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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찬양대 세미나 강의안 5

by liefd 2025.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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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배에서의 음악의 역할(Roles)

 

 

1) 예배 순서의 목적(The goal of the order of service)

 

능력과 역동성 있는 예배의 특징은 근본적인 삶의 추구를 채울 수 있는 예배 순서에 있다. 인생은 순례이며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추구한다.

 

개체성(The search for individuality)

 

자기정체성, 고결함, 자율성 그리고 능력에 대한 추구이다.

 

공동체(The search for community)

 

근본, 출신, 소속감 그리고 나눔과 돌봄에 대한 추구이다.

 

 미(The search for meaning)

 

가치, 중요성 그리고 목적과 인생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다.

 

희 망(The search for hope)

 

안정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신뢰감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근본적인 네 가지 추구를 가지고 예배에 나아온다.

 

예배의 순서를 통해서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인생의 근본적 추구를 달성하도록 도울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 당신의 다양한 예배순서를 생각할 때, 예배의 특별한 순서들에서 어떠한 방법을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추구하는 개체성, 공동체, 의미 그리고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가를 당신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다양한 종류의 은사가 있는 것처럼, 다양한 예배의 순서가 있다.

도움이 되는 예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을 전도하도록 이끄는 예배순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4가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예배순서.

 

복음과 부활의 능력을 나누는 예배순서.

 

사람들을 긍정적인 미래를 지향하도록 이끄는 예배순서.

 

 

이러한 목표를 당성하기 위해서, 당신의 교회는 하나 이상의 예배순서가 필요하다. 예배의 순서는 "교리적으로 올바른 것" 이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예배순서가 사람들의 삶과 인생의 방향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한다. 예배는 교리적으로 올바른 순서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에 있어서는 특정 문화의 예배순서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문화에 맞는 것을 교리적으로 올바른 것이라고 혼동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우리 모두는 문화 또는 문화들에 맞는 예배순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문화 안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성장했다. 문화적 영향을 완전히 배제한 예배순서를 만난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예배순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문화적 기준이나 교리적인 잣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배순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자기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가 누구이며, 누구에 속한 사람인가를 발견한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자기정체성과 고결함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공동체의 죄를 고백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믿음의 공동체요. 죄를 고백한 교회 안으로 결속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며 순례의 삶을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우리의 공통성과 뿌리, 근본 그리고 소속감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지혜와 통찰력 그리고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여러 시대를 거치며 크리스천 선교에 대하여 보다 깊은 이해를 배운다. 이러한 이해는 지속되는 하나님의 선교사역의 한 부분을 감당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새로운 중요성과 목적)를 제공한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희망을 발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의미 없이 세상에 보내진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선교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혀 보내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희망의 사람들이다. 우리의 부활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탄생의 기쁨을 소유한 사람들 이다.

 

우리는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새 생명과 부활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변치 않는 능력은 우리가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희망 가운데 산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훨씬 분명한 희망이 있다.

 

당신의 예배에 대하여 평가해보라. 어떠한 요소들이 잘 실행되고 있는 지, 예배는 건강한지, 영적으로 살아있는지 파악하라. 그 중에는 당신이 보다 강화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요소들이 부족하고 다가오는 해에 새로이 강화해야만 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이 중에는 앞으로 지속해서 당신이 보다 집중하기 원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2) 찬양의 핵심(pivots)

 

찬양은 크리스천의 삶에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이다. 찬양이라는 단어에는 두가지 방향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직접적인 방향과 간접적인 방향이다.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을 높이거나 혹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경외감을 표현함으로써 찬양하는 것이다. 간접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칭찬하거나 크신 분으로 보이게 해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밥 소리기-Bob Sorge).

