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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말에 대한 신자의 태도(베드로전서 4:7-11),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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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가 기록될 당시의 신자들은 불같은 시험과 고난 그리고 심한 박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4:12).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그들에게 종말의 긴박성과 이에 신자들이 어떠한 태도로 준비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본서의 장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서신을 기록한 주된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베드로전서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것입니다.

 

더구나 종말에 대한 신자의 태도가 양극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 어떤  이는 종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현실생활을 포기하려는데 반해, 어떤 이는 종말에 무관심한 채 현실생활에  안주하려는 이러한 상황에서 성경의 원리에 기초한 종말의식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없습니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본문에 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게 것입니다.

 

본문 7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말은 그리스도께서 잠시 후에 오셔서 만물의 마지막을 고하실 것을 의미합니다(벧후 3:10). “가까왔으니 단어는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의 임재를 표시하는데 자주 사용되어 왔으며( 3:2; 1:15; 10:9; 10:25), 종말의 임박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종말이 임박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 확실합니다. 모든 시대의 신자들은 그때보다 지금이 종말이 더욱 임박한 것을 깨달아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짦은 시일 안에 온다고 단언함으로써 일상생활을 포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종말에 대한 신자는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할까요?

 

1.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7). 많은 기도를 하라고 권면함으로써 사도 베드로는 기도하는 것이 필요불가결한 것이요 믿는 자들은 특히 기도 안에 머물러야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도는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벧전 5:17).

 

그러나 기도는 아무렇게나 형식적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기도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께 대한 태도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거나 급한 마음으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5:2). 그리고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해서는 안됩니다( 6:7).

 

본문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말은 불건전한 사색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깨끗한 정신, 냉정, 자제력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신이란 말은 세상 것들에 취하지 아니하고 마음의 상태와 기질을 근엄하게 안정되게 그리고 견고히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위의 단어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연관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건전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생활하지 않으면 그만 세상으로 기울어지며 취하게 마련입니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쾌락은 마음을 미혹하여 나태함에 빠지도록 합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세상의 틀에 맞추어서 생활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세상의 올가미에 사로잡혀 있어야 합니까? 우리는 이제 세상에 속한 욕심을 버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이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나 아버지께로 쫓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쫓아온 (요일 2:16)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예고없이 임하는 일이 없도록 자주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21:34).

 

2.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니라(8). 신자들은 서로가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구약의 최대의 계명이요( 12:31), 주님의 새계명이기 때문입니다( 13:34). 사도 베드로는 무엇보다도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댜. 무엇보다 말은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믿음이나 소망보다 위대합니다(고전 13:13).

 

사랑은 완전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 4:12). 많은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 보다 신자들 상호간에 있어야 합니다. t사 베드로는 이교도들이나 우상 숭배자들 혹은 배교자들을 위해서 말이 아니라 너희 가운데서 사랑을 베풀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13:1).

 

또한 우리는 열심으로사랑해야 합니다. 열심으로 말은 열성뿐 아니라 지구성을 의미합니다. 강렬하게, 뜨겁도록, 변함없이 진실되게  사랑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가 기록될 당시에 신자들은 고난과 박해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더욱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경우도 그때와 상황은 다르지만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불신풍조가 만연된 서로 속고 속이며 때문에 서로 경계하는 시대일수록 사랑이 메마르고 식어지기 때문입니다. 너무 경계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열심을 잃게 됩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랑은 잃은 대표적인 교회로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2:4).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할 없는 가운데 베풀어지는 사랑이 가장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2:5).

 

그런데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 구절은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나오는 솔로몬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것은 사랑의 놀라운 효과를 말합니다. 사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방의 죄를 용서하고 잊게 해주며 다른 사람의 죄를 약화시키거나 퍼트리기보다는 그들의 죄를 가리워 줍니다. 사랑은 용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18:22)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사하여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주기도문의 내용은 사랑의 효과를 나타냅니다.

