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일(5/25 주일)
아들이 공항에 데려준다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공항버스 노선과 시간을 계산하지 못했다, 수서역에서 공항버스 노선이 없어졌다는 것을 도착해서 알게 되었다. 이럴 수가! 다시 수서역에서 학여울에 도착하니 5분전에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아들 차타고 공항으로 방향을 전환해서 가던 중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전화로 전했다. 가족들의 빠른 판단으로 삼성역 공항터미널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듣고 거기에 도착했다. 3분후 출발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무인티멧 발매에서 쿠펀을 끊고 보니 유아용 티켓, 다시 담당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정시, 갑자기 화장실이 급히 말하고 볼일보니 정시 2분후 출발하다. 가는 도중 나목사님 전화 받고 가슴이 철렁하다. 인천 공항 도착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게 10분 늦었다.
인생도 미리 정한 코스를 밟으면 문제가 없는데 갑자기 변경한 경우 문제가 발생하서 계속 좇기다가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들이 운전하면 피곤하다는 것을 알고 위해서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거기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이런 일이 생겼다는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중국 청도에서 오시는 정목사님과 사모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었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많은 시간 기다리는 중 사모님들은 비행기에서 잠을 잘 때에 필요한 목 베게를 다들 구입하는데 그냥 구경만 하다. 이상하게 스마트폰 밧데리가 얼마 남지 않아 공항에서 무료충전 코너에 가서 꼽고 기다리다. 불안해서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오다.
드디어 밤 11시 50분에 이스탑불을 향하여 비행기가 이륙하여 하늘을 나르다. 드디어 새로운 과정을 향해 발을 떼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전에 붙잡혔던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떠나가는 도전을 경험하게 되다. 드디어 지구를 떠나다. 도착한 다음날 일정이 바로 진행되기 때문에 취침에 빠지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박목사님 사모님이 까무러쳐서 일어나지 못하고 몸이 마비가 되어 일어나지 못한 채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간절히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정말 어렵게 출발했는데 사모님 속히 일어날 수 있도록 마비된 기관들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안 그래고 이번 일정 진행할 때에 아려운 일이 있어서 마음이 조금 불편한 가운데서 진행하던 차에 더 절실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노회를 대표하던 입장에 있다 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하는 책임감이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박목사님이 어떤 시트지에 무슨 싸인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더욱 불안해진다. 왜 그런지 상태가 어떤지 유목사님께 물어 보니 주일날 전혀 식사를 하지 못하고 저혈압 상태라고 한다. 주님 도와주세요. 노회장이라서 그런지 전에 느끼지 못하는 중압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실 때 주님의 중압감이 어떠셨을까? 감사하게도 사모님이 일어나셔서 화장실로 가신다. 할렐루야 안도와 감격의 순간이다.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타투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하기 위하여 랜딩 준비, 창가에 비쳐진 터어키의 반짝거리는 불빛이 매우 아름답다. 안전한 랜딩 위해 기도하다. 관제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더 신경쓰게 되고 더 주님을 의지하게 된다. 짐을 찾으려 이동하다 일부 목사님과 사모님이 트랜스퍼하는 줄에 서서 따라 가신다. 누군가 거기 가서 모시고 오신다. 사람은 누구를 따라서 서는가, 즉 줄을 잘 서야 한다. 아는 사람 따라 가야지 놓쳤을 경우에는 더욱 찾아서 방향을 잡고 따라 가야 한다.
공항에 도착해서 세면을 하다.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려고 하는데 물이 안나온다. 이것 저것 만져도 안나온다. 설마 자동은 아닐꺼라 생각하고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도 안나온다. 이쪽 라인 전체가 안나오는가 ? 생각하고 다른 쪽 라인에 사람이 다 나간 후에 손을 대니 자동으로 물이 나온다. 머리 2분만에 깜고 군대식 실시에 들어가다.
제 2일(5/26일 월요일)
첫날 아침은 한정식을 맛있게 먹다. 가량미 밥인데 윤기가 돌고 쫄깃쫄깃하다. 그 이유인즉 압력밭 속으로 밥을 해서 그렇다고 한다. 신앙도 인생도 고난의 압력을 통해 정금같이 나오는 것이다.
터키 이스탐불에 도착하다. 터키는 면적이 우리나라 한반도의 3.5배에 해당되는 매우 큰 나라로서 흑해와 카스피해와 에게해와 지중해 등 네 개의 바다를 끼고 있다. 인구는 약 6200만이고 종교는 전체 국민의 90%가 이슬람교(수니파)를 믿고 있다.
라마단에서 금식을 안해도 되는 사람은 군인, 환자라고 한다. 무슬림마는 신에게 복종하면 복이 온다고 믿고 있다. 이슬람에는 종교증이 있다.
터어키의 소나 양고기는 맛이 있다고 한다. 이유인즉 사료를 먹이지 않고 풀을 먹고 자라서 그렇다고 한다. 역시 창조의 법칙대로 하는 것이 제일 좋다. 인간적인 방법은 반드시 탈이 나고 재앙을 초래한다.
