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세 황금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에는 세 문을 통과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무사히 통과하면 황금문에 이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문은 이 말이 참말인가?를 묻는 문입니다. 두 번째 문은 이것이 필요한가?를 묻는 문입니다. 세 번째 문은 이것이 친절한 말인가, 사랑을 담긴 말인가?를 묻는 문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을 정죄하는 태도를 가지고 욥을 고치려고 합니다. 즉 그들은 욥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한다고 비난합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고난을 돌이키시고 축복하신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욥은 오히려 당신들보다 내가 더 의롭게 살았다. 당신들이 어떻게 나를 정죄할 수가 있는가?
욥의 세 친구들은 그러면 당신이 죄가 없다면 왜 이런 고난을 당하는가? 그러니까 욥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불평합니다. 나중에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엘리후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고난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교훈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성장의 기회를 삼아야 합니다. 또한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합니다.
엘리후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대화는 서로 동일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욥기 33장 6-7절에 보면 엘리후는 자신이나 욥이나 똑같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언급합니다. 내가 당신을 두렵게 하거나 누를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둘째,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교훈하신다고 말합니다(욥 33:14-26). 말씀을 통해서,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질병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십니다. 그리고 욥기 33장 26-30절에서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유익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욥기 35장 6-8절에 보면 엘리후는 욥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의 죄가 하나님께 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의 의가 하나님께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지적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의를 고집하는 교만 때문입니다. 엘리후는 욥기 37장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회로 삼으라고 권면합니다(23-24절).
1. 우리가 무엇을 말하는가? 보다 어떻게 말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욥의 세 친구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욥을 괴롭혔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사실 욥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욥을 정죄하였습니다. 욥기 32장 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도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부분이 바로 정죄입니다. “정죄”란 어떤 사람이 고통을 당할 때 당신이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큰 일을 당할 때 사람은 누가가 자기가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많은 유익을 줍니다. 심지어 불신자들도 무슨 큰일이 생기면 내가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스스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도와주는 것은 필요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가 그 사람의 잘못을 고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섣부르게 단정하면 그 사람은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의 정죄하는 태도에 대해 하나님은 책망하십니다(욥 42:8). “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과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당신의 말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욥의 세 친구와 같이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문제를 지적하고 고치려고 합니다. 그들은 서로 말로 상대를 꺾으려고 합니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위로와 격려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감싸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말을 아껴야 합니다.
그런데 욥의 세 친구(앨리바스, 빌닷, 소발)는 욥을 신랄하게 정죄함으로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욥 42:7, 9). 그러나 욥의 또 다른 친구 앨리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엘리후는 오랫동안 참고 기다린 후에 예의를 갖추어 말합니다. 욥기 32장 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엘리후는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여러 해 위이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욥기 32장 11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노라 당신들의 슬기와 당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노라." 엘리후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집어 냅니다.
엘리후의 대화는 따뜻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호소력이 있습니다. 욥기 32장 18-1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 엘리후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가슴으로 욥을 위로하고 사랑으로 일으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엘리후는 성령의 감동을 힘입어 고통 중에 있는 욥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욥기 32장 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엘리후는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욥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공급받게 합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져있는 욥으로 하여금 생명의 빛을 보게 해줍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의 말은 사람을 회복시켜줍니다. 엘리후는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의 볼 수 있도록 합니다.
2.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있습니다.
1)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 말씀에 보면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원망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원망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립니다. 원망은 서로의 관계를 깨트립니다. 원망은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둘째 완악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말라기 3장 13-14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우리가 주님을 일을 하다가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약한 소리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완악한 말"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말을 내뱉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라 슬픈 일이라고 말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해서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기대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낙망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자금 당장 힘들다고 해서 이전에 주님을 위해 잘 해왔던 것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2)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성도는 화목하게 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 보면 성도는 이 세상의 소금입니다. 마가복음 9장 50절에 보면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4장 6절에 보면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 보면 그리스도인은 화목케 하는 직책을 받은 자들입니다. 여기서 소금이란 화목하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삶을 나누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더구나 교회나 지도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혹 부정적인 생각이나 , 혹은 건의사항이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서로의 삶을 나누었던 내용은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지켜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조차 그 부분을 지켜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좋은 관계는 화목케 하는 말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서로 비판하거나 논쟁하거나 변명하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하더라도 서로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성도는 또한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4절 말씀에 보면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성도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농담이라도 서로를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말은 피해야 합니다. 언제나 감사하는 말을 하는 말을 할 때 감동을 받게 됩니다. 감사하는 말을 할 때 비로소 좋은 관계가 형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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