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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승의 주일 설교 4

by liefd 2026.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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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교육의 우선순위(마태복음 5:19), 김덕선 목사

 

 

고양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먹여주고, 사랑해 주고,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고. 쓰다듬어 주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주인이라고 착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양이는 항상 서운한 마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해,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반면에 강아지는 사람들이 자기를 먹여주고, 사랑해 주고,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고. 쓰다듬어주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주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아지는 항상 황송해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주인의 사랑에 헌신과 충성으로 보답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 가운데 고양이가 많습니까? 강이지가 많습니까?

 

사람이 사는 동안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은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이 사는 동안 하는 일 가운데 가장 힘들고 지치는 일 또한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모든 부모와 교사, 모든 사역자의 공통된 좌절감과 절망감의 이유는 사람이 정말 바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신앙생활에도 우선순위가 있는 것처럼 교회교육에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교회교육에 순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데 붙잡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사랑, 섬김,말씀에 붙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이 말씀을 행하며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사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교사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세워나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1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5:19).

 

또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게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 즉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그냥 가르치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먼저 행하고 학생들이 가르쳐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성도들의 영혼을 바라보면 목자 없는 양 같아서 민망히 여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망히 여겼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워서 내장이 꼬이고 뒤틀리는 아픔을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교사는 한 영혼의 가치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교사는 가슴 속에 한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교사는 사랑의 포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원리는 우리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먼저 함께 있게 했습니다.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또한 자기와 함께 있으면서 생활방식을 본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기도와 전도 훈련을 직접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사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신이 말씀대로 행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천국에서 큰 자가 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가르침은 결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물론 교사들이 말로 가르치고, 행동으로 본을 보여도 궁극적으로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교사들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비결은 기도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터치해 주실 때 한 인간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행동의 힘은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행동하되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이 생기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습니다. 두려워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때 움직이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리더요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의 어머니 캐서린은 여덟 남매를 낳아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자녀를 잘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특별히 잘 한 것 없고 원수가 하기 전에 제가 먼저 했을 뿐입니다. 마귀가 거짓말을 가르치기 전에 진실을 말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세상이 아이들 마음에 욕심을 가르치기 전에 나눠주는 법을 먼저 가르쳤습니다. 싸움을 배우기 전에 화평하는 모습을 먼저 가르쳤습니다.

 

수학보다는 하나님을 첫 자리에 놓는 영적 셈본을 가르쳐야 합니다. 태권도 보다는 나를 보호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조기 교육해야 합니다. 남보다 앞서는 선행학습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축복이 되는 조기학습을 교육해야 합니다. 세상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기 전에 주님과 함께 선한 영향으로 자기가 심긴 작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조기 교육해야 합니다.

 

교육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델링입니다. 믿음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붙잡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과 같은 종류의 사랑으로 전달될 때만, 진정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강권한다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신명기 30장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가 사랑하고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일학교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많은 이유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아이들을 재미있게 해주기 위한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오래 주일학교를 다녔는데 왜 우리 아이들에게 성경은 아직도 어렵고 지루한 책으로 남아 있을까? 말씀을 삶과 분리된 지식으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나 해석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무엇을 깨닫는 데에 그치지 말고 그것이 순종하는 삶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적용을 제시하여 말씀과 그들의 삶을 이어주어야 합니다.

 

한 기독교 사회학자가가 교회를 등진 대학생들을 인터뷰해 무엇이 그들을 기독교 신앙에서 돌아서게 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요약하자면 교회가 말씀을 적게 가르치고 놀이를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교회가 떠날까봐 사용한 전략이 오히려 아이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만든 전략이 된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10년 후면 대변혁을 맞게 될 것입미다. 왜냐하면 성장의 주역을 이루었던 세대가 정년 퇴직으로 목회일선을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장로, 권사, 집사들이 함께 퇴진합니다. 예장통합의 교회학생의 수가 6년 동안 15만명이나 줄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연령이 올라갈수록 교인들이 많고 아동부서쪽으로 내려갈수록 수가 적습니다.

 

우리 교회학교는 젊은 교사들을 선호합니다. 유대인은 나이 많은 교사들을 선호합니다. 주일학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지식 이전에 사랑과 관심입니다. 교사가 살아나야 아이들이 살아나야 합니다. 교회교육의 가르침은 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을 보이는 행동에 있습니다. 영향력있는 가르침은 머리에서 머리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가슴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인류 최대의 발견은 우랴늄의 중요성을 아는게 아니라 어린이들의 중요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효과적인 가르침은 변화된 인격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이 변화되면 될수록,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더 훌륭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배움을 중단하지 않는 사람들은 열정적이며 자기를 실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꾸준히 공부하고 독서해야 합니다. 학생 연령층의 용구와 일반적인 특징에 관하여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반 학생들의 사진을 붙여 놓고, 그 학생들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적어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부정적 꼬리표를 달지 말고 기대해야 합니다. 모든 학습은 감정의 수준애서 시작됩니다. 학생이 교사를 좋아해야만 교사가 가르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을 하나님의 그 사랑으로 세상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실력자로 키워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말씀을 행함으로 가르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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