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격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나는 자격이 없지 않은가? 남편으로서 자격이 없지 않은가? 자녀로서 자격이 없지 않은가? 성도로서 자격이 없지 않은가? 책임자로서 나는 자격이 없지 않은가? 안그래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그렇게 말하면 실망과 좌절에 빠지게 됩니다.
더구나 나는 왜 이것 밖에 못할까? 생각을 들면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어! 혹시 나는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 같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착각은 자유입니다. 나 자신의 기준에서 자격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로마서 3장 9-12절에는 이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때 이 세상에서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자격이 없다는 것 때문에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 때문에 비참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자격지심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이제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사랑받을만한 자격을 얻게 되었을까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복음송가를 부르면 가능한 것일까요? 우리가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아시고 오래전부터 준비해 오신 분이 계십니다. 도대체 그런 분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성경은 그 분이 누구인지 로마서 5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바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십자가 사랑은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을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은 십자가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기 때문에 십자가 사랑을 받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은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랑입니다.
로마서 5장 6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예수님께서 우리가 연약할 때에, 경건치 않을 때에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또한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즉 우리가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은 자격이 없는 우리를 위하여 주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사랑받을만한 자격을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다는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마음에 참소하는 자가 있습니다. 너는 아무래도 더 이상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어! 다시 이러한 마음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올 때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 도저히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결코 겸손이 아닙니다. 이것이 최고의 교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다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감정이 아니라 말씀을 가지고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는데 누가 감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할 수 있습니까? 로마서 8장 34절에 보면 누가 우리를 정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는 정죄함 없습니다.
또한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더 이상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돈을 잘 벌지 못하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능력이 없으면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에도 자책감에 빠지지 말고 말씀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6절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즉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서 끊어버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기 때문에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도할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롬 5:5).
누가복음 15장에서 나타난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는 아들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탕자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그 자체가 싫어서 자신의 재산을 챙겨서 타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돈이 다 떨어지고 그 나라에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탕자는 자신의 허기진 배를 움켜 지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그러면서 탕자는 지금의 자신의 모습과 아버지 집에 있을 때 자신의 모습이 너무 비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않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탕자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시간들이 너무나 좋았던 시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탕자는 도저히 아버지께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탕자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도저히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탕자는 아들이라는 자격은 없지만 품군의 하나로 써달라고 부탁해야 되겠다는 결단을 내리면서 아버지 집으로 향합니다. 우리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는 수간 그것이 좋은 줄 알면서 망설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자격에 이끌리지 말고 사랑에 이끌리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탕자는 지금까지 부모의 재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자격지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이끌려 아버지 집으로 곧바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언젠가는 아버지 집으로 가야지 하면서 자신의 형편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탕자를 미리 용서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탕자를 보는 순간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용서를 의미합니다. 내 재산 어떻게 했는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꼴좋다고 책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아들의 자격이 없다고 변명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최고로 대우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신발을 신겨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풍악을 울려 주었습니다. 사랑은 자격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최고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잃었던 아들을 내가 얻었다고 그렇게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바로 이와같은 사랑입니다. 자격이 없다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에게 사랑으로 대접해주시는 분입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입니다. 사랑은 자격이 아니라 끌리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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