가는 도중 말라다 바다가 보인다. 바다는 말이 나지 않는데 말이다. 부산 바닷가 분위기다. 바다인지 강인지 아는 비결은 갈매귀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 안다고 한다. 믿음이 있는 지 없는 지 어떻게 아는 가? 행함으로 나타나는가를 보면 안다.
드디어 이스탐불 아타투르크 공항에 도착하다. 아타 투르크란 터이키의 정치 체게를 민주공화국으로 바꾸는 첫 대통령으로서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는 곳곳마다 아타 투르크 대통령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곳곳에 이슬람 사원이 한국에 사원처럼 그렇게 많다.
가이드를 만나 이스탐불의 투어가 시작된다. 이스탑불의 성 소피아 성당 옅에 히포드럼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는 주전 15세기 이집트 투트 모세 3세때 이집트 룩소(테베)의 카르낙 신전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중에 하나이다. 이것은 메소포타미아 군대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주후 390년 데오도시우스 1세때 이스탄불로 옮겨졌다고 한다.
모스크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 신발 주머니에 신을 담고, 여자는 히잡을 쓰고 치마가 짧은 한 여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한다. 기독교는 주일 한번 예배드리고 신앙을 유지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들은 계속 눈 손발을 씻으렴서 죄를 씻는데 우린 죄를 죄로 알지 못한채 무조건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방탕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이슬람교 신자의 집의 창문은 항상 깨끗하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의미로 그렇게 한다고 한다. 이슬람교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절차와 의식에 도전을 받게 된다.
이어서 성소피아 사원과 마주보고 있는 블루모스크는 푸르고 초록빛의 타일로 시공되었는데 성 모피아 사원을 모방하여 건축되었다고 한다.
코라의 구세주 교회는 알레기우스 1세의 장모인 도우카니에 의해 1077-1081년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1500년에 회교사원으로 개조된 이 교회는 내부에 현존하는 모자이크 중 가중 보존상태가 좋은 것으로 신약성경의 중요사건들이 그려져 있다.
아침에 한식 육개장을 맛있게 먹다. 모닝 커피 생각이 간절한데 한국과 같지 않다. 1달러를 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것 보면 한국은 음식서비스가 탁월하다.
지하물 저장고(YEREATAN)
6 세기 비잔틴 시대에 궁정과 성 소피아에 식수를 제공하기 위하여 수도교를 통해 가져온 물을 저장해 놓았던 곳으로 그 규모가 대단해 지하궁전이라고도 불리운다. 336개의 서로 다른 신전들에서 가지고온 각기 다른 기둥들이 바치고 있는 신비스러운 곳이다.
이 건물은 비잔틴 제국의 동로마 제국의 전성기이던 유스티니아스 대제(재위 527 ~ 565)시대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크기는 전체의 폭이 70m, 길이는 140m, 높이 8m 규모로 대리석 기둥은 4m의 간격으로 12줄 x 28줄총 336개가 세워져 있다. 총 물 저장량은 8만톤을 저장할수 있다. 들어가면 음산한 느낌과 불가사의한 분위기로 007영화 등의 촬영장소로도 사용하였다.
물속에 잉어를 포함한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데, 이것은 물고기가 살아있는 물은 사람이 먹어도 괜찮다는 의미, 즉 물의 오염도를 측정하기 위하여라고 한다. 1985년부터 3년여에 걸쳐 기둥들 사이에 나무보도를 만들고 조명과 음향시설을 보강해서 개,보수 후에 관광객을 위한 장소로 공개 했다고 한다
드디어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나누는 보스프러스 해협에서 유람선을 승선하다. 이스탐불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자원, 그리고 곳곳에 모스코 탑이 솟아 있다. 마침 한국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 보면 곳곳에 십자가 종탑이 보여지는 것처럼 이슬람 사원의 탑이 세워져 있다. 십자가 4차 전쟁의 폐해로 인해 이슬람교로 바뀌는 불행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에 읽었던 십자군 전쟁을 다시 한 번 읽고 그 시대의 상황을 파악하고 싶어진다. 유람선을 타고 도시 전체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자연의 축복을 받은 이 땅이 기독교 국가가 되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뼈속 깊숙이 부는 바람과 같이 피부 속까지 젖어든다.
아시아와 유럽이 연결되는 거대한 바다의 파도와 바람에 모처럼 향수에 젖는다.
터어키는 4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올리브, 체리, 포도, 각종 과일은 물론 바다의 생선 등 에덴 동산이 여기 어디에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저절로 들만큼 아름다운 도시이다. 올리브 나무는 수명이 2000년인데 200년 동안 생산성이 있는데 수확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슬람교의 잘못된 교리로 인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혀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에 참 안타깝다. 이번에 터어키에서 우리 딸이 좋아하던 체리를 정말 실컷 먹었다. 같이 먹지 못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보물이 가득한 4개의 궁전과 하렘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톱카프 궁전을 방문하다. 거긴 화려한 보석들과 다윗의 칼, 모세의 지팡이가 전시되어 있다. 보석관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다.
