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당할 때 어떠한 경우에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왜 나만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을 비참하게 몰고 가서는 안됩니다. 누구 때문에 이런 고통을 겪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하거나 원망하는 자리에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이제 내 인생을 끝난 거야, 나는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기분에 빠져들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나만 이런 고난을 겪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 말씀입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징계는 특별한 사람만이 받는 것이 아니고 신자라면 누구나 다 받는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에게 징계가 없다면 그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징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다만 고난의 종류가 다를 뿐이요, 고난의 순서가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잘 믿다가 어떤 큰 어려움이 닥치면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살아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욥기 23장 8-9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반드시 붙잡아야 할 약속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기 때문에 고통을 주는 것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를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분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언제 자녀에게 징계합니까?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거나 자기 뜻대로 고집할 때입니다. 부모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부모는 매를 들게 됩니다. 자녀가 앞으로 잘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기 백성이 언약을 어길 때 징계하십니다. 레위기 26장 14-16절 말씀입니다.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찐대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 말씀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하나님이 분명히 아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의 손에 빚어지고 있는 보석이었습니다. 서로 옆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손에 빚어지고 있는 보석입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
정금을 만들려면 금광을 찾아 캐들어 가야 합니다. 금광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금광을 찾아도 금은 바로 나오지 않습니다. 대개 금성분이 들어 있는 원석을 부수고 불에 녹여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찬란한 백퍼센트 순금이 만들어집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연단을 받지 않으면 잡석 같은 인생으로 끝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보석과 같은 존재를 만드시기 위해서 고난과 징계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가 고난 앞에서 시험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도 결국 실패해서 징계를 당합니다. 그러다 보니 말씀으로 살지 않아도 나중이 징계가 오니까 어차피 징계가 올 것 같으면 아예 말씀을 버리고 세상을 가자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징계를 당하는 것과 아예 말씀없이 세상으로 가다가 두들겨 맞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도 넘어지고 연단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훈련입니다. 정상적으로 믿음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예 말씀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정금같이 나오는 기회로 삼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를 주시는 세 가지 이유를 분명하게 깨닫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첫 번째 이유는 영혼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을 멸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욥기 33장 28-3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 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욥의 영혼을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내시기 위하여 고난을 재삼 행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도를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5장 10절 말씀입니다.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우리가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자기 뜻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채널로 우리를 교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잘못된 삶을 여러 번 말씀으로 교훈하십니다.
욥기 33장 14절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꿈이나 환상을 통해 사람의 죄악을 지적하시며 교훈하십니다.
욥기 33장 15-16절 말씀입니다. "사람의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기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질병의 고통을 통해 징계하십니다.
"욥기 33장 19절 말씀입니다. "혹시는 사람의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 모든 일을 고난을 재삼 행하신 이유는 바로 욥의 영혼을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시기 위함입니다. "욥기33장 30절 말씀입니다.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8-10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우리를 큰 사망에서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너무 심한 고난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상태까지 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겪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러한 고난을 당한 것을 팔자소관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비참해졌다고 푸념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러한 고난이 필요해서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숨막히는 고통을 통해서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그렇게 붙들었던 부분들을 하나하나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의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과거에도 하나님이 나를 큰 사망에서 건지셨고, 현재의 위험한 상황에서도 건지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앞으로도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간에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그분이 건져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징계를 주시는 것은 내가 붙잡고 있던 것들을 이제는 놓으라는 신호입니다. 앞으로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거기서 건져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세 번째 이유는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 말씀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에게 육체에 고통울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강정 때문에 결코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10절 말씀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또한 우리는 자신의 약점 때문에 비굴해지거나 열등의식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는 일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자신의 약점까지도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자신이 약하다는 것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력에 붙잡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즉 약할 그 때에 곧 강한 자가 될 수있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경험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두 종류의 멋진 사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상적으로 능력있고 뛰어나기 때문에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대체로 [벤허]의 영화에 나오는 '멧셀라' 같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해 이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거기에 비해 두 번째는 신앙적으로 세상에서 성공한 '벤허'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감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의를 보면 견디지 못하고 분노를 느끼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 가장 멋지다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철저하게 감추어진 보배입니다. 이 사람들은 많은 환란과 고통을 통해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이들은 이전에는 세상에서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의 연단의 손에 걸려드는 바람에 인생 밑바닥에 내동이치게 되고 그 후에 다시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많은 환란을 당하고 인생의 밑바닥에서 다시 정금같은 신앙으로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용서, 누구에게 구해야 하는가?(욥기 42:7-9), 김덕선 목사 (1) | 2026.03.01 |
|---|---|
| 당신의 말은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가? (욥기 32:1-11), 김덕선 목사 (0) | 2026.02.28 |
| 하나님이 당신을 붙들고 계십니다(욥기 8:20), 김덕선 목사 (1) | 2026.02.28 |
| 서원과 십일조의 규례(레위기 27장) (0) | 2026.02.27 |
| 전쟁의 교훈(사사기 3:1-7) (1) | 2026.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