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장 2절에서 전도자는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토로합니다. 무엇이 이토록 헛되다는 것일까요? 육신을 위해 힘쓰고 애쓰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1장 3절 말씀 다같이 읽습니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사람이 해 아래서 아무리 많은 수고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자기에게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약간의 유익은 있겠지만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세계 최고의 부와 명와 권력을 한꺼번에 누렸던 솔로몬이 그 무엇으로도 만족이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 습니다. 솔로몬이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일시적인 감정이나 기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신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본문 13절 말씀입니다.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솔로몬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으로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사용해서 해 아래 만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괴로움뿐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이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수고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혹시 우리는 아직도 세상에 만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본문 14-1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 세상 어디에도 만족이 없도록 만들어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도서 2장 1절 말씀입니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솔로몬은 전도자가 되기까지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만족이 없다'는 하나님께서 구부려 놓으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나 같은 명예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만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부려 놓으신 것을 시험하려고 했습니다. 전도서 2장 2-3절 말씀입니다."내가 웃음을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것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세상에 웃음이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잠시 스트레스는 해소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만족은 주지 못하며 오히려 금방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허탈감에 빠지게 됩니다. 술이 우리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까요? 물론 잠시 동안 근심은 잊을 수 있지만 건강만 해칠뿐 결코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솔로몬은 쾌락과 만족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전도서 2장 4-8절 말씀입니다.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들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남녀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소와 양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솔로몬은 사업을 크게 하고, 집들을 크게 짓고, 포도원과 과원을 만들어 각종 나무를 심었습니다. 집에 노비를 많이 두고, 예전에 있던 어떤 사람보다 재산이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처첩도 일천 명이나 두는 등 자기의 가진 모든 지혜와 권력을 총동원하여 만족을 추구하였습니다.
전도서 2장 9-1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이 세상에서 자기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아니하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도 않고 다 해본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요?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눈이 원하는 대로, 마음이 즐거워하는 대로 막지 않고 다 해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모든 것을 하나도 막지 않고 다 해보았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자기의 수고가 말미암아 얻은 몫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솔로몬처럼 자기의 부와 명예와 권력과 지혜를 하나님께 명광 올려드리는 데 쓰지 않고 자신의 수고로 얻은 것이니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전도사 2장 16-17절 말씀입니다.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임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래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자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모든 것을 다 누려본 후에 솔로몬은 아제 사는 것을 한탄합니다. 해 아래서 만족을 있을 줄 알고 다 해보았지만 만족을 주기는커녕 괴로움뿐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을 깨닫고 한탄하였습니다.
또한 전도서 2장 20절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마음을 실망케 하였다고 했습 니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도리어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이제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전도사 2장 22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전도서 2장 2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일평생 밤낮으로 쉬지 않고 마음으로 근심하며 수고하였지만 그것으로 얻은 소득이 무엇이냐? 슬픔이지 않느냐? 그러므로 땅에 속한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비로소 참된 것이 무엇이며,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전도서 2장 24-2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욱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솔로몬보다 낫다고 할 수 있습니까? 솔로몬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최고로 누렸던 사람입니다. 지혜와 명예, 권력, 패락 물질 등 세상에 속한 온갖 것들로 육체의 낙을 누리려고 했지만 결코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슬픔이요 고통인 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심령의 낙을 누릴 때가 있었는데 그 둘을 비교해 볼 때 심령의 낙이 훨씬 좋은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심령의 낙은 우리 마음에 천국이 임하였음을 뜻합니다.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탕, 구원의 기쁨, 자원하는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마음에 이런 심령의 낙이 있습니까? 혹 아직까지 심령의 낙을 누리지 않고 육제의 쾌락을 위하여 쫓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에베소서 2장 2-5절 말씀입니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참된 만족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결론을 이제 내리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계속해서 그 어디엔가 뭔가? 있겠지 하면서 만족을 추구하면 결국 허망한 것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베소서 4장 17-19 말씀입니다.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입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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