약속 장소를 지나치고 박목사님을 따라 나가다 보니 그냥 거의 바깥문으로 나오게 되었다. 다시 들어가려고 했지만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 김목사님이 전화를 걸어 주셔셔 우리 일행은 밖에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정해진 장소를 확실히 알아두지 않고 다른 사람을 따라 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새삼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터키에는 개, 고양이가 많다. 이곳은 개 고양이가 무척 자유스럽게 보인다. 물지 않기 때문에 다행이다. 그러나 저녁이나 새벽에 차가 지나가면 심하게 짖거나 달려든다. 자기 영역을 침해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궁전 마당에서 잔디에 앉았는데 겁은 고양이가 노란 눈을 굴리면서 체리를 먹고 있는 나를 째려본다. 난 체리와 과일 봉지를 손에 꽉쥐고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린다. 눈 싸움에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내가 줄 것 같지 않아서 그런지 이내 포기한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쉰다.
5000개의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그랜드 바자르에는 각종 등과 세공품, 카펫트, 접시 등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여기 저기에 터어크 홍차를 배달하는 사람이 종종 보인다. 난 물건을 고를 줄 몰라서 그런지 살 줄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난 책을 산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산 것이 없다는 것이 표시가 난다.
한 곳에 터키 팽이를 파는 소년이 우리 일행과 흥정한다. 처음에 7개 20달러, 나중에 13개 20달러에 구입한다. 나중에 그 소년보다 큰 아이가 1개 1달러라고 부른다. 아깐 13개 20달러에 샀다고 하니깐 큰 아니가 작은 아이의 뺨을 때리면서 폭행을 가한다. 그 세계에도 상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데서 얼마 주고 샀다는 것은 비빌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싸게 샀다는 자랑은 사라지고 다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
제 3일 (5/27 화요일)
이스탄불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아다나 공항에 도착한 후 버스를 타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이동하다. 버스가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 벤츠인데 에어컨 시설이 빵빵하다. 비가 와도 빗물이 창문에 흘러내리지 않아 창가에 전개되는 자연을 마음낏 구경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수리아 안디옥으로 이동하다. 안디옥은 최초의 크리스찬으로 불리워진 곳이다.
중간에 보석상 쇼핑으로 가이드가 안내한다. 우리 일행과는 상관이 없는 곳이다. 그래도 코스이기 때문에 들어가야 한다. 터키 여자가 먼저 가짜를 소개하고 터키 제품이 진짜임을 반문하면서 재미있게 한국말로 소개한다. 저 여자는 보석을 팔기 위하여 한국말을 잘 하는데 난 복음을 위해서 외국어를 준비해야 하겠다는 도전을 받는다.
가는 도중에 베드로 동굴교회를 답사하다. 멀리서 옆으로 피난처가 될 수 길이 여러 갈래 나 있는 것이 보인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파하다가 박해를 당하여 피난을 가는 모습이 그려져 지는 것 같다. 나 자신의 영적 상태가 안일한 모습에 부끄러워진다. 모 선교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차에 오르다.
사도 바울과 예수님은 9년 차이다. 예수님이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지목했던 그 아이가 나증에 안디옥 교회의 감독인 이그나티우스이다.
콘스탄틴 황제가 323년에 로마의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 데라우스 황제 때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를 정했다고 한다.
예수님의 첫 번째 선교센타가 가버나움이고, 두 번째 선교센타가 수리아 안디옥이다.
사도 바울의 생가인 다소로 이동하다. 우물이 보이는데 당시에 부자였음을 보여 준다고 한다. 30세에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을 보내고 주후 46년에 선교여행 1, 2, 3차 마치고 주후 49년에 갈라디아를 방문하다. 바울이 선교한 거리는 무려 5만 킬로가 된다고 한다.
끝에 “아”로 끝나는 것은 행정 구역을, “스탄”으로 끝나는 것은 땅을, “켄트”는 도시르루 나타낸다고 한다.
니골라당은 안디옥 출신이다.
알라란 하나님 신, The GOD란 뜻이라고 한다.
하다이에서 다소까지 223킬로, 닫소에서 갑바도기아까지 240킬로, 거의 6시간 소요되는 거리를 버수로 달려 갑바도기아에 있는 호텔에N 도착하여 식사를 하다.
제4일 (5/28 수요일)
오랫세월 동안 기후변화로 인해 신비한 모양의 돌들로 변했다고 한다. 갑바도기아 지역은 동부 소아시아에 위치한 곳으로, 그 범위는 약 4000 킬로에 달한다. 이 지역은 오래 전에 있었던 지진의 활동으로 화산에서 뿜어 나온 화산재는 응화암이라는 잿빛 암석으로 굳어졌고, 그 중심은 괴레메와 위구름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프레스코 벽화로 유명했던 괴뢰메 동굴 교회를 방문했다. 프레스코 벽화는 벽화를 바르기 전에 한 것이고, 세코화는 벽화를 마른 후에 한 것이라고 한다. 암석의 생긴 모양에 따라 교회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괴뢰메 동굴에 숨어 신앙을 지켰던 수가 무려 50만이 되었다고 한다. 굴에서 음식을 준비했던 천장은 검은 빛이다. 대소변은 항리에 담아 내버렸다고 한다.
