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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실감을 극복한 나오미(룻기 1:21)

by liefd 2026.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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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적인 배경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베들레헴에 사람이 아내와 아들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흉년을 피하여 모압 지방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룻기에는 여인이 부각되어 등장합니다. 모압 여인 룻 그녀의 시어머니 나오미입니다. 룻 나오미는 남편을 잃은 과부라는 공통점과 타국으로 이민한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기와 상실을 경험했던 나오미는 오늘 예기치 않은 위기를 만나 고통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삶과 용기와 희망을 던져주는 인물입니다.

 

풍요의 상징 모압, 가중되는 스트레스

 

평범한 여느 가정처럼 남편과 함께 아들을 키우며 살던 여인에게 위기 닥쳐옵니다.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들레벨 마을조차 예외없이 찾아온 흉년은 나오미와 그의 가족들에게 살아남느냐 아니면 죽느냐 하는 실존적인 문제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아주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땅을 기업으로 갖고 살아가던 그녀 가족에게 흉년은 심각한 위기였습니다.

 

나오미의 가족은 그냥 베들레헴에 남아서 흉년을 극복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 사람들처럼 기근을 피해 양식이 풍족한 모압으로 이민할 것인가를 두고 갈등하 됩니다. 갈등 끝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금지한 모압으로 길을 떠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흉년은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모압으로 잠시나마 이민하려고 결정한 것은 일종의 회피였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결정은 어렵고 힘든 흉년의 위기 속에서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직면하는 건강한 대응방식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불안 상황에서 회피하는 신경증적 결정을 것입니다.

 

회피는 결코 문제 해결과 심리적 성숙을 가져 오지 않습니다. 신앙적으 해석하 자면 그들은 흉년이라는 상징적 증상 뒤에 있는 이스라엘의 공동체의 불순종을 면하지 못햇습니다. 따라서 회개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있는 기회를 놓치고 금지의 땅 모양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모양의 국정선은 하나님의 못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 안정을 제공하는 , 스스로 통제할 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나오미의 이러한 선택은 모압의 조상이 롯을 연상시킵니다. 룻은 미래 내다보지 못하고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예금 땅과 같이 비옥한 소동 땅을 선택합니다. 훨씬 소중한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 밑에서 고생이 되더라도 머물러 있는 대신 그는 눈에 보이는 부유한 땅을 떠났습니다. 떠날 풍족하게 떠났지만 마침내 소돔이 멸방하는 그는 완전히 빈털터리로 돌아왔습니다.

 

이와같이 나오미도 고생스럽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고 율법이 있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택을 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풍요의 모양을 향해 떠났 습니다. 살아보려고 떠났던 모압은 남편과 아들의 매장지가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결국 빈손으로 귀향하게 됩니다. 나오미는 베들레럼 사람들에게 이렇게 토로합니다. "내가 풍족하게 갔더니 여호와에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롯은 아내를 잃고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을 잃게 됩니다. 롯 자존심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 않았지만 나오미는 자존심을 꺾고 손이지만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비록 잠시 살겠다고 떠났지만 그동안 정들었던 집과 동네, 이웃들을 뒤로 하고 나라를 향해 떠난 나오미는 거기서  상실감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과 가벼운 흥분감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민 초기에 나오미는 두고 고향이 그리워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셨을 것입니다. 또한 보고 싶은 친정 식구들, 동네 사람들, 결혼하면서 정착했던 등을 하고 와야만 했든 아쉬움과 그리움이 마음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힘은 흉년을 피하여 풍요한 나라 모압에 와서 지낼 있다는 것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어와 풍습이 다른 모압 땅에서 이민자이자 소수 민족으로서 뿌리를 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농사지을 있는 땅을 소유한 것도 아니어서 남편 엘리멜렉과 아들들은 막노동을 하며 이국 생활에 정착하려고 것입니다. 그들이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이민자로서 겪어야 했던 스트레스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을 것입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없는 이민초기에는 언어 적용으로 인하여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들레험에 때에는 마을에서 괜찮은 사회적 지위에 있었는데 모압땅에서는 신분이 격하된 살아야 하는 철등감과 자괴감도 느낌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와 신앙을 공유할 있는 신앙공동체가 없었다는 것은 매우 스트레스였 것입니다.

 

가장 강도의 스트레스

 

모압 땅에 채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폭풍우가 나오미의 가정에 불어닥칩니다. 이민한 얼마되지 않아 의지해 왔던 남편 엘리벨레이 사망하게 됩니다. 풍토병이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편의 죽음은 그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름대로 살아보겠다고 모압에 이민까지 왔는데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죽자 그녀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감과 상실감을 맛보았습니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스트레스의 강도를 1에서 100까지로 각할 가장 스트레스 지수 100 매우자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평소 배우자의 관계에 따라 수치가 다를 있지만 타국에서 남편에게 매우 의존적이며 예작된 삶을 살아가던 나오미에게 남편의 죽음은 매우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경험이었습니다.