 

찬양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또 어떤 일을 하셨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가를 알게 한다. 찬양은 하나님의 비교할 수 없는 성품과 자녀들을 위해 베푸신 놀라운 일들에 초점이 맞추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영광스러운 일을 하셨을 때 우리는 그분을 높이고자 갈망한다. 이것은 단지 감사의 표현 정도를 넘는 깊은 고백이다. 그러므로 찬양의 본질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찬양은 노래, 외침, , 악기연주, 춤 등을 통해서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구약의 시편에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의 시대에도 하나님은 열정적인 찬양을 받기 원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찬양은 묵상하는 것이 아니다. 내 방법으로 찬양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찬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찬양은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송축 소리로 들리게 할지어다(66:8)라고 했다. 찬양은 목소리로 그리고 귀를 들리고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찬양은 경배하는 것인데 그것은 힘써 소리를 높이라. 소리를 높이라(40:9)는 것이다. 찬양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며 표현이다. 얼굴, 몸짓 등으로 자연스럽게 찬양하도록 해야 한다.

 

찬양은 의지의 결단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을 때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찬양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찬양하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 찬양은 기분에 좌우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103:1)고 다윗이 고백했던 행동을 우리도 해야 한다. 영적 침체와 낙망(42:5-6)을 이기도록 항상 찬양하는 강한 의지력이 있어야 한다.

 

찬양은 성소의 중심인 것이다.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에게 독특한 이름을 주셨다. 그 중에 레아가 야곱에게서 낳은 넷째 아들의 이름을 유다라고 불렀다. 유다란 찬양(29:35)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좋아하셨고 특별한 호의를 베풀어 주셨는데 유다 지파에서 메시아가 나온 것이다. 성경은 다른 열두 지파보다 유다 지파에 대한 언급이 많은 데 그것은 찬양하는 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114:2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라는 하나님은 성소를 찬양하는 사람들 가운데 두셨던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핵심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토였지만 그의 성소는 유다 즉 찬양하는 무리 가운데 두신 것이다.

 

76:1이나 사 44:26이나 욜 3:18이나 슥 2:12에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관계를 맺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도 찬양하는 교회를 세우기 원하신다. 특히 유다 족속은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사실을 공식으로 인정한 첫 번째 족속이다. 다른 족속들은 다윗을 왕으로 받아들이는데 7년이 걸린 것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은 찬양하는 자와 동행하신다.

 

3) 찬양의 역할(Roles)

 

시편 150:6"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라고 했다. 찬양은 사람들에게 호흡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예배는 말씀, 찬양, 기도, 봉헌의 4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예배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찬양이다. 예배의 시작에서 마칠 때까지 찬양은 예배의 전체 흐름에 영향력을 준다. 그러므로 찬양의 실천은 최대의 예배 경험을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또한 찬양은 영원한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I:25에서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할 분"이시라고 선언했다. 시편72:19에서는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 할지어다"라고 했다. 시편111:10"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도는 찬양에 대한 성서적인 진리를 이해함으로써 더 나은 영적 예배와 찬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찬양대원이라면 다음의 성경 말씀들을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 시편34:1-3

* 시편61:8

* 시편71:8

* 시편119:164

* 시편147:1

 

찬양의 정의

 

찬양이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경배이다. 찬양은 능동적, 정적, 개방적, 표현력이다. 만일 그와는 반대로 수동적, 추정적, 비밀성을 갖는다면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 행위는 항상 움직임, 행동, 소리, 노래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시편에는 찬양에 대한 세 가지 형태를 소개하고 있다.

 

첫째는 유성적 행위이다.

 

* 시편 145:21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송축할지로다.

* 시편 63: 3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 시편 66:1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지어다.

 

둘째는 청각적 행위이다.

 

* 시편 47: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 시편 150:3-5 나팔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셋째는 시각적 행위이다.

 

* 시편 63:4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손을 들리이다.

* 시편 149:3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 역대하 20: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 (하바)하고. -무릎을 꿇는 행위.

 

잭 테일러(Jack R. taylor)는 말하길 '찬양이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섭리에 대한 헌신과 고백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가 찬양이다. 그러므로 찬양에 대한 올바른 정의가 없다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주의말씀을 듣고 그를 보고나서 했던 찬양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오실 자" (4:8).

 

찬양의 이유

 

첫째, 찬양은 법칙이다.

 

* 에베소서 1:1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사야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둘째, 찬양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 시편 22:3"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했다.

 

셋째, 찬양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수단이다.

 

시편 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넷째, 찬양은 하나님께 보답이다.

 

* 시편 106:47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열방 중에서 모으시고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다섯째, 찬양은 근심을 제거하는 옷이다.