이 굴은 닭이 빠지는 일로 인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우물을 파고 환기통을 만들고 내려가다가 중 중간 물맷돌을 막았다. 길을 잃어빌까봐 바짝 긴장하고 앞에 사람을 쫓는다. 오래갓만에 오리 걸음 실시하다.
바위로 된 신학교 강단에서 허밍으로 “ 환난과 핍박 중에도”라는 찬양을 드리다. 경목사님의 기도에 우리의 나태한 신앙생활과 그들의 신앙생활이 비교되어 다들 눈물에 젖어들다.
바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이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적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던 지하 도시 데린 구유를 방문하다.
성경상의 이고니온인 꼬냐로 이동하여, 릭스호텔에 머무르다. 식사후에 노래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아이들을 대상으로 부모들과 함께 율동과 춤을 가르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교회에서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런 문화행사를 펼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 5일(5/29 목요일)
호텔에서 조식후,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던 비시디아 안디옥을 향하다(행 13;13, 행 14:24). 당시에 안디옥의 이름이 16개가 있었다고 한다.
바보에서 바울과 바나바로 바뀌고 있다. 피르기아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간 산맥은 폰타스 타오르 산맥으로 추정된다. 타오르 산맥을 넘어가야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갈 수 있다.
버가의 현재 지명은 페르게 라고 한다. 버가는 현재 아크스강 강구에서 13킬로 내륙의 평원에 위치한 소아시아의 남부인 밤빌리아도에 있는 고대 도시 중에 하나이다.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시 왕복 2회에 걸쳐 이 지역을 통과하였다(행 13:13, 14;24-25).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여행에 동행던 마가 요한은 너무 힘든 나머지 이곳에서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말았다. 이 일로 2차 전도여행 때는 바울과 바나바가 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이어서 꼬냐에서 안탈리아까지 325킬로의 먼거리를 버스에서 서로를 소개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생활 가운데서 코믹한 체험담과 네덜란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역시 목회자, 사모에게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우리 일행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평 한 마디없이 아름다운 동행을 누렸다. 서로가 섬기는 마음으로 대할 때에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안탈리아의 아침은 평온하다. 지중해의 수온은 차갑지 않다. 이 도시는 관광도시, 휴양도시로서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지역이라고 한다. 구시가지를 방문했는데 분위기 있는 카페가 많다. 이 도시의 방문 마무리를 콘 아이수크림을 혀로 빨라먹는 경험을 하다. 김목사님, 사모님이 쏘셨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 때 안탈리아에서 농산물이 많이 재배되었고 한다. 안탈리아는 인구 116만 명이 사는데 천연항구를 끼고 있다. 아탈로스가 도시를 세워 로마에 바쳤고, 자신은 성주로 남게 되었다. 2차세계 대전시 영국에서 독립되었다.
13세기에 건립된 탑 정면이 푸른 타일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38미터의 이울리탑은 반나선형으로 되어 있는데 1317년부터 사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섬세하고 뛰어난 조각들로 장식된 3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하드리아누스의 문은 엣아테네와 새 아테네의 경게라고 한다.
구시가지 등 안탈이아 시내 답사후 호텔에 투숙해서 휴식하다.
제 6일(5/30 금요일)
안탈리아에서 파묵칼페까지는 약 227킬로인데 3시간 30분 걸려 도착하다. 빵과 과일을 아침으로 먹고 골로새 교회로 가다. 이름대로 버림받은 곳이다.
사도 바울이 직접 가본 교회는 아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를 통해서 소식을 전해 들은 것 같다. 골로새Colosse는 에베소로부터 동쪽 120마일 떨어진 리쿠스Lycus 계곡에 위치했습니다.
골로새로부터 북서쪽 10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는 골로새보다 조금 작은 도시들 라오디게Laodicea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가 있는데, 세 도시 사람들은 서로 왕래했습니다. 많은 유대인이 이 도시에 거주했지만 대부분 이방인이었습니다(골 1:27, 2:13).
골로새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바울이 2년 이상 에베소에서 활약할 때였습니다.
에바브라가 로마로 와서 바울에게 골로새 교회 소식을 전한 것으로 보아 그가 골로새에 교회를 세운 후 라오디게와 히에라폴리스에도 교회를 세운 것 같습니다(골 1:7-9, 4:12-13).
아킵보Archippus가 에바브라와 함께 활동했습니다(골 4:17, 몬 1:2).
바울은 이 서신을 쓸 때 그는 로마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는 이 서신을 라오디게 교회 교인들에게도 읽힐 것을 염두에 두었는데 그는 두 도시를 방문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골ㅊ4:16, 2:1).
골로새는 동서문화의 교차지역이다. 니코스강 남쪽에 위치하고 , 에바브로 디도가 제일 먼저 세운 곳이다(골ㅊ1:3). 빌레몬이 자기 집을 교회로 제공하였다.
그곳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하얀 오디를 따먹었는데 만나처럼 달다.
