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습관이 기적을 만든다]는 책을 보면 탈무드의 격언을 소개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항상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당신이 취할 수 있는 온갖 태도 중 감사가 삶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다”고 역설합니다.
어떤 권사님이 저에게 찾아와서 욥이 왜 그런 무시무시한 고통을 당하게 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욥이 나중에 갑절의 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나 그 권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갑절의 복을 안받아도 좋으니 그런 고난을 안 받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이 사람들은 욥이 당한 고난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욥이 당한 시험은 가축이 다 빼앗기고 종들이 살해당합니다. 연이어 갑작스런 폭풍에 집 기둥이 무너져 10 남매가 죽었다는 비보를 듣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요?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까? 제가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최선을 다한 것 아시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많은 복을 주시고 다 빼앗아 가십니까? 도대체 제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그런데 욥은 일반적인 사람이 볼 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외부적인 조건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입장 때문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피곤하고 힘들 때 짜증을 부리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원망으로 전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원망은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1. 원망과 감사는 상황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첫 번째 요구 조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욥기 1장 9, 10절에 보면 욥이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십니까? 주께서 욥의 가정을 물질적으로 축복하셔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지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을 할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렵게 만들면 사람들이 틀림없이 하나님을 욕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결국 사탄은 욥이 처한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에 착수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불평가 원망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탄은 우리가 언제 불평하고 DNJS망하는지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습니다. 귀신같이 잘 압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단순히 '주고 받는'(give and take)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그렇지만 가눌 수 없는 슬픔은 가진 우리는 감정을 표출하게 됩니다.
욥기 1장 20절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립니다. 그런데 욥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 가운데서 땅에 엎드려서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아니 슬픔을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상황에 압도당하지 않고 나를 향하여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욥은 지금까지 제게 "모든 것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것을 주셔서 누리게 하시다가 거두어가시는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나와서 주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떠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6장 7절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취약한 부분은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만 거두어 가시는 것에 대해서는 불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거두실 것 같으면 왜 주셨느냐고 원망합니다. 거두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많이 힘들어 합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짜증이 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믿고 주위 사람에게 폭발시키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기분이 삶의 태도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욥기 1장 21, 22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흔히 원망과 감사는 상황이 좋고 나쁘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욥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실제보다 더 크게 여기다가 지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문제를 파악하되 그것을 더 크게 여기거나 작은 것에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터졌을 때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안목, 만약 그런 결정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하는지 멀리 있는 것을 앞당겨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욥은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기고 자녀까지도 더 잃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욥의 건강을 치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욥은 틀임없이 주를 향하여 욕할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사탄이 가장 가까운 사람, 그의 아내를 통해서 욥을 시험합니다. 사탄이 우리는 넘어뜨리는 방법은 때로는 상황을 통해서, 때로는 사람을 통해서 찾아옵니다. 욥기 2장 9절에 보면 당신이 그래도 자신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의 아내의 말은 사탄이 말하는 미혹에 빠진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상황에 처할 때에 시험에 들어서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이외로 많습니다. 그때 욥은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과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2. 원망과 감사는 자신에게 매몰당하느냐, 하나님을 의식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욥은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자신이 당한 엄청난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이 가중되고 친구들이 자신을 죄인 취급하는 것을 힘들어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욥은 친구들이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하신다고 책망할 때 참기 어려워합니다. 누가 나를 도와주고 싶어서 나의 문제를 지적할 때 어떤 반응을 나타냅니까?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도와주고 싶어하는 것 자체에 감동을 받고 자신의 문제를 고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을 문제있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에 대해 마음을 닫고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욥은 자신을 위하여 충고하는 친구들에게 화가 나서 심한 말을 퍼붓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어둡게만 보입니다. 욥기 3장에 보면 욥은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해산할 때에 숨졌더라면, 젖을 빨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동안에 모든 축복을 뒤집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조차 힘들어합니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관심과 눈길이 이전에는 축복이었지만 지금은 도리어 견딜 수 없는 고통이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욥은 자신의 심각한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게 됩니다. 욥기 7장 11절입니다.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욥이 고통에 매몰당하여 유독 내가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합니다.
욥기 10장 11절입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대로 말하리이다.“ 사람은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 분노가 싹트게 됩니다. 풀 트립의 [고난]이란 책에 보면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분노를 오래품고 있으면 원망으로 변합니다.
욥은 자신이 당한 고난이 힘들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이 싫다고 말합니다. 원망은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칩니다.“ 원망은 축복에 대한 관점을 흐리게 만듭니다. 해가 밝에 비치는 날에 어두운 지하실에서 그냥 사는 게 싫고 모든 것이 다 싫다고 말합니다. 원망은 일상생활의 습관으로 자리 잡게되고 어떤 상황이나 장소나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집니다. 원망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10장 19절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성경에 이러한 사건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원망이 습관이나 태도로 자리잡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원망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에게 매몰당할 때입니다. 나는 왜 이래야 하는가? 주님이 내게 주신 축복의 순간까지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이 만든 웅덩이에 깊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망각하는 순간 스스로 웅덩이를 파게 됩니다. 그 웅덩이는 물을 가두지못할 터진 웅덩이입니다(렘 2:13).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배를 통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하십니다.
불평과 원망의 늪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가 힘이 듭니다. 감사가 자꾸 원망으로 바뀌기 시작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욥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 생활 잘 해보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왔을 때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멈추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어렵습니다. 고난의 형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하십시오. 그동안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감사한다고 고백하십시오. 장래에 베푸실 은혜를 기다리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너무나 힘든 지금의 상황 가운데서도 그래도 감사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돈은 없지만 시간이 많아진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동안 정심없이 산다고 가족을 돌보지 못했다면 지금의 시간을 골든타임으로 여기십시오. 자신의 삶에 숨 고르는 시간으로 보내십시오. 속도가 늦추면 사람이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바쁘게 지낸다고 성경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기도 시간도 갖지 못했는데 지금의 시간을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시간으로 활용하십시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원망과의 전쟁(민수기 11:1-3) (0) | 2026.02.17 |
|---|---|
| 하나님의 서프라이즈(에스더 7:6-8) (1) | 2026.02.14 |
| 상실감을 극복한 나오미(룻기 1:21) (0) | 2026.02.13 |
| 사랑 가꾸기(아가서 7:10-13) (0) | 2026.02.12 |
| 결혼식 설교 4 (0) | 2026.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