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의 정탐꾼들과 여호수아/ 갈렙의 차이점 무엇입니까?
10명의 정탐꾼들이 본 것과 보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거꾸로 말한다면 "10명과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이 본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도 될 것입니다.
1. 10명의 정탐꾼들은 문제가 되는 장애물들만 보았지 정탐의 주목적이 되는 땅은 보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살펴보기 위해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낸 것입니다. 그들의 주목적은 적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을 살피는 것입니다.
거기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어떤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두 번째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명의 정탐꾼들은 주목적인 땅보다는 땅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하든지 문제없는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크고 작은 문제가 있습니다. 넘어서야 할 장애물들이 첩첩산중(疊疊山中)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문제가 많고 장애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압도당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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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명의 정탐꾼들을 보십시오. 모세가 시킨 대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꺾어서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둘러매고 왔습니다(13:23). 가나안 땅이 비옥한 곳이었기에 석류와 무화과도 가져왔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처음 보고를 보면 그런 대로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13:27을 보면 가나안 땅에서 가져 온 과일들을 보여주면서 그 곳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말이 끝나자마자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그러나 땅은 좋은 땅인데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13:28-29을 보면,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땅은 괜찮은데 그 곳에 살고 있는 토착민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어가기에 장애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 여기까지는 그런 대로 객관적인 사실을 보고했다고 보여지지만 13:31-33이 문제입니다. 올라가 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 때 이 말을 들은 10명이 벌떼처럼 덤빕니다. 31-33절을 보면,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갈렙의 긍정적인 보고를 듣자마자 태도가 돌변(突變)해서 아주 부정 일색의 보고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강한 사람들이어서 우리가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나안 땅에 대해서만큼은 좋게 이야기하다가 태도를 급변하여 악평을 했습니다. 가나안 땅이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족속들이 전쟁을 해서 끝없이 사람들을 잡아먹는 저주의 땅이라는 것이지요.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장이 다 장대한대 특히 거인족 네피림(창 6:4) 후손인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니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주목적인 가나안 땅은 점점 초점으로부터 멀어졌고 그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넘어야 할 장애물들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문제는 크게 보고 주목적인 땅은 작게 보았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땅은 크게 보고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장애물은 작게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양쪽 진영의 건널 수 없는 차이였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일을 하시든지 간에 목표를 분명히 정하십시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문제가 있고 장애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가 중요한 것이지 문제와 장애물에 의하여 압도당하면 안 됩니다! 목적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10명의 정탐꾼들은 사람만 보았지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주목적인 땅 이야기는 아주 조금만 언급하고, 내내 사람들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이러이러한 족속들이 살고 있는데 다 강하고 큽니다. 거인족인 그들에 비하면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와도 같아서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사람만 보고 왔습니다. 아무리 장대한 거인족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열 사람이 세상적으로 더 똑똑했는지 모르며 그 상황을 더 정확하게 판단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이 본 것은 인간의 가능성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보고를 하는 10명의 정탐꾼들을 보다 못해 갈렙이 일어났습니다. 30절에 보면 "우리 다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확신에 차서 긍정적인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보면 두렵고 실망스럽지만 가나안 땅을 주시마 약속하셨던 하나님을 보면 얼마든지 승산(勝算)이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두 사람은 눈앞에 있는 보이는 상황만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내시고 만다는 하나님 뜻을 보았고 하나님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말씀입니다
.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열 명은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고(신 1:32) 두 명은 하나님께 순종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신 1:36). 이 경우 하나님께서 정탐하게 허락하신 이유는 객관적으로 이길 것인지를 알아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땅의 증거를 보라고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나를 도와 주십니다. 나을 도우시는 하나님은 천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나는 그분을 아바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 분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나를 사랑하십니다."라고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10명의 정탐군들과 2명의 갈렙과 여호수아의 차이는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갈렙은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정탐꾼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싸워볼 생각을 했기 때문에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자신들을 수 백년 동안 괴롭혔던 애굽의 바로의 군사들을 홍해에 수장시킨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군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런 백성들을 가지고 사나운 아말렉과 싸워 승리케 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수아와 함께 두려워 떨고 있는 회중들에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14:7-9을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므로 능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이시지 원주민 거인족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밥으로 삼으셨다고 선언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똑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할지라도 사람만 보는 사람은 넘어집니다. 낙심합니다. 포기합니다. 두려워 떱니다. 염려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배후에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일어섭니다! 희망을 갖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담대합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만, 아무리 어둡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검은 구름 너머에 태양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태양이 없어진 것 아님니다. 검은 구름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역사하심니다.
