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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눅 11:37-44,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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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건의 발단은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합 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보통 하루에 두 끼 식사를 했는데, 한 번은 늦은 아침에 가볍게 하고(아리스톤), 또 한 번은 늦은 오후에 하는 데 이것이 주식사입니다(데이프논). 안식일에는 세 차례의 식사를 하는데 예배가 끝난 후에 먹는 점심을 가장 잘 차립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께서 초대받은 식사는 '아침'입니다.

 

식사 전에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깁니다. 마가복음 72절에는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은 문제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당시에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절차가 복잡했습니다. 먼저 집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으면 종이 물을 가져오고 손님은 한 손을 씻고 포도주 잔을 듭니다. 그후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 기대면 다시 물을 가져와 두 손을 씻습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다움에 또 손을 씻습니다.

 

당시에 식사 전에 물그릇에 손을 담그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었는데 이것은 단순히 위생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죄 많은 세상과 접촉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불결을 제거하기 위한 결례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손을 씻으면서 영혼을 깨끗하게 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손을 씨지 않은 이유는 유대인들의 유전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질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그들은 잔이나 대접을 씻는 사람처럼 겉은 깨끗이 씾지만 내면에 가득한 탐욕과 악독을 방치하였습니다. 겉으로는 거룩하게 보이지만 내면은 철저하게 부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면적인 것만이 아니라 내먄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겉만 깨끗하게 한다고 해서 속의 추악함까지 감추어 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너희 안의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여지리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마음에도 없는 선행과 구제를 베풀지 말고 남을 구제하고자 하는 긍휼과 사랑이 마음에 가득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구제하기 이전에 먼저 마음의 상태가 깨끗한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야 참된 구제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신앙 행위에 대해 세 가지 예를 드십니다. 그들은 십일조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지만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버렸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불의에 억압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소한 것을 강조하면서도 중요한 것을 무시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십일조 율법 준수를 부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율법의 정신을 놓치지 않고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비본질적인 것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 본질적인 것에 소홀하지 않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높임을 받고 인사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회당에서도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하고 잔치에서도 상석에 앉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종교적 지도자들은 자기의 의무를 이행하는데 있어서 특권적 우월 의식이나 자신을 과시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대접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중심적이지 않고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먼저 인사하고 다른 사람들을 높여주고 인정해주고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해 준다고 시험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평토장한 무덤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묘지가 없고 무덤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은 보통 땅을 파고 묻는 평토장 매장법을 이용했습니다. 평토장 매장법은 단순합니다. 일단 사람들이 잘 다니지는 앉지만 나중에 다시 2차 장례를 위해서 잘 찾을 수 있는 곳을 선별하여 땅을 30-40센티 정도로 팝니다.

 

그리고 시신을 그곳에 넣고 흙으로 덮습니다. 그 이유는 약 1년 정도 지나고 난 뒤 시신의 살이 다 썩었을 때쯤 다시 무덤을 파 내고 뼈만 따로 모아 2차 장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신을 묻어 둔 곳을 표시를 해놓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이 있었습니다. 평토장을 하면 그 위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면 부정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비가 와서 빗물에 흙이 쓸러 내려갈 때 뼈들이 노출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르게 닿거나 밟으면 시체와 닿은 효과를 갖게 되어 육일이나 칠일간 부정하게 되어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게 됩니다(19:16). 이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유월절이 다가오면 많은 순례자들이 부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평토장한 무덤에 회칠을 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평토장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는 사이에 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도록 만드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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