 

"이사야 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

 

여섯째, 찬양은 축복의 문이다.

 

"시편 67:5-7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땅이 그 소산을 내었도다.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일곱째, 찬양은 기적이다.

 

사도행전 16:25-26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다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여덟째 찬양은 무기이다.

 

시편 8: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찬양의 대상

 

성경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요구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도록 명령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계시성을 의미하며 하나님 자신의 자기 계시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표현할 때 엘로힘(위대하고 전능하녀 두려운 자), 엘 샤다이(완전무결하게 양육하고 만족시키며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전능하신 자), 아도나이(자존하시며 다스리는 자), 여호와(스스로 존재하시는 자)라는 구속적이고 언약적인 이름을 살펴보았다. 이 이름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A, 그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난다.

 

B. 그의 이름을 통하여 우리의 필요를 드러내신다.

 

C. 그의 이름을 통하여 구속의 본질을 나타난다.

 

D. 그의 이름들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방향을 알게 한다.

 

E. 그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다.

 

F. 그의 이름을 통하여 우리의 참 신분이 주는 축복에 대해 알게 한다.

 

G.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각 이름의 특정한 속성을 밝히 드러낸다.

 

하나님은 오직 영광을 받으시고 송축해야 될 유일한 대상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찬양 성도들이 찬양할 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 "시편 29:2 "여포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 "시편 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

* 시편 34: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

 

* 시편 48: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 시편 66:4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할지어다. (셀라)."

* 시편 72:19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 시편 100:4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 시편 145: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4) 찬양의 원리(Principles)

 

성경은 찬양의 원리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다. 성경에 제시된 찬양의 원리는 골로새서3:16과 에베소서5:18-21에 소개되어 있다. 바울은 이 두 성경에서 찬양에 대한 정확한 원칙을 제시하며 교회들이 어떻게 찬양에 대해 훈련해야 하는가를 강조하고 있다.

 

골로새서 3:16의 원리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teaching and admonishing) (psalms)와 찬미(hymns)와 신령한 노래(spiritual songs)를 부르며(singing) 마음에 감사함(thankfulness)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양은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찬양하라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그리고 찬양의 태도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노래이고 전 힘을 다하는 마음의 드림이어야 한다. 때문에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은 언제나 큰 소리(aloud)로 노래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5:18-21의 원리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speaking)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singing) 찬송하며(psaming)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giving thanks)."

 

하나님의 명령은 성령 충만을 받으라(Be filled with the Spirit)고 시작하면서 4가지 실천 원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성도들이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길을 가기 위한 다면 다음의 네 가지 실천은 예배에서나 삶에서 기초가 되어야할 명령인 것이다.

 

* 'Speaking

* singing

* psalming

* giving thanks

 

교회 음악이나 예배의 핵심은 예배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입는 것이다.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는 하나님과의 화답과 하나님께 노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자세이다. 예배와 찬양은 언제나 성령의 교통함과 충만 함으로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

 

바울이 말하는 찬양의 원리이며 예배의 스타일을 정리하면 6가지의 핵심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배의 스타일을 정리하면 6가지의 핵심 

첫째,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Sing to the God).

 

둘째, 서로가 노래하는 것(Sing to one another).

 

셋째,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Teach & admonish one another with songs)

 

넷째, 가치 있게 변화하는 것(value variety)

 

다섯째, 은혜의 동기로 찬양하는 것.(Recognize that grace motivates praise)

 

여섯째, 예배를 드릴 때 성령으로 충만한 것

(See worship as one way to be filled with Holy Spirit)

 

 

교회 안에서 워십 팀이나 찬양대 그리고 회중은 보다 정중하고 예의 있는 예배자로 서야 예배를 그르치지 않게 된다. 성경적인 원리들을 놓치고서는 바른 예배를 드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5) 음악과 전도(Music and Mission)

 

예배는 전도와 전도의 현장(Mission & the world)이다. 음악은 하나의 전도이다. 찬양대는 하나의 전도이다. 전도현장에서 회중들의 음악은 전도하는 음악인 것이다. 전도현장에서 찬양대는 전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가운데 현존하신다. 언제든지 교회의 음악이 있는 곳이면 하나님께서는 그 음악 가운데 함께 하시며 교회의 음악이 없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하나님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역에 항상 신실하신 분이다.