이제 라오디게아 교회(계3:15-16)를 시작으로 소아시아 7교회를 방문하다. 세상 속에 있는 모든 교회를 예표로 한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에 영적으로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영지주의가 만연하였다.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기 때문에 비록 육이 약해서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영은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둘째는 황제숭배(씨이저)를 강요하였다.
셋째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무리가 있었다.
넷째는 니골라당의 음행한 행위가 있었다.
요한계시록의 영적인 소망을 붙들라는 메시지이다. 당시에는 교회 건물은 없었다. 잡히면 순교이기 때문에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고, 4-5세기에 와서 기념교회가 세워졌다.
당시에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탄의 전략은 지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 도시는 면으로 부요한 도시이다. 특히 검은색 양모가 유명하다. 라오디스라고 하는 큰 신전이 있었고, 검투사가 싸우는 경기장이 있고, 토마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라오디게아는 백성의 정의라는 뜻인데 에바브로디도가 개척했다고 한다.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에 룸바가 교회의 감독이었다. 이곳은 지형적으로 신앙적으로 미지근하였다. 바울이 이 교회에 십혈을 많이 기울인 교회이기도 하다(골 2:1)
안약을 바르라고 한 것은 당시에 아폴로 신을 주신으로 많은 신들이 있었다. 희생제물을 많이 잡았기 때문에 더러운 물이 흘러내렸다. 이로 인해 피부에 종기가 있었기 때문에 고약을 발랐다. 혼합된 병으로 약과 치료법이 개발되었다.
1200개의 무덤이 있다. 지진으로 인해 교회의 터가 무너졌다고 한다.
목화의 성 파묵칼레는 눈이 덮인 것같은 석회봉의 웅장하다. 흰 목회송이와 같은 모습이 대단하다. 발을 담그다. 온천의 물과 같이 미끈미끈하다.
바울의 발이라고 추정되는 곳에 발을 대보다
내려와서 클레오파트라 기념물가에 돈을 내고 물놀이하는 외국인들이 보인다.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보내 싸늘하기까지 하다.
빌립의 순교현장을 올라가는 길을 슬리퍼를 신고 가서 그런지 좀 아프다.
골로새 호텔에서 분위기 있고 맛있는 식사를 하다.
제7일(5/31 토요일)
관광버스를 타고 에게해가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주님이 칭찬하셨던 빌리델비아 교회를 방문하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제가 늘 닮고 싶은 교회의 모습인데 직접 현장에 와보니 감회가 새롭다. 적은 능력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교회가 되길 더욱 갈망하게 된다.
빌라델비아는 사데동쪽 약 45킬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고, 오늘날 알라세힐이라는 소도시가 있는 곳이다. 필리아 아델피아란 형제의 사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다. 아탈로스 2세가 형제에게 충성을 다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책망받은 일이 없고 칭찬만 받은 모범적 교회였다(계 3:7-13).
현재 이곳에 있는 유일한 교회 유적으로 비쟌틴 시대에 지었던 교회의 두 기둥만이 남아있다. 약 15킬로 높이의 육중한 돌기중 두 개가 당시 교회의 규모가 거대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토로스 산맥의 완만한 경사로 인해 포도가 많으며, 술의 신 바쿠스신을 섬기고 있다.
로마가 6세기 기독교 국교후 지은 건물로, 요한의 제자 가운데 폴리갑이 성 요한 교회로 지칭하였다. 1세기에 데메디르오가 감독을 맡았다.
거룩한 열쇠, 사망과 권능의 열쇠, 천국의 열쇠를 주셨다
당시에 열린문은 교통의 요지였다. 이와 같이 믿음의 기둥이 튼튼하지 못하면 거짓말하는 자가 된다.
이 교회는 순교자적인 교회로서 칭찬만 받는 교회였다.
이동중에 지붕위에 굴뚝에 빈병을 올려놓은 것이 보인다. 이것은 이 집에 결혼할 처자가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병에 따라 나이가 든다는 뜻이다. 거꾸로 된 것은 결혼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원치 않는 결혼을 해서 아들과 딸을 낳아서 집에 들어왔을 때 동생으로 하여금 죽이게 한다고 한다. 이것이 명예살인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알라가 조급밖에 안줘서 그렇다고 받아들인다. 이것을 정명이라고 한다. 내세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현세도 중요하게 여김.
코란경은 114장, 6000절
오행신앙고백이라는 것이 있다. 사원에 다섯 번 에배하러 오면 복이 있다. 성지순례 세 군데 가서 일곱바퀴 돌고 돌을 던지면 사탄을 물리친다고 한다.
한달 동안 계속되는 라마단은 고행과 축제의 기간이다.
드디어 영적으로 죽은 교회였던 사데 교회를 방문하다. 리비아의 수도는 리디아 사르데스이다. 당시 금은 세공업이 발달했다. 사데교회의 유적은 타플로스에서 발견되었는데, 주사위 문화가 발달되었음. 아테미 신전이 있었는데 길이 69미터, 폭 45미터, 기둥78개였다고 한다. 사악한 영을 물리치기 위해 교회가 세워졌다. 일곱집사 가운데 한명인 클레멘트, 멜리트 신학자가 감독이었다.