♬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여 주만 바라 볼찌라. 보는 자들은 삽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놋뱀에 물려 죽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불뱀에 물린 자들, 누구든지 그것을 보는 자들은 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힘으로 애쓰던 자들은 다 죽었습니다만, 놋뱀을 바라보는 자들은 어디서 보든지, 의심하지 아니하고 바라보는 자들은 다 살았습니다. 이것은 요3:16절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약속의 예표였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만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문제나 시험을 만날지라도 사람이나 환경만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람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모든 문제 해결의 원동력(原動力)이 되시는 주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3. 10명의 정탐꾼들은 현재만 보았지 미래는 보지 못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의 현재만 보았습니다. 그 곳 토착민들이 보통 강한 것이 아니고 성읍들이 얼마나 견고한 요새로 되어 있는지 모르며 장대한 거인족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쓰러지고 말 것이라는 비관이지요. 사실, 이들이 본 것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어쩌면 정확한 실상을 보고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땅의 현재만 보았지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하여 누리게 될 축복의 땅은 미쳐 보지 못했습니다.
믿음 없이 세상적인 현실만 보았지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미래의 땅, 영광의 땅, 축복의 땅, 약속의 땅은 미쳐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장차 교회의 영광 미리 보아야 합니다. 자식들도 지금만 보지말고 미래를 더 보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사과 속에 있는 씨앗은 셀 수 있지만 씨앗 속에 있는 사과는 셀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과 속의 씨앗'은 현재를 말하며, '씨앗 속에 있는 사과'는 미래를 말할 것입니다. 현재는 뻔히 보이지만 미래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현재는 보이는 것만 가지고 너무나 쉽게 계산할 수 있지만 미래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과 속에 있는 씨앗'보다 '씨앗 속에 있는 사과'가 장차 훨씬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옳습니다. 미래에 대한 푸른 꿈을 가진 사람들만이 오늘 사과 씨앗 속에서 열리게 될 무수히 많은 열매들을 미리 볼 수 있습니다! 히11:1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믿음을 가진 사람은 현실이 아무리 실망스럽다고 할지라도 현재만 보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될 미래를 미리 보면서 용기를 갖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문제를 만나더라도 그 답답한 현재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찬란하게 다가올 미래의 영광도 함께 보셔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만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을 밟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불신과 비관적인 정탐 보고의 결과입니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보고를 했던 10명의 정탐꾼들과 이들의 말만 듣고 동요를 일으켰던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민 14:29을 보면 끔찍한 말씀이 나옵니다. 백성들 중에 20세 이상이 된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원망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시체가 되어 나뒹굴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14:33-34을 보면 이들의 불신앙 때문에 정탐한 날수 40일의 하루를 일년씩 환산하여 자그마치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태도가 이렇게도 무서운 심판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4:36-38을 보면 가나안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린 악평한 10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 앞에서 재앙을 받아 죽어 넘어졌지만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아 남았습니다.(14:38). 그렇습니다. 부정적인 보고를 했던 10명의 정탐꾼들이나 이들의 말만 듣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던 백성들은 모두 애굽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길들여진 불신앙과 세상주의, 현실 안주라는 소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펼쳐 주실 약속과 축복의 땅, 가나안 땅은 보지 못하고 사람들과 온갖 장애물로 둘러싸인 가나안 땅의 현재만 보았기에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은 이와 같이 애굽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백성들을 광야에서 모조리 쓸어버리시고 긍정적인 믿음, 미래 지향적인 믿음, 진취적이고 개척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그 후손들을 새로 일으켜서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세대들은 다 광야에서 엎드리어지고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들이 가나안 땅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런 은혜가 세상 사는 날 동안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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