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누구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있습니까? 환경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긴급한 일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사단의 명령에 따라, 어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움직이고 있음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육체적인 감각이나 영적인 감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영적인 감각이 뛰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문제 앞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이 무엇일가? 예수님이라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하셨을까? 나름대로 판단이 서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생각치 않고 자기의 위신과 체면 그리고 자기의 기분대로 움직인다면 그것이 자기의 일이 될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섬겨야 합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섬기는 것은 큰 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극복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저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요 하는 기도는 하나님 저에게 시험을 내려 주십시요 하는 기도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통과한 후에 복을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모든 일이 잘되면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꼬이면 그때부터 원인분석을 하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기기를 살 때 스위치를 올려서 작동이 되면 그 기기를 사서 쓰다가 만약 고장이 생기면 그때야 설명서를 읽어보는 경우 같습니다. 설명서를 먼저 읽어보고 그 기계의 하자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설명서를 먼저 읽어 보아야 합니다. 믿는 우리가 자기 마음대로 살아온 것 같아도 5년, 10년이 지난후에 과거를 돌아보면 자기 마음대로 산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라는 표현이 8회나 나타나 있음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제쳐두고 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행위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귀신도 하나님을 믿지만 불순종하고 반역했기 때문에 결국 그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런 대책도 없어, 별다른 여행준비도 없이 죽음의 땅 광야를 행진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주셨읍니다. 어떠한 현상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 아니라 그들이 광야 여행을 하는 동안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 다(출 40: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형식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쫓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야 합니까?
첫째로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이라(18-21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사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몰라서 그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소원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내 체면 때문에 나에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명령을 거역할 때가 많습니다.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 앞에 분명히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해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명령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순간에 비로서 앞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동박박사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갈새 그 별이 문득 알서 인도하여 같다고 했읍니다( 마 2:9).
광야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구체적으로 받으면서 성령께서 날마다 우리의 갈 바를 알게 해주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우리의 일몰을 일출로 바꾸어 주십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진행신호와 정지신호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마땅히 가야 할 때 가야 합니다. 멈추어야 할 곳은 반드시 멈추어야 합니다. 추월은 금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들이 떠오르면 진행했다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면 정지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일에 우리 임의대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리빙스톤이 성공한 결정적인 이유는 세상 끝날 때까지 하나님이 주신다는 약속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마 28:20).
한편 하나님이 떠나셨는데 우리가 머물러 있는 것은 괜히 힘만들고 별다른 열매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모든 것을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타이밍을 맞추어 가면서 행동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일해야 할 때와 쉴 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서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책임과 하나님의 책임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편한 곳에 계속 머무르거나 반대로 불편한 곳이라 하여 성급의 떠났다면 그들은 한사람도 생명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때는 마치 물결을 거술러 올라가는 것처럼 힙듭니다. 내가 원하는 기후나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순종해야 합니다. 아침에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진행하였고, 날이 서늘한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진행지 않고 오히려 뜨겁게 헷빛이 내려 쪼일 때 진행하다니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가는 일입니다. 그들은 뻘리 가나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조바심을 억제하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틀이든지 한달이든지 일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으면 진행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22절). 때로는 조바심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행동해야 합니다 (20절).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하고, 구름의 변화에 따라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빠른 여행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방법을 앞세워 너무 성급하거나 게으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켰습니다. 여호와의 직임을 잘지켰더라 (23절). 그러나 그들은 일시적으로는 잘 지켰지만 끝까지 견디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매우 적었습니다. 심지어 모세 역시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사울 왕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기 중심대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다가 결국은 실패한 인물이 되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모든 나쁜 환경 속에서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인내하며 손종한 대표적인 연물입니다(행 16:24-25).
둘째로 하나님의 명령은 양면성을 띠고 나타나기도 합니다 (16절).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에 그것을 덮었고 남이면 불모양이 있었는데
여기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서로 다른 별개의 두 기둥이 아니라 한 기둥이 이중적인 인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출 14:24).
