를 바꿉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군대가 되어주십니다. 승리의 기쁨을 체험하게 합니다.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칠 때 나의 믿음을 점검해 보십시오. 어찌 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서게 될 때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사 왕은 탁월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믿음은 위기의 상황을 만났을 때 만들어 졌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에 위기가 왔을 때 믿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때가 아닌지 세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문제들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온 성도들은 자신의 믿음을 살피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와 아사 왕처럼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도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문제를 접근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어려움이 오히려 역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보고 인간적인 생각이 앞서 잘못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게 되면 그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결국 교회는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서로가 상처만을 입는 것입니다. 겨자씨의 믿음은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믿음으로 보는 믿음입니다. 할 수 없는 일도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교회는 믿음으로 사역하는 곳입니다. 믿음이 항상 지배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야 좋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믿음으로 사역할 때 4가지 결과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은 열성을 일으킵니다(generates).
믿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흥분시킵니다. 위대한 교회목표를 이루도록 힘을 공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깨어 믿음에 굳게 서라”고 고린도교회(고전16:13)에게 요구하고 “믿음에 거하라”고 골로새교회(골1:23)에게 요청을 한 것입니다.
둘째, 믿음은 기도하도록 자극(stimulates)합니다.
만일 교회가 하찮은 일을 한다면 열심히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일들이 많이 있기에 절실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그 기도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면 다 받을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21:22, 마17:20). 우리 교회의 어떤 목표이든지 믿음으로 기도하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 믿음은 희생하는 동기(motivates)를 줍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의 열매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온다고 모두가 희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젊음과 열심을 교회에 바치는 것은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오기도 급급한 사람을 데리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사역을 하도록 맡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앞서며 자발적으로 헌신을 하면 교회는 빠르게 변화가 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능력이 있고 거대한 전도 운동을 일으키며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행6:5).
넷째, 믿음은 일치를 생산(produces)해 냅니다.
교회 사역은 사람들이 하는 사역이기에 마찰과 충돌이 있을 수 있고 의견차이나 생각이 다른 이유로 논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성취하는 목표가 같고 믿음의 방향이 같으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연합을 통하여 일치하게 됩니다. 어떤 일들이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서로가 믿음으로 반응을 보이며 기뻐하는 것은 하나 되는 교회가 되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생각으로 말하게 되면 교회는 언제나 싸움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연합은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에 강조했던 것이 바로 믿음의 하나입니다(엡4:5).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며,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행동하면 그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셔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믿음으로 세웁니다. 교회는 겨자씨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회복한 사람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믿음으로 세우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믿음으로 사역하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나 교회를 위하여 봉사를 하는 것이나 희생을 하는 것은 믿음이 몸으로 실천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교회를 세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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