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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전승환

by liefd 2024.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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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의 속도에 걸음을 맞추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이 소진되고 마음 한구석엔 구멍이 뻥 뚫려버립니다. 온전한 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루하루 떠밀리듯 살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즐겁지 않고 누구의 위로를 받아도 위로가 되지 않죠.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외로움이 덮쳐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이렇게 조언해주었죠.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좀 더 힘내. 너는 충분히 강하니까 해낼 수 있어."

분명히 위로를 건네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삶은 여전히 버겁기만 했습니다. 특별히 강해지고 싶다거나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이 더 필요했던 건 아닙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생각해보면 삶의 방향과 모양은 사람마다 다른데,

제가 나아갈 방향을 다른 사람에게 묻고, 비어 있는 부분을 내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직접적인 조언보다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위로가 더 크게 와닿는다는 것,

그저 내 마음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1부 누군가 안부를 물어주는 것 같아서~나의 감정을 살피다

마음의 밑바닥에서 슬픈 소리가 들리면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풍자소설입니다.

이름 없는 고양이의 시점으로 바라본 인간 사회를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저는 특히 이 문장을 좋아하는데, 사실 우리도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밝게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깊은 슬픔을 감추고 살아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불쑥 슬픔이 찾아올 때, 제겐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더 외로워지는 겁니다.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이야기나 문장을 찾는 거죠. 그러다 뭔가 쿵 마음에 와닿을 때면,

나도 모르게 펑펑 눈물이 납니다. 그럴 땐 마음이 풀릴 때까지 맘껏 울면 됩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요.

홀로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그 안에 있는 것과 솔직하게 마주하는 거지요.

 

물론 그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지고 기운이 납니다.

 

잠들지 못하는 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 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보통이 불안에서 제안한 것처럼 여행이나 예술에 몰두하는 겁니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흥분과 설렘을 느끼면 불안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죠.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뭔가 몰입하고 집중할 게 있으면 불안이 사라지니까요. 물론 이런 방법은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두 번째 방법은 불안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애써 거기에 집중하거나 섣불리 제거하려 들지 말고 마음 한편에 그대로 두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불안은 정말 우리에게 나쁘기만 한 걸까요?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에 이르는 병, 이것이냐 저것이냐, 불안의 개념같은 책을 쓴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입니다. 키르케고르는 마음속 깊은 곳에 동요가 없거나, 압박이나 부조화, 불안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면서, 불안을 제거하는 대신 오히려 불안을 토대로 자신만의 실존주의 철학을

세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이다.”

 

고통을 느낄 수 있어야 상처를 적절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불안 역시 지금 내 삶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깨닫게 해주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도와줍니다.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의 삶이 지나치게 불안하다면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기에 정책과 제도를 바로잡아야겠죠.

 

성수선 작가의 에세이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에는 이런 공감의 메시지가 잘 담겨 있습니다.

 

지금 그 정도면 괜찮아, 잘하고 있어, 불안해하지 마. 가끔 내가 물어보기 전에 누가 먼저 말해주면 좋겠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넌 참 잘하고 있다고 지금처럼만 계속하라고.

 

불안할 때는 먼저 내 마음을 돌아보고, 그 다음으로 관계를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가진 여러 모습, 설령 조금 못나 보이는 모습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즉 나라는 기준점을 단단히 다지면 우리는 어떤 불안 속에서도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고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좋은 사람을 곁에 둔다면, 불시에 들이닥치는 불안에도 잘 대처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불안한 마음을 적당한 크기로 잘 다스리면, 그것이 행복의 촉매제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넌 원하는 게 뭐야?"

어떤 거? 갖고 싶은 거?"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간절하게 원하는 거.” “글쎄, 내가 원하는 거라 그런데 갑자기 왜?"

"그냥 요새 계속 그런 생각이 들거든.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사는 거 같다고."

 

어느 날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언젠가부터 고민하지 않고 살았더군요.

그저 하루하루 사는 데 급급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질문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죠.