 

마르틴 루터는 나의 사랑은 이웃의 죄를 덮을 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가 믿을 나의 죄를 덮어주심 같이 나도 이웃의 죄를 덮어주어야 한다 했습니다. 누구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보다 많은 죄를 가리면 가릴수록 인간의 행복을 위해 사랑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죄를 그대로 묵인하려는 태도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 것을 권면한 후에 이제는 서로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9). 당시에 나그네와 여행자를 대접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습이었고 더구나 박해와 고난으로 인해 신자들은 서로 대접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때때로 신자들은 자신의 소유를 빼앗기고 나라로 피신했는데 이러한 경우 만일 그들의 동료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생존 자체가 여려웠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신자들에게 서로  대접하라고 권면한 이유는 사랑이 일방적으로 실행될 사랑은 약해지기 쉬운 까닭입니다. 누구든지 대접을 받기만해서는 안됩니다. 대접할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서로 대접하는 관계가 형성될 사랑은 돈독케 됩니다.

 

서로 대접하되 원망 없이 해야 합니다. 지나친 부담과 수고로 인해 불평을 해서는 됩니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아무리 대접을 했다 하더라도 원망하는 마음으로 한다면 진정한 것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나그네들이니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 극진히 대접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것을 공급하며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12:13)

 

3.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10).

봉사란 이웃을 위해 선을 베풀고 가진 것을 기꺼이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봉사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1)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샤들을 다양하게 주셨습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로서 본래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 5:15; 11:29)였으나, 점차로 성령을 통해 개인에게 주신 여러 가지 특별한 재능( 12:6, 8; 딤전 4:14)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은 서로를 위하여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가진 은사가 일반적인 것이든, 특수한 것이든 간에 은사를 이웃과 더불어 기꺼이 나누도록 해야 합니다. 각각 주어진 은사는 서로의 도움과 협력을 통해서 유익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고전 12:7). 이런 다양한 은사가 서로 연합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교회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를 부러워하거나 탐내고 자기가 받은 은사를 경히 여기는 것은 성경에 위배됩니다.

 

고린도전서 1:7에는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라.

고린도전서 12:23에는 눈이 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각각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주신 것이므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은사를 주신 목적이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데 있음을 깨닫고 받은 은사를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2)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은혜를 맡은 청지기로 생각하여 이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청지기 주인이 맡긴 것을 가지고 주인의 뜻에 부합하게 일하는 자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청지기라고 하였고(고전 4:12), 교회의 감독을 그렇게 불렀고( 1:7), 여기서는 모든 신자가 청지기라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받은 은사가 하나님의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서로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맡겨졌다는 확신의 기초 위에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선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서 부여 받은 책임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충성된 청지기는 자기가 맡은 은사를 하나님을 위하여 활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고 하나님 앞에 풍성한 결산을 있어야 합니다.

 

(3)   사도 베드로는 다양한 은사 가운데 가지 실례 말하는 것과 봉사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첫째,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같이 하고(11). 여기에서 "말하는 자"란 공적인 권위에 의해서 정당하게 선택 받은 자를 의미하는데, 좁은 의미로는 설교의 직분을 맡은 교역자를,  넓은 의미로는 가르치는 교사로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직분을 맡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자기의 사상을 전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구약 전체를 가리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전무하였습니다( 6:4),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자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했으며, 또한 자가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그리고 경건하게 수행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르치는데 종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교훈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이외에 어떤 것도 합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서 경외와 충성과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해야 하는데 이것은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하게 비로서 가능합니다.

 

둘째 봉사하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같이 하라(11)

 

여기에서 봉사 신자들이 행하는 모든 수고와 노력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지 아니하면 계속할 없습니다.

하는 같이 하라 말은 모방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받아 일하는 자로서의 자격을 갖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같이 봉사하라는 말은 조금도 자기 자신의 힘으로 하는 같이 여기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교회에 복종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봉사를 하든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으며, 단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 합니다( 1:29). 그리고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쫓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해야 합니다(벧전 5:3). 우리는 또한 봉사가 형제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봉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11).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는 생활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5:16).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베풀어 주신 것은 우리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다른 어떤 대상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에는 하나님의 은사를 모욕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봉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자들에게 내려왔고, 신자들이 돌리는 영광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와 그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행하는 어떠한 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범사에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는데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영원토록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가기

 

우리는 지금까지 본문을 중심으로 종말에 대한 신자의 태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신자는 항상 종말의 임박성을 깨닫고 생활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종말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포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종말에 대한 준비는 신자의 생활 전체를 통해서 균형있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을 아울러 갖추어야 합니다. 내적인 면이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정상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외적인 면이란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 용서의 폭이 넓어집니다. 우리는 세상이 이해할 없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남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봉사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내적인 면이든 외적인 면이든 간에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깨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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