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독일은 인구의 3분의 2 정도가 외로움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네덜란드 국민의 거의 3분의 1이 자신이 외롭다고 인정했고, 열 명 중 한 명은 심각하게 외롭다고 했다.
스웨덴에서는 인구의 최대 4분의 1이 자주 외롭다고 했다.
스위스에서는 다섯 명 중 두 명이 가끔, 자주 또는 항상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영국에서는 이 문제가 너무나 중요해져서 2018년에는 마침내 총리가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인 여덟 명 중 한 명은 의지할 수 있는 가까운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고 답했는데,
이는 겨우 5년 전의 열 명 중 한 명보다 높아진 수치다.
영국 시민 4분의 3이 이웃의 이름을 몰랐고, 영국 직장인의 60%가 직장에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몇 달에 걸친 봉쇄 조치, 자가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젊은이든 노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비혼이든 기혼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똑같다.
전 세계 사람들이 외롭고 단절되었고 소외되었다고 느낀다. 우리는 세계적인 외로움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고령 수감자가 증가하는 현상을 연구한 류코쿠대 교수 고이치 하마이도 여기에 동의한다. 하마이는 상당수의 노령 여성이 사회적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옥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매장에서의 소소한 절도 행위 같은 경범죄(감옥에 가는 것이 목적일 때 저지르기 가장 쉬운 범죄다)로 수감된 재소자의 40%가 가족과 거의 대화하지 않거나 가족이 아예 없다. 최근 몇 년간 절도 행위로 수감된 노인의 절반이 수감 전까지 혼자 살았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어느 80대 재소자의 말처럼 감옥은 “항상 주변에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은 곳”이었다.
동료 여성 재소자인 78세의 O 씨는 감옥을 “이야기 나눌 사람이 많은 오아시스”로 묘사했다.
그들에게 감옥은 친구뿐만 아니라 도움과 돌봄까지 제공되는 안식처였다.
2017년 중국 톈진에서는 85세 할아버지가 동네 버스정류장에 광고문을 붙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 내용은 이랬다. “80대 외로운 남성입니다. 어느 마음씨 좋은 분이나 가족이 저를 받아주시길 희망합니다.”
비극적이게도 이 노인은 3개월 안에 사망했다.
이웃 주민들은 2주가 지나서야 노인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외로움은 그저 정신 건강상의 위기만이 아니다. 외로움은 우리의 신체 건강까지 위협한다.
연구 결과 외로움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우리 몸에 해를 끼쳤다.
또한 알코올 의존증과는 비슷한 수준으로, 비만보다는 2배나 더 우리 몸에 해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외로움은 담배를 매일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이나 해롭다. 소득수준, 젠더, 연령, 국적에 상관없이 말이다.
이 척도는 20개의 질문을 통해 응답자가 얼마나 남과 연결되고 남에게 지지와 관심을 받는다고 느끼는지,
또 얼마나 남에게 배제되고 고립되고 오해받는다고 느끼는지 확인해준다.
오늘날에도 이 척도는 외로움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외로움을 내면적 상태인 동시에(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인) 실존적 상태로 정의한다
나는 우리 시대 외로움의 징후는 주변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열망,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갈망,
친구가 없다고 느껴질 때의 쓸쓸한 기분, 디지털 관계나 줌 같은 영상 서비스를 통한 대화는 그런 매우 귀중한 것의 빈약한 모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서로 눈을 보고 몸짓이나 분위기 등 비언어적 단서를 포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감을 경험하고 호혜와 협동을 연습할 수 있다.
연구 결과 공동체에 속한 작은 집단들 간의 교류가 없을 때는 구성원들 간의 신뢰도도 크게 저하되었다.
반면 인종적으로 다양한 집단이 서로 자주 접촉하는 경우 사회의 응집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간단히 말해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의 일상적인 면대면 상호작용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더 잘 보게 만든다.
이 외로운 세기에 덜 외로우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이 접촉해야 한다.
연구자들은 교통량이 적은 거리에 사는 사람은 교통량이 많은 거리에 사는 사람보다 사회적 관계가 3배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욱이 그들의 ‘자기 영역home territory’(내가 소유하고 투자했다는 의식을 느끼는 도로 구간)도 확장된다.
그 이유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교통량이 적은 구역에 사는 주민들은 그들의 거리, 더 나아가 그들의 마을이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대기도 덜 오염된다. 자녀가 밖에서 놀다가 차에 치일 위험도 적다.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더 쾌적하다. 그
러므로 주민들이 공공의 영역에서 벗어나 건물 안으로 숨어버릴 가능성이 더 적고 서로 교류할 가능성은 더 크다.
우리가 하루에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평균 횟수다.
10 시간으로 보면 매일 평균 3시간 15분에 달하고 1년에 거의 1,200시간이다.
10대의 절반 정도가 이제 ‘거의 항상’ 온라인 상태다
전 세계 성인의 3분의 1이 아침에 눈을 뜬 지 5분 이내로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우리 중 다수가 (누구인지 우리는 안다) 한밤중에 깼을 때도 5분 안에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우리가 병원에서 만난 다른 환자에게 미소 짓지 못하게 하는 것, 버스에서 다른 승객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단지 도시 생활의 분주함과 속도만이 아니며, 심지어 현대의 사회적 규범만도 아니다.
휴대전화 스크롤을 내리고 영상을 시청하고 트윗을 읽고 사진에 댓글을 다는 매 순간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과 함께 있지 않으며, 우리가 더 큰 사회의 일원임을 느끼게 해줄 다양하고 일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스스로에게서 빼앗는다.
앞서 봤듯이 이처럼 남에게 우리를 보여주고 우리 존재를 확인받는 소소한 순간이 진정 중요한 순간이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동이 변하고 우리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변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있을 때 낯선 사람과 미소를 주고받는 일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
디지털 기기에 주의를 빼앗긴 부모의 10대 자녀일수록 부모의 ‘온기’를 덜 느낀다고 응답했으며 불안과 우울을 경험할 확률이 더 높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친밀할수록 휴대전화가 상호 공감에 미치는 영향은 더 치명적이었으며 각자 상대에게 덜 이해받고
덜 지지 받고 덜 존중 받는다고 느꼈다.
공감도 민주주의처럼 연습이 필요하기에 특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공감 능력은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공감 효과』의 저자 헬렌 리스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정서를 겪고 있는 사람과 한자리에 있을 때 우리가 그 정서를 알아차리는 것은 고통을 겪는 다른 사람의 정서와 표정과 경험이 관찰자의 뇌에 지도화mapping되기 때문이다.
2019년에는 캐나다에서 1세부터 4세까지의 아동 251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아동의 스크린 사용 시간이 많을수록
다른 아동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다른 아동에게 덜 협조적이며,
주변 사람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스티브 잡스는 가정에서 자녀의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을 엄격히 제한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빌 게이츠는 자녀가 14세가 되기 전까지 휴대전화를 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14세가 되어서도 스크린 타임을 엄격히 제한했다.
한 연구에서는 페이스북·스냅챗·인스타그램 사용량을 플랫폼당 하루 10분으로 제한한 결과 외로움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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