한쪽에는 절벽, 요새였다. 페르시아 군이 공격을 못하고 있는데 남쪽 벽에 한 군인이 철모를 떨어뜨려 줍는 것을 보고 남쪽벽으로 길이 있는 것을 찾아 페르시아 군이 공격하여 멸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마귀는 빈틈을 타고 공격한다.
처음에는 뜨겁게 시작했다가 나중애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돈, 쾌락, 명예 등의 유혹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78개의 기둥 중 2개만 남아 있다. 영지주의 영향으로, 행음으로 인해 멸망했다. 신전을 지키기 위해 5세기에 만든 교회
아데미 신전 남쪽에는 5개의 둥근 지붕형태를 지니고 있는 중세 비잔틴의 교회 유적이 남아 있다. 외부는 장식용벽돌을 쌓았고, 내부는 모자이크 무늬와 수채화로 그린 프레스코 변화와 채색유리로 장식되었다.
사데교회는 아시아 일곱교회 중 작은 교회에 속하지만 사도 요한은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다니리니...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읋 것이요(계 3:4-5)라고 격려하였다. 당시 로마 시대를 상징하는 옷은 자주색 옷이었으나 사데의 의인은 흰옷을 약속받아 의미심장하다.
이어서 사도 바울의 2, 3차 전도여행지였던 에베소로 이동하였다.
에베소 교회는 바닷가 옆에 있는 교회로서, 에베수스란 뜻은 인내라는 뜻이라고 한다. 가장 큰 시장이 있었는데 말라리아, 지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한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림으로 촛대가 옮겨진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도시가 세워지는데 120여년 걸렸는데 세계 제 7대 불가사이 가운데 하나다. 남자와 짐승의 고환을 없다.
누가의 묘 앞에서 사진을 찍다. 누가는 문체가 화려하고 정교하다. 머리와 몸이 따로 안치되어 있다. 누가복음은 황소복음이라고 함. 누가는 바울과 마지막 동역자, 안디옥 출신이다.
누가는 의술로서 육체의 가시로 고통받는 바울을 위해 봉사했다. 바울은 누가만 끝까지 나와 함께 있다고 했다. 그의 충성됨을 칭찬하고 있다.
이집트 알렉삳드리아 의술학교에서, 가브리엘에서 수학하고 수리아 지역으로 들어갔다, 유행병 걸린 사람을 고쳐주었다, 나무스가 실명이 되었는데 기도후 고침받았다.
동생이 암에 걸린 후 회복, 회심의 체험 하게 되었다. 배 안에서 바울을 만나게 됨, 행16:10-11, 우리가 기도, 직접 경험한 것, 그 이전가지는 들은 것을 기록하였다, 누가가 제2차 전도에 합류하였다.
에베소에서 헬레니즘 시대의 건축물로 2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 에베소에서 가장 아름다운 셀수스 도서관, 아고라, 마리아 기념교회 답사후 쿠사다시로 221킬로, 약 4시간 40분 이상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아다쿨레 호텔에서 1박을 하다.
제 8일 (6/1 주일)
버스로 이동하여 쿠사다시다항에서 밧모섬으로 가는 배를 타다. 4시간 30분 동안 에게해의 시퍼런 바다, 잔잔한 바다를 향해 달리다. 선실내에서 박목사님과 신앙적인 대화를 통해 많은 배움과 도전을 받다. 중심이 살아있는 노목사님과의 만남이 행복하다. 2층에 올라가서 바람이 부는 바다를 즐기며 사진을 찍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간식을 권한다. 역시 같은 나라의 동질의식과 연대의식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런데 과연 밧모섬에 유배될 때 사도 요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다른 사도들은 대부분 순교했지만 자신은 살아서 예수님의 모친을 섬기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다 체포당하여 죄수의 몸으로 유배되는 상황이다. 우린 성지순례차 그곳으로 가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가고 있다.
드디어 밧모섬에 도착하다. 스웨덴 출신 현지 가이드가 우릴 안내한다.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은 동굴에 들어가다. 부할하신 주님이 사도 요한에게 장차 일어날 계시를 보여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사도 요한이 기도하단 바위가 깊게 푹 파인 모습이 보인다. 옆에서 그의 제자가 그것을 받아쓰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계시의 말씀을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깨닫게 해주셔야만 가능하다. 박목사님이 통역을 해주시다.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언어를 전공했던 제가 섬기지 못한게 너무 미안하다.
버스로 이동중 경사진 곳에 채석장이 군데 군데 보인다. 요한과 죄수들이 이곳에서 무거운 돌을 파내고 옮기면서 매를 맞고 고통당하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밧모섬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다. 속이 불편해 하는 것 같아서 밧모섬에서 우리 일행에게 코카 콜라를 대접했다. 근데 일행들이 굉장히 피곤해 하고 저녁 시간까지 휴식하기로 하다. 나중에 안 사실은 배멀리를 위해 약을 먹었는데 그것에 취해 너무들 고생했다고 한다. 쌩쌩한 사람은 멀미약을 먹지 않은 사람들이다.