그 질문은 친구와 헤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릴 땐 뭐가 되고 싶었지?',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때는 언제지?', '뭘 할 때 가장 뿌듯했지?'

이런 고민들의 해답을 찾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은 김동영 작가의 나만 위로할 것. 천천히 책장을 넘겨보다가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나는 내게 조용히,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는 일이었지 내가 좋아했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만족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내고 싶다.

 

설령 나중에 마음이 변하더라도, 그땐 그 변한 마음에 충실하면 됩니다. 행복은 어딘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에 충실할 때 얻을 수 있으니까요.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여행에 있는 이 글처럼 말입니다.

 

예전 책에 '여기서 행복할 것'이라는 말을 써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 자기 앞의 생의 첫 장에는 이런 인용문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내가 말했다. "인생의 맛은 정신 나간 사람만 알고 있지."

 

이처럼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스스로 해야 하지요.

 

상처를 치유하는 적절한 거리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오로지 혼자 가꾸어야 할 자기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떨어져 있어서 빈 채로 있는 그 여백으로 인해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할 수 있게 된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위해 서로 그리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상처 주지 않, 그러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나무들이 올곧게 잘 자라는데 필요한 이 간격을 그리움의 간격이라고 부른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바라볼 수는 있지만 절대 간섭하거나 구속할 수 없는 거리, 그래서 서로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거리.

 

우종영 작가의 에세이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의 한 구절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거나 상처를 주게 될 때, 저는 이 문장을 되새기며 관계의 적절한 거리에 대해 고민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 거리를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개체공간(Personal Spa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모든 개체는 자신의 주변에 일정한 공간을 필요로 하고, 다른 개체가 그 안에 들어오면 긴장과 위협을 느낀다고 합니다.

가족과는 20 센티미터, 친구와는 46 센티미터, 회사 동료와는 1.2 미터 정도의 거리가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죠.

 

슬픔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모습으로 눈앞을 가로막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을. 결코 그 손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입니다.

 

외로움의 여러 모양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까요? 저의 개인적인 방법을 말씀드리면,

저는 외로울 때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는 일이 외로움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순없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누군가도 느끼고 있다는 위안을 얻게 되죠. 모든 사람이 일정 부분 외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 왠지 외로움이 저를 위로해주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런 제 마음에 잘 와닿은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입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사람만 외로운 게 아니라 종소리도 그림자도 동물도 자연도 심지어 신마저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위로를 건넵니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꼭 무언가 다른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외로움을 견디고 이겨 내기 위한 방법은 다 다르니, 누군가가 겪는 외로움을 위로하려면 일단 먼저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지요.

 

세상에는 수많은 모양과 크기의 외로움이 있고, 그것은 서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개의 외로움이 있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외로움을 홀로 외롭게 견뎌내야 하죠.

누구도 타인의 외로움을 잘 안다고 쉽게 말할 순 없습니다.

이런 점을 잘 알 때야 우리는 비로소 섣불리 쉽게 던지는 위로가 아닌,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를 아주 조심스레 건넬 수 있습니다.

 

후회가 남지 않는 사랑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지 못할 때 후회하게 됩니다. 사랑을 예로 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소홀히 대하거나 한눈파는 잘못을 저지르는 거죠.

이런 행동은 상대에게도 크게 잘못하는 일이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큰 후회와 상처를 남깁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에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무엇인가 하고 있으면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정신 집중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실행해야 한다.

그들은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도피하지 말고 서로 친밀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저 역시 잘못을 후회하고 반성할 때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했던 말을 격언처럼 되새기곤 합니다.

 

인생은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후회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죠.

하지만 지난 일을 후회하기만 하는 건, 현재를 또 다른 후회의 순간으로 만들 뿐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삶이 후회로만 가득 차도록 방치하지 마세요. 후회를 오로지 후회하지 않는 데,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데 쓸 수 있다면, 우리 삶은 보다 단단해질 것입니다.

 

미움과 분노는 나의 힘

 

세상이란 건요, 행복의 모습은 대개 거기서 거기로 비슷하지만 불행의 모습은 제각각 다르답니다.

