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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 신드롬(고전 9:22-27),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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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가 무엇일까요? 안믿는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구원을 받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도를 전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믿음의 경주를 잘 할 수 있도록 돕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도할 때 대상에 따라서 지혜롭게 전도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느니라라는 전도는 누구에게 더 필요한 것일까요? 이 메세지는 믿지 않는 자보다 믿는 자에게 필요한 메시지입니다.

 

마태복음 32절에 보면 세례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전파하였습니다. 당시에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이미 믿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그 자체가 믿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을 통해서 돌이키고 변화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자에게는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요? 사도행전 1629-34절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들이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미할 때 옥문이 열리고 매였던 사슬이 풀리게 됩니다. 간수가 자다가 감옥의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친 줄로 생각하고 자결하려고 합니다. 바로 그 때 바울이 크게 소리지릅니다.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가 너무 놀라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30) 바울이 그 간수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이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의 말씀을 전합니다. 33-34절에 보면 저와 온 집이 다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즉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전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제 전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너도 한 사람 나도 한 사람 우리 모두 한 사람 전도하기를 소원합니다. 고린도전서 9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바울은 자신이 전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내게 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긴박감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긴박감은 에스겔 선지자에게도 있었습니다. 에스겔 31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만약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너무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까? 바울 역시 전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긍정적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14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무엇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고 표현하고 있을까요? 고린도후서 45절 이후의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 즉 바울은 전도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신다고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이유에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린도전서 92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로 천국 가게 만들어 놓고 정작 자신은 하나님 앞에 버림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모든 일에 절제하며 자신을 쳐서 말씀에 복종시켰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92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지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여기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란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 즉 천국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내가 하나님께 버림이 되지는 않을까? 한번이라도 두려워해 보셨습니까? 바울은 하나님께 버림받을까 두려워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라고 고백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만 도리어 자신이 버림을 받을지 모른다는 것 때문에 모든 일에 절제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모습 때문에 전도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대 우리는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나 자신의 믿음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 이유가 그 사람이 혹시 실망하여서 교회를 떠나게 될까봐 우려해서 망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도 당시에 종교적 지도자들이 전도는 했지만 오히려 지옥 백성 만들고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1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주님이 책망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지옥백성 만들까봐 우리는 더 이상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요? 우리가 한 영혼을 전도하는 것 이상으로 올바른 믿음 생활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관심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 자신의 믿음의 연약한 모습 때문에 우리는 전도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나도 믿음이 없는데 내가 누구를 전도하랴!’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역으로 생각하야 합니다.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부족해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좋아지고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5-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안드레는 즉시 자신의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안드레가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도달했기 때문에 자기 형제 베드로를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을 만나니까 너무 좋아서 자기 형제에게 곧 바로 예수님을 소개한 것입니다. 초신자가 전도를 잘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1-7절에서 열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사마리아인의 길로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하였습니다. 열 두 제자가 말씀을 전파한 대상은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곧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때에 교회를 다니고 봉사는 하였지만 지금 믿음의 생활을 등한히 하는 분들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이 지금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예수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과연 당신은 지금 어떤 신앙을 가졌습니까? 솔로몬은 전도사를 통해 해 아래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며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물질, 명예, 쾌락 , 웃음, 지식을 위해 살아왔지만, 단순히 그것은 수고와 고통 밖에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기쁨이며 무엇이 생명이고, 무엇이 소망입니까? 바로 천국을 준비하는 믿음,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준비하는 믿음을 가질 때 그것이 참되고 기쁨이며 생명이고 소망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 때 신앙을 가졌다가 포기한 사람들에게 찾아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교회는 다니지만 어떻게 믿음 생활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믿음의 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더 이상 신앙생활은 하지만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히브리서 103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의 믿음은 영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이 믿음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만일 뒤로 물러가면 즉 다시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영혼 구원에 이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훈련시키십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39절에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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