언제나 액티브한 성격이란 호텔에서 잠간 나와서 부둣가로 갔다. 이미 김목사님과 사모님이 밧모섬 부둣가에서 낚시를 하고 계신다. 몇 마리 잡았다가 놓아 주었다고 한다. 미끼를 제대로 쓰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을 같은데 하면서 안타까워 한다. 난 여기 저기 다니며 낚시밥 구하러 서툰 영어로 묻는다. 이 주변에 몇 군데 있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난 부둣가에서 남은 식빵을 부수어 물에 던진다. 작은 고기 때들이 모여들어 장관을 이룬다. 밧모섬에서 고기밥을 주다.
점심을 먹고 동방정교에서 장로에 해당되는 분들이 돌아가실 때 모시는 무덤을 방문하다. 피곤한 분들은 숙소에서 쉰다. 일행들이 다 모였는데 박목사님과 사모님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된다. 낮에 박목사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다. 목사님 제가 통역을 하던 중에 몸이 영 안좋더니 이상한 것 같으니 나중에는 김목사님이 통역을 하십시오.
결국 밧모섬 이후에 일정은 통역을 한 것이 아니라 눈치껏 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준비하는 건데.
승선 안내를 받는다. 몇시까지 어디에 모여서 이동하고, 배에서 어떻게 하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난 그 시간까지 몇 번씩이나 배표가 맞는지 확인하고 거의 실신 수준이다.
저녁에 약속 장소에 가서 부둣가로 이동하다. 에정 시간보다 근 1시간 이상 늦게 유람선을 타고 각 방을 배치하고 취침에 들어가다. 난 유목사님 부부에게 독방을 양보했다. 유람선에 누워서 세월호 생각이 절로 안다. 만약 이곳에서 암초에 부딪히면 칸마다 닫혀 있는데 구조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겠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실제 유람선을 타보니 어떤 상황인지 그림이 그려진다.
새벽기도 체질이라서 그런지 일찍 일어나 유람선 부대시설을 돌아보다. 혹시 꽁짜로 주는 식사나 차나 다른 것은 없는지. 근데 다 유료이다. 혹시 물이 필요한 분들이 있을 것 같아 1유로에 물 두 병을 사서 혹시 물이 필요한 분이 있는가 ? 찾아본다. 바로 박목사님이 눈에 뛴다. 물 한 병 드리고 숙소로 가다가 유목사님을 만나다. 토스트와 모닝 커피를 분위기 있게 마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휴게실이나 오락실에서 아직도 취침 중에 있는 사람이 여기 저기에 보인다. 아마 입석 유람선 표를 끊었는가 보다. 늘 좋아하는 에게해를 바라보기 위해 선창가를 나가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서퍼런 에게해가 나를 부르는 것과 같다. 새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그리스 피레스 항구에 도착하다.
제9일( 6/2 월요일)
그리스 피레스 항구에 도착을 알리는 소식이 들린다. 먼저 나가서 우리 일행의 짐이 있는 곳에 먼저 몇 분을 보내고 짐을 찾아 나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세 분이 나오지 않으신다. 다른 일행을 먼저 버스에 타게 한후 숙소에 찾아 가보라고 했다.
아니다 다를 까 서로 대화를 나누시다가 그냥 배에서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항상 긴장하고 점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타고 온 블부베르 스타 율마선은 대우조선에서 만든 배라고 한다.
여기서는 여자 가이드를 만났다. 분위기가 다르다.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한 가지라도 더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전달된다.
피레스 도시는 인구 100만이 지금 산다고 한다. 아티나, 아테나, 아덴이라고 불리운 곳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는 터키와는 달리 98%가 동방정교라고 한다. 1100만의 인구가 사는데 면적은 남한의 1.5배라고 한다. 교민은 1500-2000명 정도라고 한다. 터키가 1인당 GNP가 1만 달러, 그리스가 2만 7천 달러라고 한다,
주전 776년 올림픽 개최지이다.올림픽 최고의 관은 월계관이 아니라 올리브관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먼저 실행한 곳이 아테네이다. 정치적 몰락은 하였지만 문화적, 찰학적으로 발달하였다. 1500년 동안 올림픽 중단하였다가 1986영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파르테논 신전을 방문하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황금기인 주전 500년경 아테네 중심부에 있는 바위 언덕으로 된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졌다. 아테네 여신을 위한 신전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폭이 30.8미터, 길이가 69.5미터, 높이 10.4미터가 되는 46개의 도이라식 석주가 둘어있어 그리스 건축 예술의 백미를 이룬다.
파르테논 신전의 모든 부분은 에외없이 완만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더욱이 신전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기둥 마저 수직으로 서 있지 않고, 안쪽으로 약간 경사지게 비습듬히 세워져 있어 910미터 상공에 있는 가상의 한 지점에서 만나도록 설게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파르테온 신전은 유네스코에서 인류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사도행전 17장 22절에 사도 바울이 강론하셨던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설교하였다. 그 당시에 새로운 학설이나 사상을 발표할 때에 이곳에서 주로 했다고 한다. 아레오바고는 원래 살인죄를 범한 사람을 재판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테네 시의회를 뜻하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다음에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시에 18개월 동안 복음을 전했던 고린도로 이동하였다. 교통의 중심지, 인구과잉, 약간의 기름 생산. 옛고린도에는 지진이 일어났다고 한다.