저마다 자기만의 특별한 고통을 짊어지고 있어요.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다 똑같아요.

그러니깐 당신만 무슨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고요.

만약 당신만 특별히 고통스럽다고 한다면 그건 그렇게 믿는 당신 스스로가 특별히 불행한 거예요.

 

아사다 지로의 소설 파리로 가다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다시 파리로 가다로 돌아가면, 앞선 문장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에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바로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장이지요.

아무튼 아사다 지로나 톨스토이의 말처럼 불행도 고통도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화를 내게 되는 상황도 한 사람에게만

특별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저는 왠지 이 말에 위로를 받았어요.

나만 특별히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 자체가 스스로를 특별히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따끔한 충고도, 쓰렸지만 도움이 됐습니다.

위대한 집착

 

인정하면 집착이 없어진다.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될 수 없고 그 물건이 내 물건이 될 수 없고, 그 돈이 내 돈이 될 수 없고 그의 재능이 나의 재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인정하고 나니 한편으론 여유가 생겼지만 한편으론 미친 듯이 슬퍼졌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집착을 하게 됩니다. 제 경우처럼 실패가 뻔히 보이는 일에 헛된 집착을 할 때도 있죠.

사람의 마음이든 갖고 싶은 물건이든, 재능이든, 내가 노력하고 매달린 만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때 계속 매달리는 건 해롭습니다. 집착을 버려야 하죠.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앞선 문장 역시 인정하면 집착이 없어진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친 듯이 슬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착이란 대체 뭘까요? 사전에 따르면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람들

대부분은 살아가면서 집착을 완전히 버릴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에도 매달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요.

 

옛 성인인 노자는 도덕경에서 무사성사(無私成私), "버려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지만, 평범한 우리로서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공지영 작가 역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에서 이런 집착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지요.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 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내려놓아도 마음 한편이 슬퍼지고, 그 이후의 공허가 두려워 다시금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게 되는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문장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머리로는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집착을 내려놓아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을 하지만 집착은 대개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프로이트가 "억압하는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라고 말한 것처럼 버린다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죠.

상황에 따라서는 잘못된 집착으로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좋은 면도 많습니다.

삶에 대한 갈망이나 예술이나 과학에 대한 집착이 마침내 위대한 결과를 낳은 적이 많으니까요.

 

중요한 건 집착의 방향입니다. 잘못된 방향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집착한다면,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와 국가 나아가 인류에까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예컨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빛나는 예술적 성과들은 모두 천재적인 재능의 산물인 동시에 엄청난 집착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남들은 미련하다고 여겼던 집착과 몰입으로 인류 역사에 남는 결실을 맺은 것이죠.

그들에겐 집착이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었을 겁니다.

차나 한잔 할까요?

차를 마시는 건 커피나 다른 음료를 마시는 행위와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세상의 소란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혼자만의 고요한 세계로 빠져드는 매력이 있지요.

그래서일까요. 많은 역사적 인물도 차를 사랑했다고 합니다.

특히 나폴레옹의 단 하나뿐인 취미가 바로 차 마시는 일이었다고 하죠.

하루에 겨우 네 시간만 자면서 온종일 유럽 정복의 꿈을꾸었던 야심가였지만, 차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았겠지요.

 

마음이 편할 때나 편치 않을 때나 차를 마시는 시간은 늘 온화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힘도 깃들어 있죠.

 

이러한 차의 매력을 김소연 시인은 마음사전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충분히 건조되었을 때야 온몸으로 응축하고 있던 향기를 더 향기롭게 퍼뜨리는 뜨거운 차 한잔처럼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마주한 시간도 그와 같다.

향기롭게 발산하기 위하여 나에겐 언제나 따뜻한 물과 같은 당신이 필요하다.

 

마음을 차 향기에 비유한 이 글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온몸이 차를 마실 때처럼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이처럼 따뜻한 물 한잔 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어요.

