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이번 고난주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남긴 일곱 가지 말씀, 가상 칠언에 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첫번째 말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가상칠언은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 중에 주신 말씀입니다.
1.예수님은 왜 용서의 기도를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어떤 것이 힘드셨을까요? 범죄자 중 한 사람으로, 죄인 취급 당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못박히실 때에 육체적인 고통이 극심하셨을 것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인간의 죄를 담당하셔야만 했던 고통이 가장 힘들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향하여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어떤 말을 주로 하는 편입니까?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여기서 '알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영적인 무지를 말합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조차 몰랐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 대한 판결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자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조차 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소리쳤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 인줄 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르고 죄를 지었다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emf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는 응답받았을까요?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멍해집니다. 사람은 고통이 가해질 때 미워하거나 원망하게 되어있는데 예수님은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가 응답받았을까요? 우편 강도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의 용서를 기도를 듣고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일에 관여했던 백부장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합니다(마 27:54).
50일 후에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그들은 어찌할꼬 회개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6-38절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답답했던 제자들과 함께 모였던 120명의 성도들의 신앙이 오순절 성령 체험을 통해서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죄에 대한 회개와 죄사함을 받으면서 그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스데반도 자신을 돌로 치는 무리들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9절입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는 과정 속에서 스데반의 기도를 들었던 바울에게 암창난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변화는 용서의 경험을 받아야만 인생의 진정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용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믿음이 악히고, 관계가 막히고, 인생이 막히게 됩니다.
3. 우리 역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용서를 하지 못하고 미움으로 가득차 있으면 모든 것이 어두워지고 망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벤허' 영화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면서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 번개가 칠 때에 자신의 누이와 어머니의 문둥병이 깨끗하게 고침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벤허가 자기 친구를 죽이고 싶은 미움의 칼이 빠져나갈 때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 기도를 듣는 순간 벤허가 자기 친구에 대한 미움의 칼이 빠져나간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진정한 치유는 용서에 있습니다. 더 이상 용사할 수 없다고 피하지 마십시오. 미움의 감옥, 저주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벤허는 자신을 그렇게 괴롭혔던 친구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용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살아나려면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하려고 하지만 잘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를 너무 힘들게 하고 고통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당시의 종교적 지도자들과 로마 군인들과 군중들과 제자들, 그리고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주님이 용서가 되셨을까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의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용서의 십자가를 져야 할 사람은 우리 가까운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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