 

남편을 상실한 아픔을 딛고 일어선 나오미는 홀어머니로서 아들 말론과 기룐 양육하여 마침내 아들을 모두 결혼시킵니다. 잠시 머무려고 했던 타국 모압에서 모압 여성을 며느리로 맞아들인 것을 보면 그녀가 모압에 완전히 정착하려고 했음을 있습니다. 비록 모압 여인이었지만 롯과 오르바를 며느리로 맞이할 있었던 나오미로서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과의 혼인을 금한 나님의 율법을 알고 있는 그녀는 아들을 모압 여인에게 장가들게 것에 대해 죄책감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들은 공교롭게도 결혼 얼마되지 않아 모두 죽습니.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 그러나 자녀들이 없었던 점을 미루어 결혼한 후에 얼마되지 않아서 죽었던 것으로 측할 있습니다. 아들 둘 한꺼번에 잃은 어머니 나오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아들의 죽음은 남편 엘리멜렉의 음보다 훨씬 격렬한 아픔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울고 싶어도 울음이 나오지 않는 충격감과 무력감, 우울감, 분노, 죄책감, 슬픔, 그리고 넋이 나가는 것과 같은 경험들을 모두 겪어야 했습니다. 그녀가 소유했던 모든 것이 잘려나갔을 , 그리고 나름대로 뿌리를 내려 보려고 했으나 모든 리가 잘려나갔을 , 충격은 말로 형용할 없었을 것입니다. 의지가 약한 여인이었다면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삶의 고통과 슬픔을 꿋꿋하게 버텨냅니다. "여호와에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1:6) 소식을 들은 그녀는 슬픔과 고통 묻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의 남편과 아들을 이국땅에 묻어 돌아와야 했던 그녀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자신이 죽었다 죄책감,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자책감, 다시는 그들이 무덤을 찾아볼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쉬움이 컸 것입니다.

 

쓰디쓴 패배를 맛보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

 

이민간 지  십년 만에 나오미는 마침내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결심하고 자부들과 함께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길을 떠난 얼마되지 않아 나오미는 두 며느리의 장래를 생각할 때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피부색과 얼굴모양과 언어가 다른 자부들을 데리고 고향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로룻 오르바에게 자기 으로 돌아갈 것을 강권합니다.

 

"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여호와의 손이 나를 셨으므로 나는 너희를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룻 1:11-13).

 

나오미의 말은 며느리를 배려하는 하지만 사실은 모압 여인 며느리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자신의 부담을 숨기는 표현이었을 것입니. 룻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하자 나오미는 마음의 부담을 안은 룻과 함께 들레헴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 나오미와 롯 마침내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동네 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십년 모압을 떠날 때만 해도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론 그리고 나오미 식구 떠났는데, 지금은 낯선 모압 여인과 둘이서만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 이가 정말 나오미냐?라고 동네 사람들이 외칠 정도로 나오미는 십년 세월동안 알아 보기 힘들 정도로 변했고 나이보다 늙게 보였던 것입니다.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였음이니라"(1:20) 라 말하는 그녀의 대답에서 인생의 쓰디쓴 실패의 잔을 맛본 그녀의 고통이 드러납니다. 나오미는 이러한 표현에서 하나님께 채찍을 맞았다는 아픔과 죄책감이 그녀의 내면세계 중심에 자리잡고 있음을 있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였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룻 1:21).

 

흉년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다른 이웃들은 살아남아 이제는 나름대로 부유하게 있는데 흉년을 피해갔던 자신은 가족마저 잃어버리고 빈털터리로 돌아왔을 나오미는 심한 수치감과 열등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신세로 전락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이삭줄기에 직접 나갈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며느리 룻 이삭을 줍겠다고 말할 허락하기는 했지만 이삭을 주울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모습을 새삼 인정해야 했을 것입니다.

 

다시 일어선 나오미

 

실패의 자리에서 나오미는 다시 일어섭니다. 자신의 대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이방 며느리 룻 통하여 노년에 손자 오벳을 품에 안았을 그녀가 느꼈 감사와 기쁨, 그리고 감격은 그동안 인생 여정에서 겪었던 상처와 쓰라림을 쇄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영원히 노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경험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외함이 더욱 많아졌을 것입니. 그리고 실패와 아픔으로 점철되었던 나오미가 마침내 다윗으로 이어지는 가계 포함될 것이라고는 그녀를 포함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크리스찬 심리학자 래리 크랩은 그의 , 좌절된 꿈에서 나오미의 내리티브를 크게 가지 단계를 찾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베들레헴에서 행복했던 삶이며,

 

번째 단계는 흉년의 위기로부터 시작된 실패와 좌절 그리고 절망 과정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절망을 극복하고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기쁨의 단계입니다.

물론 단계는 번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반복됩니다.

 

그러나 인생 전체적으로 크리스찬의 삶은 단계를 거친다고 있습니다. 특별히 책에서 래리 크랩은 행복과 기쁨을 구별하여 설명하는데, 행복은 조건적 반면, 기쁨은 환경을 초월하는 무조건적인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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