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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민수기 16:13-14),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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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되돌아보면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인생은 실패한 것일까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의 결과가 안 좋으면 내 인생은 끝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과거 때문에 아파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목표를 대부분 이루어왔다면 대단한 일을 한 것일까요? 그러나 성공과 자랑의 기쁨도 잠깐으로 끝나고 또 다른 허탈감에 사로잡힙니다. 내가 이것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 바둥거리며 살아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지금 누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 인생은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탈출하게 됩니다. 정치적인 상황이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이집트의 억압에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을 통해서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도착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그들의 경유지는 끝없는 사막이 펼쳐지는 광야입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스라엘 열 두 정탐군들이 가나안 땅을 답사한 결과를 보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 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받아들인 결과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출애굽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 땅을 악평했던 사람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다 죽게 된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이 말로 전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서야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땅으로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14:39). 아멜렉과 가나안인이 산에서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내려왔습니다( 14:43,45).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나중에는 자신에 의해 움직이고 맙니다. 우리는 가칠고 황량하고 고독한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남아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이 기뻐하시면 그 일을 합시다.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을 두려워합시다. 젊음의 한 때를 다시스로 도망하는 요나와 같이 여호와의 낯을 피하지 말고 헌신의 기회로 삼읍시다. 인생의 황금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인생을 삽시다. 왜냐하면 인생의 가장 찬란한 때는 헌신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힘들어질 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민수기 15장에서는 제사를 드리는 규례가 나옵니다. 제사 규례의 핵심은 언약 백성의 회복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꾼 사건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했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배를 드릴 때 언약의 축복을 회복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라.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도록 하라.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면 하나님 앞에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니라( 15:39-41).

 

이어서 민수기 16장에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반역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고라는 레위인으로서 아론의 제사장 직분에 도전하여 모세와 아론을 반역합니다. 모세는 고라와 무리들이 향로를 담아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자고 합니다. 제사장은 아침 저녁으로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성소 내의 분향단에서 향을 불사름으로써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16:12). 따라서 모세는 진정 누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거룩한 자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고라 일당에게 '향로'를 취할 것을 제안합니다.

 

또한 모세는 고라의 일당들에게 레위인으로 성막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데 제사장 직분을 구하느냐. 너희의 원망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범했다고 권면합니다.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지만 그들은 올라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고라의 무리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어디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즉 그들이 생각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이집트를 가리킵니다. 당신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디입니까?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몰라서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탐꾼들을 보내어 그 땅이 얼마나 기름진 땅인지 힘센 장년 두 사람이 포도송이를 막대기에 꿰어 들고 올 정도였습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눈이 열리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배에 소홀하면 우리는 육신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자기 딴에는 잘한다고 했던 일들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골라서 하게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자신의 인생의 초점을 맞추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분이 내 인생을 붙들고 계시는 것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우리는 별수 없이 육신의 생각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끝난 게 아닙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그들이 아직까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이지도 않은 것은 모세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따라 다니면서 좋아진 게 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차라리 이집트에 있을 때가 더 나았을 뻔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광야에서 죽이려고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 아니냐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라의 무리들처럼 결과가 안 좋으면 책임을 지도자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이렇게 안 주셨다고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를 싫어해서 그랬을까요? 모세가 그들을 가나안 백성으로 인도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밤새도록 울면서 스스로 망했다고 생각하면서 포기해버려서 그런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신이 없다고 원망해서 그런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잘못 선택해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다른 곳에 있지 않은 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상황이 어렵고 힘들 때 비교를 잘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와 광야를 비교하면서 이집트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말합니다. 고라의 무리들도 지금까지 광야의 생활과 애굽에서의 생활을 비교할 때 애굽에서의 생활이 훨씬 더 좋았다고 말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의 생활이 바로 그 시절이었다고 말합니다.

 

신자는 고난당할 때 현재의 고난과 장차 나타날 영광을 비교해야 합니다( 8:18). 신자의 비교의 대상은 더 나은 환경과 더 열악한 환경이 아닙니다. 신자의 비교의 대상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비교의 대상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약속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결과가 안 좋아서 마음이 상하지만 시험 들지는 마십시오. 지금 결과가 안 좋으면 내 인생이 끝난 것입니까? 당신의 삶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최악의 상황을 바라보고 결론을 내리기엔 이릅니다. 지금 포기하시면 안됩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한 것으로 위안을 삼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의 실패의 아픔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것은 인생의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한 문제에 불과합니다. 힘을 내서 당신이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한 문제씩 풀어가십시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당신은 해낼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성공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이 정말 필요로 하는 곳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그 성공은 당신을 위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듯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는 때가 있습니다. 신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역전이 가능합니다. 신자는 죽은 이후에도 역전이 가능합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는 죽은 이후에 완전히 역전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지치고 마음이 상할 때 결론을 내리지 맙시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아직 좋은 것은 오지 않았습니다.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은 끝까지 잘 사는 것입니다.

 

결국 잘 죽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잘 죽는 것은 평생에 걸친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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