이 세상이 차가운 겨울처럼 느껴질 때 그런 존재와 따뜻한 차를 나누며 마음 편하게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면 얼어붙은 마음도 조금은 녹일 수 있겠지요.

 

인생의 행복은 별다른 게 아닙니다. 이처럼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를 아는 삶, 나아가 좋은 사람과 그 시간을 함께 나누는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이겠지요.

 

이렇게 사람들과 차를 나누는 일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말하는 책도 있는데, 바로 인류학자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입니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그를 다시 한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를 갖는다는 것 외에 다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을 연기하려면 최소한의 무대장치와 소품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공간 갈아입을 옷, 찻주전자와 차를 살 돈 같은 것 말이다.

그러므로 확대는 자원의 재분배를 포함하기 마련이다.

 

하루하루 정신없고 마음에 여유가 없을수록 이런 마음훈련은 더더욱 필요합니다. 정말 바쁠 때도 있겠지만 매일 바쁘기만 하다면 문제가 있는 거죠. 불필요한 일을 너무 많이 신경 쓰고 있을 수도 있고요.

런 일은 아예 신경을 꺼버리는 것도 좋은 마음 훈련 방법 중 하나입니다.

 

바로 마크 맨슨이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추천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문제를 피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하면 불행해진다. 해결 못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도 역시 불행해진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문제 밖에 자리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행복하려면 우리는 뭔가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므로 행복은 일종의 행동이며 활동이다.

행복은 가만히 있으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맨슨은 우리가 좀 더 편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걱정을 줄이고 꼭 필요한 걱정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불필요한 걱정이 많아지면 꼭 필요한 걱정을 못 하게 됩니다. 정작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는 거죠.

 

2부 힘내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나의 시간을 살피다

첫눈처럼 사랑해주세요

 

어느 날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고민과 걱정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햄릿을 꺼내 읽으면 해결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그렇게 밤마다 햄릿의 책장을 넘기다 이 문장을 만나게 됐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함부로 입 밖에 털어놓지 마라. 엉뚱한 생각을 언동에 옮기지 마라.

친구는 사귀되, 절대 가깝게 대하지 마라.

일단 친구를 사귀어서 진정한 우정이 보이면 쇠사슬로 자기 마음에 꽁꽁 묶어 둬라.

그렇다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풋병아리들과 악수하느라 손바닥 감각만 잃게 하는 그런 일은 말아라.

(……)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라. 그렇게 되면 밤이 낮을 따르듯 기필코 너 자신도 남에게 성실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에세이 첫눈 오는 날 만나자의 한 부분입니다.

첫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죠.

눈은 거의 매년 내리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늘 첫눈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이라는 말에 애틋한 의미가 더해지는 거죠.

따라서 우리는 첫눈을 애틋하게 기다리게끔 만드는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아껴야 합니다.

 

당신의 사소한 일상이 궁금해서

사회학 이론 중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습니다.

깨진 유리창을 길거리에 그대로 방치하는 것만으로 도시 전체의 범죄가 늘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사소한 무질서가 큰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개인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요.

예컨대 연인이나 친구가 크게 다툴 때는 단지 한두 개의 사건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오랫동안 작은 오해와 감정이 쌓이고 또 쌓였다가 터지는 문제죠.

이때 '대체 왜 사소한 일로 화를 내냐'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사소하지 않은 그 상황은 바로 오랜 시간에 걸쳐 사소함이 켜켜이 쌓였을 때 일어나니까요.

 

철학자이자 아들러 심리학의 전문가 기시미 이치로는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에서

사랑의 기초가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상대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상 속 사소한 일들을 알고 싶다는뜻 이죠.

점심은 먹었는지, 지금 기분은 어떤지, 오늘 하루 별일은 없었는지 계속 궁금한 겁니다.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살다 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을 종종 겪게 됩니다. 똑같은 위로라도 어떤 건 진심이 잘 전달돼 힘이 나지만, 반대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있죠. 그저 힘내고 열심히 하라는 말만으로는 위로가 잘 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느껴지지도 않고요. 정말 힘든 사람에게 필요한 건 그런 말이 아니라, 먼저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고 그것을 알아주는 일이니까요.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 라고 격려하는 소리만 넘치는 세상,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참된 힘이 솟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 잘못된 세계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잖니?

