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박현실 권사님이 2층 컴퓨터실에서 밥상이 넘어지는 바람에 엉겁결에 손바닥을 갖다 되는 바람에 잠깐 동안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겁니다. 옆에서 다른 권사님이 큰 일 날뻔 했다. 박 권사님은 그래도 머리 다치지 않고 손바닥을 다쳐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만약 머리를 다쳤으면 어떻게 할 뻔 했나! 손바닥을 다쳐서 피가 흐르는 상황에서도 그래도 머리 안 다쳐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이 말이 주중에 생각났습니다.
대개 사람의 입술의 모양을 보면 불평의 사람인지, 감사의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입술에 불만이 가득하고 부루퉁하기 때문에 대개 입술이 뽀족합니다. 반면에 감사하는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있고 기쁨이 있기 때문에 입술이 옆으로 퍼져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불평인생을 살 것인가? 감사인생을 살 것인가? 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반면에 불평은 사단을 기쁘게 만듭니다.
같은 환경이지만 감사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삶은 풍요롭고 행복합니다. 반대로 불평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인생은 피곤하고 불행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얼굴빛을 평온하게 만듭니다. 불평은 우리의 얼굴빛을 어둡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라면 불평제조업자가 아닌 감사제조업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 공장이 불평이 아닌 감사를 찍어내다 보면 언제나 기쁨과 축복이 넘칩니다.
출애굽기 15장 1-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건널 때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애굽의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에게는 노예의 근성이 여전이 남아있었습니다. 지금가지 해 왔던 일에 대해서는 잘 하는 편인데 상황이 바뀌면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대개 어떤 일에 집착하기를 좋아하고, 한 가지 일에 너무 오래 종사한 분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 무척 힘들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건넌 후에 광야로 들어간 지 삼일이 되었지만 물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렵게 물을 발견하였지만 물이 써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기대를 잔뜩하다가 어긋나는 순간 원망이 생깁니다. 출애굽기 15장 24절 말씀입니다.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삼일 전에 감사가 다시 원망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것은 감사했던 것까지 불평으로 바뀌려고 할 때입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불편함 때문입니다(24절). 우리가 필요로 하는 부분이 채워지지 않으면 쉽게 불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물이 필요할 때 그들은 원망합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비교 의식 때문입니다(민 13:32-33). 가나안 정탐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10지파는 가나안 주민들과 자기들과 비교하면서 우리는 메뚜기 떼와 같다고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염려하기 때문입니다(민 14:1-3).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과 싸우면 패하게 되고, 처자들까지도 잡혀가게 될 것을 염려합니다.
대부분의 가나안 정탐꾼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원망이었습니다.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껄, 아니면 이 광야에서라도 죽었으면 좋았을 걸!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새로운 기대로 부풀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는 순간 차라리 죽고 싶다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정말 그들이 죽고 싶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살고 싶은 강한 애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의 입에는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이렇게 마음의 소원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곤 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나거나 흥분하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마음의 소원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탄식의 말이 민수기 14장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하는 말을 다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4장 28절 말씀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서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민수기 14장 3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마음에 품고 있었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온 말대로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문제도 보았지만 정답을 함께 보았습니다. 즉 여호수아와 갑렙도 장대같은 아낙 자손을 보았습니다. 동시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낙 자손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도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우리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말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수 14:6-15). 이것은 말 그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들으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이후의 사건을 보면 홍해 바다를 건널 때 단 한번 찬양과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에 그들은 불편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이전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망각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였지만 찬양과 감사의 표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우리는 탄식하는 말을 합니다.
“평생 감사”라는 책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술주정뱅이 남편과 10년 동안 씨름하면서 살아가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하나님, 왜 제가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남편이 변하지 않을까요? 하나님 저도 이제 더 이상 못참겠어요. 대성통곡하다가 지난 주 들은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감사할 게 하나라도 있어야지 싶어 고민하다보니 좀 우습기는 하지만 몇 가지 감사 거리가 떠올랐습니다.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바라보며 한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감사합니다. 언젠가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합니다. 저렇게 술은 취했지만 다른 데 안가고 항상 집을 잘 찾아와서 잠을 자니 감사합니다. 술은 좋아해도 여자라고는 아내 밖에 모르니 감사합니다. 술은 그렇게 마셔도 아직 병원에 한번 안 간 것도 감사합니다. 술 먹은 다음 날 아직까지 결근한 적이 없으니 감사합니다. 토요일에는 술을 더 많이 마셔서 주일날은 어김없이 잠만 자니 제가 교회에 가는데 방해받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남편이 자다가 목이 말라 깨어 보니 아내가 웃으면서 계속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여보, 한 밤중에 잠 안자고 뭐하는 거야, 뭐가 좋아서 혼자 싱글벙글 하는 거여?” “여보 당신과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래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감사한 기도 제목을 모조리 다 말해 주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남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내가 술을 먹고 당신 속을 그렇게 썩였는데 나와 사는 것이 감사하다고 하니 고맙소 이제부터는 술 끊으려고 노력하겠소, 그리고 내가 교회 나가는데 그렇게 소원이라면 당장 내일부터라도 나가겠소.”
10년 동안 눈물로 기도해도 꿈쩍 않던 남편의 마음이 단 한 번의 감사기도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당신이 지금 힘들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단 한번이라도 감사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특징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구약에 다윗은 그 누구보다도 절박한 상황에서 죽음의 위기를 넘겨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시편 136편에서 한 구절 한 구절 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합니다. 다윗은 광야의 사건을 회상하면서 26번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감사는 상황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강한 손과 발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허물과 죄악으로 죽었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다윗은 또한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금가지 교회 생활하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신약에 사도 바울은 자신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성도들을 향하여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 앞에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감사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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