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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 어떻게 할 것인가?(룻기 1:16-17), 김덕선 목사
1.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첫째는 (배우자)에 대한 선택인데, 인생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둘째는 (직업)에 대한 선택인데, 인생의 보람을 좌우합니다. 셋째는 (신앙)에 대한 선택인데, 영원한 운명을 좌우합니다.
이 세 가지 선택에 있어서 후회가 없고 만족하다는 사람은 인생의 90%정도의 성취감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효도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시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 3:15). 즉 하나님께서는 3대에 걸쳐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십계명 중 제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오늘 본문에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을 통해서 진정한 효도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유대인의 철저한 신앙 교육을 받은 시어머니이고, 룻은 모압의 우상숭배의 교육을 받고 자란 이방인 며느리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만났는데 어떻게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되었을까요?
구약 시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사사시대란 여호수아가 죽은 후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엮어간 350년 이상의 이스라엘 역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유대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란 사람이 그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룐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말론의 아내는 룻이고, 기룐의 아내는 오르바였습니다(룻 4:10). 그런데 나오미에게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졸지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살길을 찾아 고향 땅 유다로 돌아오려고 할 때 두 며느리가 함께 따라 나섰습니다. 이때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현실적인 선택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룻기 1장 8-9절입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의 첫 번째 권유에는 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라고 대답합니다. 룻기 1장 10절입니다.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그러나 시어머니가 두 번째 강권했을 때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권유를 받아들여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갑니다. 룻기 1장 14절입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겉으로 볼 때에는 오르바는 나오미의 권유를 따르는 순종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어떻게 보면 오르바는 나오미의 권유를 따르는 순종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반대로 룻은 시어머니의 권유를 따르지 않는 불순종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2. 나오미는 큰 며느리 롯에게도 (현실적인) 선택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의 현실적인 선택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인 선택을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15절입니다.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선택하고 있으니 당신도 그들과 같이 선택을 할 것을 요구할 때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롯은 본문 16-17절을 통하여 자신의 결심을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너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3. 룻의 선택은 형식적으로는 (불순종)하는 것이 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고자 한 진정한 (순종)의 길이었습니다. 참된 순종은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맹목적)인 Yes가 아니라 내가 직면하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킴으로써 (하나님)의 관점에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선택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단이며, 어떤 선택도 이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것은 불편하고 희생을 감수하고 손해 보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신앙의 문제는 나의 삶의 기준과 목표, 가치관과 인생관, 그리고 죽임 이후의 세계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 속해 있고 하나님을 어떻게 따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그런데 룻이 나오미를 따른다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뜻입니다. 지금부터는 자신의 (존재)는 없어지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룻의 (효심)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시어머니가 가장 힘들어할 때 그녀를 떠나지 않고 가족의 일원이 되어 곁에서 힘을 보탰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된다면 그녀는 동족도 자신의 신도 저버려야 합니다. 지금부터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자신도 가야하고, 어머니가 유숙하는 곳에 자신도 머물러야 합니다. 시어머니의 집안이 풍족해도 남편과 자식도 없이 젊은 과부가 혼자 살기가 힘든데,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온전히 망한 늙은 과부를 봉양하며 일평생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조차도 힘든 일입니다.
룻은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그녀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이전에 먼저 사람의 기본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룻의 이런 아름다운 성품은 언제 형성되었을까요? 그녀가 나오미의 가정에 시집오기 전에 어려서부터 받은 수직문화 교육입니다. 이와 같은 효심은 십계명의 제 5계명에도 나오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 즉 온 인류가 지켜야 할 보편적인 인성 교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룻의 남편이 될 보아스는 룻의 효심에 대해서 이렇게 칭찬합니다. 룻기 2장 11절입니다.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룻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시어머니에게 효행을 행하는 효부였고,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효를 행하는 효부였습니다.