고린도에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이유는 정보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비밀로 하기 때문에 손해가 많다.
고린도에는 파나마 운하, 수웨즈 운하와 같이 세게 삼대운화 가운데 하나가 있다. 피고 지는 꽃이 3000여종이 있다고 한다.
유적지에서 나온 공예품을 소장한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거긴 목이 잘린 조각상, 성기를 묘사한 작품들이 보인다.
제 10일(6/3 화요일)
호텔 조식후 메테오라로 이동하여 11세기 암절벽위에 세우진 메테오라 수도원을 방문하다. 고린도에서 메테오라까지는 422킬로,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먼거리였다.
당시에 수도원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비가 외서 감람수도원을 방문했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바위위에 세워진 수도원들은 그 당시에 어떻게 다녔을까?
다시 메테오라에서 데살로니가까지 230킬로 달려 porto place 호텔에 숙박하다.
제11일 (6/4) 수요일
데살로니가는 현재 그리스의 살로니카만에 위치한 엣마게도니아의 주요항구로 현제 데살노니카도시이다. 살로니카로 알려진 마게도냐의 중요도시인 이 곳은 칼시더시 반도 서쪽에 있는 데르미이만에 있다. 이곳은 우상숭배가 많은 곳이다.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와 함께 한 제 2전도 여행 때 빌립보에서 암비볼리와 아볼니아를 거쳐 이곳 데살로니가에 왔다. 이곳에서는 교인이 생기는 반면에 핍박도 일어났다. 바울 일행에게 숙소를 제공했던 야손 일가는 큰 변을 당했고, 기독교인들은 로마황제를 예배하지 않고 예수라는 다른 왕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고발당했다. 그리하여 교인들은 바울과 실라의 신변을 걱정한 나머지 밤중에 그를 다른 곳으로 피신시킸다(행 17:1-10).
이어서 기독교가 유럽으로 전파된 최초의 지역 빌립보 교회의 유적지를 방문하다(행 16:14, 빌 4:15). 빌립보는 에게해에서 16킬로 내륙으로 들어간 평지에 있다. 빌립보의 옛 명칭은 크레니티이던 것을 마게도냐 왕 필립 2세가 이 지역을 자기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고 바꾸었다.
자주 장사 루디아는 빌립보에 살았고, 바울의 전도를 받고 제일 먼저 믿어 빌립보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행 16:11-15).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여러 번 도왔고(빌 4:15-16), 로마 옥중에 있을 때에도 디도편에 위문품을 보냈다(빌 4:18). 이에 바울은 빌립보서를 써서 그들을 위로했다.
성채는 오르벨로스 중앙산괴의 돌출부 위에 있고, 성읍은 그 아래 위치해 있다. 도시의 대광장은 에그나티아 도로 바로 옆에 있으며, 대광장의 북동쪽과 모서리에는 두 개의 대신전이 정면으로 마주보고 서있다. 그리고 도서관 건물, 건물의 현관, 분수, 목욕탕 등이 발굴되고 있다.
빌립보에는 바울의 감옥터 및 유적이 있다.
또한 바울이 이곳에 와서 선교활동을 할 때 기도처를 찾으려고 문밖 강가에 나갔다고 했는데 거기서 루디아를 만나 세례를 베풀게 되는데 현재 이 강옆에는 루디아 세례터와 (행 16:13). 루디아 기념교회가 있다.
사울 바울이 유럽 전도의 문을 연 네압볼리에 도착하였다. 네압몰리는 드로아 항구에서 바닷길로 185킬로 쯤 떨어진 곳이요, 빌립보까지는 16킬로 거리에 있는 오늘날 그리스 까발라라고 하는 항구이다. 이곳은 동서양을 뱃길로 잇는 교통의 요지이고, 육로 역시 로마로 향하는 에그나티아 대로가 이곳을 지나간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때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하여 유럽 전도를 시작하였다.
네압볼리에는 바울의 네압볼리 도착을 기리는 바울 기념교회가 두 곳이 있다. 교회 앞에는 네압볼리에 도착하는 바울이 모습이 모자이크화되어 있다.
이번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수리아 안디옥, 갑바도기아의 바위굴 , 소아시아 입곱교회와 밧모섬의 동굴 등을 보면서 그들은 성경의 사건을 그림으로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 있고, 자신의 신앙의 유산을 후대에 물려주고 계승하는 일을 게울리 하지 아니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수도원 방문을 통해서 너무나 신앙의 세속화 물결이 가속화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좀 격리된 장소에서 주님과 깊이 교제하고 묵상하는 시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슬람교의 신앙의 양태와 습관을 통해서 그들이 제도적으로 습관적으로 매일 기도하고 금식하는 기간을 통해서 경건의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기독교는 점점 주님을 멀리하면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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