 

당신이 드리는 예배 하나하나에 대하여 생각해보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질문들을 해보라.

 

음악이 복음을 전하도록 사람들을 전도현장으로 나가게 하는가? 아니면 교회 안에 머물도록 만드는가?

 

음악이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는 삶의 의미와 희망을 갈망하 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

 

음악이 복음과 부활의 능력을 나누고 있는가?

 

음악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그들 을 돕는가?

 

전도의 현장에서, 전도의 음악은 교회의 음악보다 많은 도움을 준다. 전도음악 프로그램은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음악과 찬양대(성가대)는 회중들로 하여금 전도현장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감동시키며 그리고 그들 자신들도 전도현장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도록 만든다. 오늘날 우리에게 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교회음악 프로그램 보다는 전도음악 프로그램이다. 세상과 지역 사회에 복음을 나누도록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성인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음악이 주어졌다. 찬양대가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는 전도하는 찬양대가 되는 것이다.

 

* 음악 스타일에 대한 조언(Suggestions about music style)

 

누군가는 "전도음악'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해야만 하며 일부의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는 전통적 음악을 유지해야만 하고 또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동시대적 음악과 복음성가 역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전통적 음악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음악의 "수준"에 대하여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며, 교회 음악의 수준은 반드시 유지되어야만 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수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전통적 음악들이 그 당대에도 새로운 음악이었으며 혁신적인 음악이었나?

 

전통적 음악 가운데 일부는 회중들로 하여금 전도현장으로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다.

 

\③ 지역 사회에 거하는 일부의 사람들은 전통적 음악을 통해서 복음을 접하게 된 다.

 

전통적 음악에만 수준 높은 음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동시대적 음악이나 복음성가 가운데에도 질적으로 전통적 음악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음악이 있다.

 

교회성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시대적 음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동시에 이 방법만이 새로운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세상은 이제 더 이상 기독교문화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음에 언급하는 요소들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만약 등록교인의 수가 증가한다면 이에 따르는 간접적인 효과 역시 긍정적인 일이다. 종종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숫자적 증가만을 교회의 성장으로 생각하는 선입관에 사로잡혀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

 

일부 동시대적 음악이라고 불리는 것은 아집 또는 하찮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도움이다.

 

너무 많은 동시대의 음악이 교회 "내부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만족에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현대 교회음악이나 복음성가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것만이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중요한 요소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하다.

 

다음에 언급하는 요소들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전통적인 음악과 동시대 음악 모두는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다.

 

복음성가는 때때로 십자가 사건에 너무 집착한다. 가장 훌륭한 복음성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활과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일부의 복음성가는 복음의 형식이나 신학에 너무 치우친다. 가장 훌륭한 복음성가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은혜와 열정을 나누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통적 음악이 동시대 음악과 대치하고 이러한 음악들이 복음성가와 대치하는 것은 단지 "교회내부"에서의 논란이다. 전통적 음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영역을 고수하고 보호 할 수 있는 방법만을 모색하며 교회성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등록교인들을 얻으려고만 노력하고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송만이 이 시대를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쟁이 복음전파를 증진시키고 교회를 구원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교회보다는 전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으며 교회의 확장보다는 더 많은 사람을 구원받도록 하는데 우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세 진영 모두 전도에 모든 역량과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길이다.

 

전통적인 음악, 동시대적 음악 그리고 복음성가 모두에게 진리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 머무르기 보다는 전도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개체성과 공동체 그리고 의미와 희망을 추구하는 인생의 근본적인 열망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만 한다.

 

복음과 부활의 능력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희망과 긍정적인 미래를 소유하도록 이끌어야만 한다.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을 올려드리는 경배이어야 한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현재의 교회음악을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우리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음악장르가 나타나 전도의 활성화를 도와야만 한다는 것에는 인정을 해야 한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움직이며 전도의 사명을 불태우게 만들 새로운 음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은 미래의 전도음악 프로그램을 향해 전진하도록 만드는 매우 중요한 진리인 것이다.