하나님의 사자 가브리엘 천사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아울러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자가 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때 아나니아 역시 사도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습니다(행 9: 15-13), 베드로가 각색 네 발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을 먹으라고 환상을 보는 순간, 고넬료 역시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정하는 지시를 받았읍니다(행 10:5-20).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떠났을 때 약대에게 물을 마시우게 하라고 말하는 소녀가 바로 그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될 것을 부탁했을 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획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길을 보여 주십니다. 내 뜻대로 행하는 자에게 내 뜻을 알려주시마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계획은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때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계획을 동시에 알리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든지 그의 뜻에 진심으로 순종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그의 계획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두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어디가 있고 무엇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무엇)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어디)에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어디를 찾느냐고 너무나 많은 시간을 씁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이 어디인 줄 알면서도 그가 원하시는 무엇은 하지 않습니다. 어디는 괜찮은데 무엇에 문제가 있습니다.
세째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내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십니까? 세상이 여러분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과연 나는 어떤 종류의 그리스도인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종류의 그리스도인인가? 우리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의 고도를 높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끌어올리십시요. 우리의 삶을 그분에게 빌려 드리십시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에서 당신의 삶을 통해 크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무엇이든 원하면 한다는 것이 그저 입에 붙은 말이 아니라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변화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나를 변화시켜 주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현대인들은 삶의 내용보다는 스타일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그들은 생의 모든 내용을 미래의 요구에 예속시키기 원합니다.
인생의 가치를 측정하는데 세 가지 동사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가진다'는 동사(소유의 문제)이고, 둘째는 '한다'는 동사(인간의 행위와 봉사) 이며, 셋째는 '있다'는 동사(인간의 본질적연 성격)입니다.
루터의 말 가운데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표현이 있습니다. "각자는 타인에 대해서 그의 일용할 양식이 될 때에야 생명의 덕은 먼저 내 음식이 될 수 있다. 각자가 타인에게 대하여 그리스도가 될 때에만 내 안에 있는 바리새인이 먼저 기도로써 억압될 수 있다."
중세기의 성자 토마스 아캠퍼스는 담아기를 신앙의 사량은 두가지 눈을 가져야 합니다. 즉 그의 왼족 눈은 땅위의 사물들을 바라보고, 그의 오른쪽 눈은 하늘에 속한 일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다른 문화권에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문화의 극치에 도달하면 하나님께 도전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본받게 마련입니다.
나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있는가? 내가 왕께 복종하지 않으면 그는 나의 왕이 아닙니다. 또한 능력이 없으면 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는가 여부는 내가 왕이신 예수님에게 얼마나 복종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과다한 활동과 성급함 입니다. 우리는 놀라운 정도의 변화 속력에 의해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변화로 인하여 신속히 일을 처리해야만 하고 더 자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며 생각하는 일보다 행동하는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러스킨은 말하기를 진정 가치있는 것은 생각과 판단이지 걷는 속도가 아닙니다. 영국의 전도자 레오나드 라벤힐은 말하기를 오늘날 교회가 강조하는 것은 헌신이 아니고 소동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의 인도하심에 따라 주의 인도하심에 따라 어디든지 주와 함께 가려는 찬송을 아무 생각없이 너무 쉽게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이라면 다루지 않게 될 기사는 제거해야 합니다. 술과 담배를 선전하는 광고를 싣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면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얼마나 가지고 있냐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있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것이라도 나서면 하나님께 충분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당신이 구원받으며, 성령이 충만하여 섬기며 그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작곡가 멘델스존에 새로 실시한 오르간을 보기 위하여 독일의 만성당을 방문한 일화가 있습니다.그가 성당에 도착했을 때 그 성당의 젊은 오르간 연주자가 멘델스존의 한 작품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멘델스존은 그에게 그게 오르간을 한번 만 쳐보자고 부탁하자 거절당했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하고 오르간에 손을 얹자 그 젊은이는 화를 내었습니다. 세번째로 멘델스존은 끈질기게 부탁했습니다.
결국 오르간 연주자는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멘델스존은 오르간을 조정하였고 자기의 작품을 연주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젊은이는 선생님 댁이 누구인지 말씀에 달라고 했습니다. 제 이름은 멘델스존입니다.오!, 저를 용서해 주십시요. 젊은 연주자는 외쳤을니다. 선생님이 누구인지 몰라 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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