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읍니다. 너무나 많은 일에 밀려서 너무 바빠서 그런지 모릅니다. 사회전체가 생각을 깊이 하지 못하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생각하기가 싫어집니다. 텔레비젼.비디오, 신문 매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사고할 수 있는 시간과 기능을 빼앗아 갑니다. 또한 너무나 많은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되면 생각하기조차 싫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안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생각하든지, 적당하게 생각하든지 신중하게 생각하든지 어차피 생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잘못 생각하면 그 결과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전반에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단체에서 국민들에게 깊은 충격과 아픔을 주는 사건들이 터지고 있습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멀리 내다보는 관점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결과를 예상하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이란 생각을 보다 넓게 갖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이란 또한 생각을 좀 더 깊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에서 행한 모든 것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아마 첫 장에는 우리가 세상에서 살 때 행동으로 지은 죄가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장에는 우리가 세상에 살 때 말로 지은 죄들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셋째 장에는 우리가 생각으로 지은 죄들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넷째 장에는 마음으로 지은 죄가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매장이 넘어갈 때마다 더 잔글씨로 더 많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중심으로 생각의 중요성과 결과에 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가던 길을 멈추어서 올바른 길을 찾으라(16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길에 서서 보라고 하셨읍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던 길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북극성을 바라보고 배를 저어가라고 훈계 받은 아들이 중간에 그 별을 잃어버리고 다른 별을 쫓아가거나 자기 감각을 믿고 배를 저어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엇보다 옛적 길을 알아 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욥기 8: 8절에 보면 나는 옛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31:7에도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옛길이란 홍수전에 믿음의 족장들이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족장들의 생애와 경험을 가리킵니다.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생활노선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업적과 생애를 본받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내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내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길이 선한 길인지 악한 길인지 알아 보아야 합니다. 구약에 나타난 역대 왕들의 생애는 크게 두 가지 길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합의 길은 약한 길의 대명사로, 다윗의 길은 선한 길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합의 길은 자신의 책임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고, 유혹에 빠졌던 인물의 유형입니다. 어머니가 세례문답을 받으면서 예수님이 누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냐고 물었을 때 며누리의 죄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의 길은 비록 실수와 패배의 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릇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의도를 바로 깨달았읍니다.아무리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싶은 순간에도 하나님께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전적으로 그분께 호소했읍니다. 그의 생애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그의 생활이 되었읍니다.
신앙이 좋다고 하는 가정에서 부부싸움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은 부부싸움을 하면 찬송가로 풀어버린다고 합니다. 먼저 남편이 화가 나서 나가면 부인은 간들어지는 목소리로 '어서 돌아오오' 를 부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밖에 나간 남편이 화를 다 푼 후에 남편이 멀리 멀리 갔더니를 부르며 문을 두드리면 아내는 '처량하고 곤하여 하며' 문을 열어준다고 합니다
선한 길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하이 지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감정의 상태을 통해서 알 수 있읍니다. 즉, 마음이 불안한가 아니면 평안한가? 그것을 따져 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마음이 그렇게 불안한 상태에 있다면 그 일을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으로, 꼭 차 있으면 그 길에서 돌이키야 합니다.
선한 길이 때로는 어려운 것처럼 보여도 그 길을 가야 행로가 편안하고 즐거움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일단 선한 길인지 판단이 서고 감정의 상태도 평안하면 곧 바로 행동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의지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이 있읍니다. '행동의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둘째, 올바른 길을 거부하려는 생각을 버리라 (16절)
그러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옳고 그릇된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단서를 붙이려고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못하겠읍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디도서 1:16절에 보면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중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그런데 행동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 여하에 달려있읍니다. 생각은 말을 얼마만큼 알아 듣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의 말을 듣고는 가에 따라서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내가 또 너희 외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고 했읍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바른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팽배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보다 신자의 경우가 더욱 심각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의 창살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서로에게 갇혀 있습니다). 우리는 들을 필요도 없고 주의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겠노라고 합니다. .더구나 현대인들은 남을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마음의 귀를 닫아버리고 맙니다.
토머스 에이 하리스는 인간의 유형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읍니다.
첫째, 나는 오케이가 아니고 너는 오케이, 피해 망상증과 무기력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자입니다,
둘째, 나는 오케이 너는 오케이가 아니다, 우월감과 자만감에 빠진 자입니다.
셋째, 나는 오케이가 아니고 너도 오케이가 아니다,반복되는 실패의 감정이 체념을 낳고 무의미에 빠지고 파괴적인 인간을 만들어 냅니다,
넷째, 나도 오케이 너도 오케이는 자신에 대해서도 남에 대해도 긍정적인 사람을 가리킵니다.
행동으로 거부하는 단계는 먼저 들으려 하지 않고, 다음은 믿으려 하지 않고 결국은 불순종하게 됩니다.무엇보다 경고의 나팔소리에 주의해야 합니다.
1980.11.19일 226명의 승객을 태운 대한 항공 소속 보잉 747 점보 여객기 (350억원)가 미국 로스엔젤레스를 출발 김포공항 착륙 중에 끔직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기장, 승무원 6명과 모두 15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그 날 아침 조선일보 사설에는 왜 이런 참사가 일어났는가에 대한 논제 아래 다같이 생각해보자 라는 논설이 실려 있었습니다.
다음날 신문에는 방향이탈자동 경고 네 번_무시라는 판명이 났습니다.그런데 조종사 기장은 지금까지 한 번의 사고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과대평가하고 경고신호에 대해 오히려 고장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충고와 말씀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서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미국의 철로의 건널목 부근에는 멈춰라! 보라! 들어라! 하는 표식이 있다고 합니다.
셋째 ,결과를 예상하라(18절)
그러므로 너희 열방아 들으라. 회중아 그들의 당할 일을 알라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길과라.
오늘날 이 시대의 문제점은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사회의 많은 충격을 던져주고 있는 신학교의 시험문제 유출사건의 실상은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행동하고 생각 없이 행동하고 생각 없이 예배드리고 생각 없이 봉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기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과정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녀는 뱀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적 이유도 갖지 않고 그냥 행동으로 옮겨버리고 말았습니다.
만약의 경우에 잘못될 가능성을 그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사건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네 죄가 문 앞에 엎드렸다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분노를 이기지 못한 가인은 아무런 생각 없이 아벨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쳐 죽인 후에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가롯 유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은 삼십냥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이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돈에 집착해서 예수님을 팔아 넘긴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결국 돈을 도로 돌려주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역사의 오점을 남길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좀 멀리 내다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군대에 갔다오면 눈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먼 거리를 바라보는 훈련, 자연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한번 따라해 봅시다. 좀더 깊이 생각합시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남에게 유익이 되는지, 노예를 만드는지, 자유롭게 하는지, 유혹에 대항하여 힘을 주는 지 아니면 무기력하게 하는 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의 말씀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잘못 생각한 결과였습니다. 한번 잘못 생각하면 신세를 망치게 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날마다 죽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 죽을 생각 그만하고 살 생각만 합시다 죽을 용기 있으면 그 용기를 가지고 멋있게 살아갑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누구나 한번 먹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사실 어떤 점에서는 불신자 보다 신자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욱 어렵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결과를 생각하는 자가 됩시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의 표준은 하나님의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말씀의 표준에 맞추는 것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 시간에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내 생애 전체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 봅시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과 더불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합시다. 생각은 많이 하면 할수록 그만큼 시간을 벌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적 사고를 방해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합니다.
1. 습관
2. 시간과 정력의 소모
3. 환경의 제약
4. 성급한 마음
5. 타인의 비판
6. 실패의 두려움
7. 소극적인 태도,
8.자기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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