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1.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1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율법의 교훈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가에 대한 명령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것, 곧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말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서 "선“이란 창조의 목적,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의 뜻(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인지 여부를 먼저 깨닫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 말씀 전체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 1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사도 바울이 환상을 본 후에 동역자들과 함께 의논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마게도냐로 부르신다는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회의는 단순히 개인적인 의견을 나누는 모임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찾는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문제이든 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성도들이 회개하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 구원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장 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장 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리스도인 가운데 자신의 삶이 실패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성공하는 사람이 진짜로 성공한 사람이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죽음으로 끝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도, 사랑하는 배우자도 먼저 세상을 떠나면 그 관계가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죽음 너머 저편에서까지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것이 영생이고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3. 그 외에 하나님의 뜻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18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원망은 마귀의 뜻인데 반해.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불만은 저주에 이르지만 감사는 축복에 이르게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억울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무엇보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Ⅱ.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빌립보서2장 1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신의 뜻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원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신의 소원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하나님이 주신 소원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원이 단순한 일시적인 충동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계속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지 분명히 알면서도 자신의 욕심대로 행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발람 선지자는 모압의 귀족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들을 저주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민 22: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람은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지는지 알아 보리라.“(민 22:19)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일어나 함께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발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변경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발람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냥 허용해 주신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하나님에 뜻을 잘못 이해했다가 실패를 맛보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갑’이라는 선택과 ‘을’이라는 선택이 주어졌다고 합시다. 둘 다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때 갑과 을 중 하나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잘못하여 하나님의 뜻이 아닌 쪽을 선택하면 큰 역경이나 실패를 맛보게 된다고 합시다. 그러면 조바심을 내며 담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운명론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이 이런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알라의 섭리 가운데 인생의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운명에 거역하려 해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시도하는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다 알라의 뜻이야”라는 말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숙명이 아닙니다. ‘갑’과 ‘을’이라는 두 가지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때 두 가지 모두 하나님의 뜻일 수 있습니다. 물론 갑이라는 선택과 을이라는 선택에 따라서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목적에서 신뢰와 순종을 바탕으로 내려진 결정이라면, 두 선택의 결과가 다를지라도 그것은 둘 다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하나님의 뜻에 대해 서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부부로 만나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서로 돕기 위함입니다.
부부의 만남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고, 어느 한 쪽의 방식대로 강요하기 위함도 아니요 하나님의 뜻에 서로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면 돕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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