인간이란 실은 그렇게 힘을 내서 살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 속도에 맞춰 그저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되는 거야.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사랑을 주세요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요즘 들어 더욱 제 머릿속을 맴도는 구절이기도 한데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말이

아마도 이 말인 것 같습니다. 바로 '힘내'가 아니라,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

 

괜찮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더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힘들어도 자리에 주저앉지 못한 채 억지로 버티고 서있는 이들에게, 이 말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요.

너무 힘을 내기에 오히려 엉뚱한 길로 빠지고 잘못된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다는 말,

내지 않아야 오히려 힘이 난다는 말은 우리가 힘을 내는 이유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사람에겐 저마다 맞는 속도가 있습니다. 무리해서 빨리 달리려고만 하거나,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속도를 억지로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진짜 필요할 때 힘을 낼 수 없고, 도중에 지쳐서 쓰러져버릴 테니까요.

 

일상의 시간을 벗어나야 진짜 여행

 

진정한 여행은 다른 낯선 땅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교감입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이유지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함께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추억도 쌓입니다.

특별한 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할 수 있고, 그것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좋은 추억이 됩니다.

꼭 멀리 떠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한다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내가 오래 기억해야 할 건 그 온기뿐만 아니라, 청년의 미소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교감일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 낯선 곳으로 여행 갔을 때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그럴 땐 똑같이 생긴 뭔가를 두개 산 다음

그중 하나에 마음을 담아서 건네면 된다. 환하게 웃으면서 그러면 된다.

 

저는 이병률 시인의 에세이 끌림의 이 문장을 매우 좋아합니다.

지금 당장 모험을 떠날 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꿈꾸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고 싶다면, 그 바람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 꿈은 분명 이루어질 것이다.

비록 가는 길이 험난하고 때론 넘어져 다칠 수도 있지만, 인생에서의 성공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취업 준비생 시절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라는 책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잠깐 멈칫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좋은 말이지만 좀 뻔한 이야기가 아닐까 삐뚤어진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책을 쓰신 김혜남 작가의 삶을 알게 되자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더군요.

 

그는 촉망받던 정신과 전문의였는데, 겨우 마흔 셋이라는 나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죠. 처음에는 너무 억울하고 세상이 원망스러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 달 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거죠. "그래도 아직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은데 왜 이러고 있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지금까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환자를 진료하고, 아이를 키우고,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누구나 절망할 법한 상황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두려워 말고 꿈을 꾸라는 메시지를 자신의 삶으로 몸소 보여주신 거죠. "인생에서 성공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라는 문장도 제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취업 준비로 어렵고 힘들던 시절, 저는 그 문장의 힘으로 방황하거나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꿈이란 건 대체 뭘까요? 우리는 그 한 단어에 참 많은 의미를 두며 살아갑니다. 꿈의 모양과 크기는 사람마다 제각각 달라도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면 앞으로 되고 싶거나 가지고 싶은 걸 꿈꾼다는 점이죠.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은 당신이 꿈꾸는 삶을 사는 것이다.

 

미국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이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가난과 폭력으로 점철된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마침내 자기 꿈을 이뤘습니다. 지금은 자신처럼 불우한 처지에 놓인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지요.

역사상 가장 용감했던 모험가 중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있습니다.

그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바로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입니다. 어느 날, 한 만찬에 참석한 콜럼버스에게 한 사람이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단지 운이 좋아 먼저 신대륙을 발견했을 뿐, 자신도 얼마든지 똑같은 업적을 쉽게 이룰 수

있었을 거라고 말했죠.

러자 콜럼버스는 식탁 위에 있던 달걀을 집어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달걀이 하나 있습니다. 누구든 식탁 위에 이 달걀을 세울 수 있는 분이 계실까요?"

