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0장은 솔로몬의 잠언이 아니라 아굴의 잠언입니다. 아굴(나그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그가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입니다. "이디엘"은 하나님 나는 피곤합니다. "우갈"은 그러나 나는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굴은 자신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총명이 없고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칼빈은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자신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자입니다.
아굴은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너는 아느냐?고 반문합니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 온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누구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누구인지 너는 아느냐? 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그분의 말씀은 다 순전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은 전적으로 믿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5, 6절). 하나님은 그분과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산성이시요 방패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더하거나 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를 책망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판단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7-9절에서 저자는 두 가지 기도 제목으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는 헛된 것과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헛된 것은 우상입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신자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진실을 추구하며 거짓을 미워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달라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가난하게 마옵소서라고 기도는 하지만 부하게도 마옵시고가 아니라 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신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가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저자가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배가 부르다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멀리할까 두려워합니다. 반면에 가난으로 인해 배가 고파서 도둑질하는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더립힐까 두려워합니다. 부유하면 교만과 불신앙으로, 극심한 가난은 부정직과 거짓 맹세로 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남의 종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주인에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10절). 그 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 불필요하게 개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 수치와 고발을 당할 수 있습니다. 물론 너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책망할 수 있지만 그 주인에게 고해서는 안됩니다. 직장이나 가정사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노부모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저주하는 자녀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12절).
자신의 속이 더러운 상태에 있으면서도 깨끗하다고 여기고 자신의 더러움을 씻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12절).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이런 부류에 속합니다.
자신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보다 높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약한 자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13절).
자신의 욕심 때문에 가나한 사람들을 잔혹하게 억압하고 탈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14절). 이들은 사이코 패스들(반사회적 인격장애)입니다. 그들의 이는 장검과 군도와 같아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닥치는 대로 상처를 입히며 시기하고 위협하고 빼앗습니다(사 5:8).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는 두 딸이 있는데 계속해서 다오, 다오라고 말하면서 족한 줄을 모릅니다(15절). 인간의 근원적인 죄는 불신앙, 교만함, 끝없는 욕망입니다. 달라고 하는 사람은 결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속에 있는 홀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으로만 채워집니다. 하나님이 채워지지 않으면 끝없는 길팝감을 느낍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특성을 지닌 네 가지가 있습니다(16절).
첫째, 스올 곧 죽음입니다. 죽음은 세상 모든 사람이 죽어도 그만 죽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은 다 데려 갑니다.
둘째 아기를 갖지 못하는 태입니다. 잉태하지 못하는 태는 죽음과 같습니다.
셋째, 많은 물로도 채워지지 않는 땅입니다.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땅에 스며듭니다.
넷째, 불입니다. 불은 닥치는 대로 태우고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듭니다.
아버지를 조롱하는 눈빛을 가진 눈과 어머니에게 순종하는 것을 싫어하는 눈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분입니다(17절). 그렇게 하는 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비참한 운명을 맞게됩니다.
당시에 자취나 흔적이 남지 않는 네 가지가 있었습니다. 독수리의 자취, 뱁의 자취, 배의 자취, 음행의 지취.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는 독수리의 발에 작은 카메라를 달아서 이동 경로를 알 수 있습니다. 뱀의 자취도, 배가 다니는 길로 카메라를 달면 알 수 있습니다. 음행의 현장도 체액이나 지문을 통해서 누가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않으면 죄를 찾아내기가 힘들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심판하십니다.
세상에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서너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종이 왕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질서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미련한 자가 풍족한 음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갸난하게 되고 게으른 자인데 그런 자에게 풍요로운 삶이 주어진다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셋째, 미움받는 여자가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놀랄 일입니다. 여종이 주모를 잇는 것입니다(하갈과 사라).
24-28절은 작지만 지혜로운 곤충 넷을 소개합니다.
겨울을 대비하여 여름에 음식을 준비하는 개미입니다.
둘째는 사반은 바위 너구리인데 힘은 별로 없지만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지혜가 있습니다.
셋째는 메뚜기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질서와 규율입니다.
넷째는 작고 약한 파충류이지만 벽에 착지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한데 왕궁에도 들어갑니다.
29-31절은 강하고 위풍있는 동물들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짐승 중에 가장 강하고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서지 아니하는 사자입니다.
둘째는 사냥개입니다.
셋째는 숫염소입니다.
넷째는 호위병들과 함께 말을 타고 가는 위풍당당한 왕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하셔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는 말을 했을 때 자신의 입을 치라는 것입니다(32절). 악한 생각을 하고 잘못했다 하더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지혜입니다(32절).
분노를 휘젓고 격동시키면 분쟁과 다툼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치 우유를 계속 저으면 버터나 치즈가 되고, 코를 계속 비틀면 코피가 터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위험 수위에 도달하기 전에 분노를 조절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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