 

*전도음악과 교회음악(Mission music & churched music)

 

전도음악과 교회음악 사이의 핵심적인 차이는 역동성에 있다. 사실 일부의 교회음악은 전도사역을 돕기도 한다. 동시에 언제든지 음악이 교회 내부에만 그 초점을 맞추게 될 때, 이것은 우리시대 뿐만 아니라. 역동성에 있어서도 그리고 언제든지 큰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된다. 전도의 사명을 발견하도록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음악이 진정한 영과 능력이 내재 된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음악은 일부의 전통적인 음악이나 복음성가 그리고 동시대 음악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음악의 종류는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판단 기준은 음악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 밖의 전도확장에 맞추고 있는가? 이다. 음악이 사람들로 하여금 전도사역으로 이끄는가 하는 것이 평가기준이 되어야만 한다.

 

기독교 문화에서는 음악이 교회 안에 초점을 맞추고 그 안에 머무르는 일 이 가능했었으며, 찬양대(성가대)는 주로 교회 안에서 찬양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하나의 관습으로서 널리 인식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교회를 찾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교회에 출석했기 때문에 찬양대가 주로 교회 안에서 찬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찬양대(성가대)가 요양소 또는 병원에 방문하여 노래를 불렀다. 그들이 순회를 떠나는 경우에도 교회들을 방문해서 찬양을 했다. 이러한 일에 있어서 그들의 음악과 활동의 주된 초점은 교회 안에 맞추어졌다.

 

전도의 현장에서, 음악은 사람들로 하여금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이끌며 이와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찬양대(성가대)가 그들의 역량을 지역사회의 복음화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들은 일터에서도 노래 할 수 있으며 또한 시민들의 모임에서도 노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소는 공장이나 사무실 또는 시민회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의 찬양대는 전도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지역사회의 특별 행사에 참여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노래한다. 그들이 순회를 떠나는 경우 교회들을 방문하여 노래하기보다는 전도할 수 있는 현장에서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몇 교회에 방문하여 찬양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러나 전도할 수 있는 현장에서 더 많은 기회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의 찬양대(성가대)는 교도소, 병원,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의 재활 센터 등의 프로그램에 정규적으로 참여 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은 크리스마스 때와 같은 일시적인 기념행사로 치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일 년 내내 이러한 일을 정기적이고 그리고 규칙적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일은 음악과 찬양대 모두가 전도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6) 음악의 힘에 대한 측정 (Gauging the music's spirit & power)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삶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4가지를 추구한다. 개체성(The search for individuality), 공동체(The search for community), 의미(The search for meaning), 희망(The search for hope)들이다. 사람들은 예배 속에서 음악에 심취되고 그 음악의 가사와 멜로디는 그들로 하여금 네 가지 인생의 근본적인 추구에 대하여 다소간의 성취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이와 같은 음악은 정신(spirit)과 힘(power)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가사와 멜로디에 정신(spirit)과 힘(power)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멜로디가 정신(spirit)을 가지고 있으며 가사는 힘(power)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멜로디는 정신(spirit)뿐만 아니라 힘(power)또한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줄곧 멜로디를 읊조린다. 가사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멜로디와 아련한 기억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의 고난가운데에서 희망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초대시대로부터 뛰어난 교회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시대와 장소를 위한 멜로디 그리고 중요하면서도 힘 있는 가사의 찬송을 만들었다. 우리가 이러한 찬송들을 발견하고 이러한 찬송으로부터 유익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들의 시대와 장소를 위한 정신과 힘을 가진 새로운 가사와 멜로디의 찬송을 만들어 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 세대는 자신들의 세대를 위한 정신(spirit)과 힘(power)을 가진 찬송, 찬양 노래의 유형을 가지고 있다.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는 전통음악과 동시대음악 그리고 복음성가 사이에 우리가 제한 받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각의 음악은 그 음악만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우리를 움직이기도 하며 우리를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음악 그자체가 가지고 이것이 바로 정신(spirit)과 힘(power)을 주게 된다. 가사와 멜로디가 우리로 하여금 삶의 근본적 열망을 찾도록 도울 때, 우리는 음악 본연의 목적이 성취되었음을 알 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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