 

많은 사람이 도전했지만 달걀은 여기저기 식탁 위를 계속 굴러다녔고, 결국 누구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가만히 달걀을 집어 들고 끝부분을 살짝 깬 다음 달걀을 세웠습니다. “, 이제 여러분 모두 달걀을 세울 수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도 그것을 맨 처음 이루는 것은 어렵습니다."

 

원래 이 이야기는 콜럼버스의 일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도 중요한 교훈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꿈은 그저 머릿속으로만 상상해서는 안 되고 직접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죠.

용기를 갖고 기꺼이 모험을 감수하는 사람, 꿈을 이루려 실천하는 사람만이 그걸 현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관계, 살아있는 추억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거야. 가령 추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버려.

이 세상에는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잖아. 지금은 너하고 이렇게 손잡고 있지만, 손을 놓고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못 만날

가능성도 있는 거잖아?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좋아하는 사람하고는 계속 만나야 한다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가네시로 가즈키의 연애소설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나오키상의 최연소 수상 작가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소설가인데요. 특히 저는 앞선 구절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는 살아가면서 필요한 게 추억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현재로 만드는 일, 즉 추억을 함께 만들어갈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계속해서 추억을 만들며, 서로에게 살아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떠올리는 추억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더는 만나지 않는 사람과의 '죽은 추억'이고,

다른 하나는 계속 만나고 관계를 맺는 사람과의 '살아 있는 추억'입니다.

둘 중에서 우리의 삶을 보다 건강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지금 여기의 시간

"죽음을 기억하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메멘토 모리'라는 라틴어 격언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죽음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평소에는 거의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심지어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이나 넘나든 사람들도 말이죠.

모두 아득히 먼일로만 여길 뿐 현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거나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기에 일부러 회피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라틴어 격언은 과거 로마 시대에선 큰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맞이할 때 쓰였다고 합니다.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시가행진을 할 때 옆자리에 노예를 태워 그 격언을 외치게 한 거죠.

아무리 큰 성공을 이룬 사람도 자만하지 말고 늘 겸손해야 한다는 지혜가 담긴 일화입니다.

 

착한 아이 노릇은 그만

내 미소는 나의 명함이다. 미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나의 미소는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고,

서먹한 얼음을 깨뜨리고, 폭풍우를 잠재우는 힘을 갖고 있다. 나는 늘 제일 먼저 미소 짓는 사람이 되겠다. (・・・・・・)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앤디 앤드루스의 소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의 한 구절입니다.

출간 전에는 여러 출판사에서 무려 쉰한 번이나 거절당했다고 하는데, 그런 어려움 끝에 세상에 나온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노숙을 할 정도로 큰 고난을 겪고도 웃음을 잃지 않고

스탠딩 코미디언이자 언론인, 작가로 성공한 그의 긍정적인 인생관이 잘 묻어나오는 작품이지요.

엄마의 이름

지난 2008, 중국 쓰촨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북부 산악지대에 있던 웬추안이 가장 피해가 컸는데요, 대부분의 건물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무너져 내려서 많은 사람이 그 아래 깔리게 됐습니다.

수많은 구급대원이 생존자를 찾기 위해 곳곳을 수색했는데,어떤 곳에서 한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미 몸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죠.

 

그런데 그 자세가 특이했습니다. 오른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있었고 자세는 구부린 채로 무언가를 감싼 모습이었습니다.

식사 도중에 지진이 일어나자 떨어지는 잔해를 황급히 온몸으로 막은 겁니다.

구조대원이 조심스럽게 여인의 몸을 들어 올리자, 거기에는 꽃무늬 담요에 싸인 갓난아이가 평화롭게 쌕쌕 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이죠. 아이에게는 엄마의 품이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이었을 테니까요.

담요 안에는 휴대폰이 있었는데,이런 메모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가야, 네가 살아 있다면 이것만은 꼭 기억해주렴.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혹시 엄마를 이름으로 불러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본인의 이름을 자식들이 불러주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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