5.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하나님)께도 효도할 수 있는 확률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룻은 신앙적인 선택을 위해서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권유를 (거절)하였지만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순종)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룻기 3장에 보면 나오미는 남편의 가문 중에 기업을 무를 자 중에 유력한 후보로 보아스를 찾아냅니다. 유대인의 율법 중에는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면 남편의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과 결혼하라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대결혼이라고 합니다(신 25:5-6). 만약 남편의 형제가 없을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룻기 3장 2-5절에 보면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와 결혼시켜야 되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당시 남녀 윤리가 엄격했을 때인데 룻이 이방 여인 출신으로 한반 중 외간 남자가 잠을 잘 때에 룻에게 그의 발치 아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고 권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룻은 시어머니의 말대로 이를 다 행했습니다(룻 3:6).
만약 룻이 울면서 이렇게 거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머니 저를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망측한 일을 시키세요. 정말 실망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나오미의 명령보다는 룻의 변명이 훨씬 더 윤리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말에 순종하는냐 순종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룻이 시어머니의 말에 순종한 결과 그녀는 엄청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평소에 룻이 부모의 말씀의 순종을 중요하게 여겼던 효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룻은 시집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생업)에도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룻은 이삭 줍기를 하고 오면 꼭 시어머니에게 자세히 (보고)를 합니다. 시어머니에게 묻고 허락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언 31장 10-22절에 보면 현숙한 여인은 가족의 생업을 위해 주야로 부지런히 일을 하여 산업이 핍절치 않게 하였습니다. 가난한 시어머니를 따라 온 룻은 당장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룻은 매사에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집안 어른의 허락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룻기 2장 2절입니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 룻기 2장 19절입니다.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그렇게 해서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기의 기업을 무를 자 중에 한 사람임을 룻에게 알려 주었습니다(룻 2:20). 결국 룻과 보아스가 결혼하게 된 것도 이러한 나눔의 관계를 통해서 결실을 맺게 된 것입니다. 룻은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았기 때문에, 설사 자기에게 옳고 좋다 하더라도 자기 임의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룻이 이삭줍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결단입니다. 당시에 이삭 줍기는 빈곤층들이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삭을 주우러 나갔던 것입니다.
7. 물론 당시에 이삭을 줍는 것은 합법적이기 때문에 남의 밭에 들어가서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다른 사람의 (은헤)를 입을 때 감사할 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룻기 2장 10절입니다.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여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내게 어찌하여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요즈음 은혜를 입고도 뻔뻔한 사람들이 많은데 룻은 인성이 잘 되어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8. 룻은 (부지런)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앗습니다. 왜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다른 유대인 여자들은 이방인 룻보다 못하였던 것일까요? 이것은 신앙의 문제보다는 (인성)의 문제입니다.
룻기 2장 7절입니다.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룻의 이런 부지런하고 현숙한 모습은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보아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룻기 2장 8-9절에 보면 보아스가 식사할 때에 함께 떡을 떼게 하고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녀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고 하였습니다(룻 2:16).
9. 그러면 시어머니 나오미는 어떻게 룻을 (효부)로 만들었을까요? 시집 가문에 모두 망했을 때 나오미는 며느리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편의 고향인 유다 땅 베들레헴( 시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자체가 나오미는 룻과 같은 효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나오미의 입장에서는 시집보다는 친정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편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시집 친족들은 그녀를 별로 환영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 가문에 시집와서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오미가 시집으로 돌아왔을 때 동네 사람들이 환영해 주는 모습을 볼 때 그녀가 인심을 잃지 않고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더구나 나오미가 손자를 보았을 때 동네 여인들이 축복하는 장면을 보면 이웃 사람들에게도 잘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룻 4:14).
10. 뿐만 아니라 나오미는 며느리를 통해 (시집)의 가문을 살리려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분명한 것은 훌륭한 (며느리)는 훌륭한 (시어머니) 밑에서 길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룻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인 인격을 보여줌으로써 룻이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모든 시어머니들에게 이렇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시어머니들이여 며느리에게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들을 말씀으로 제자를 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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