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오순절 신년축제, 속죄일 초막절(장막절) 안식년 희년
유월절에 관한 규정(제 297 -305 계명)
제 297, 298 계명
유월절 첫날은 쉬어야 한다(제 297 계명; 레 23:7).
유월절 첫 날은 생업을 위하여 일해서는 안된다(제 298 계명; 레 23:7).
"첫 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을 돕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계명들은 각종 절기(히브리어로는 yom tov라고 부르는데, "좋은 날"이라는 뜻이다) 때에는 일정한 날, 즉 절기 첫날과 마지막 날 일하지 말고 쉬도록 규정하고 있다(참조. 제 300, 301, 308-310, 311, 314, 315, 317, 319, 321 등). 유대인들은 일하지 말라는 계명을 "쉬라"는 것과 "일하지 말라"는 것으로 구분하여 두 가지 계명으로 계산하였다.
이 구절은 유월절 첫날(니산월 14일, 대개 양력 3월 중순 이후가 된다) 에는 성회를 열도록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이날은 쉬어야 한다. 그러나 음식을 만드는 일만은 할 수 있었다(출 12:16). 이것이 안식일과 절기의 중요 차이점이다. 안식일에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금지되었으나, 절기 때에는 허락되었다. 이 날, 일은 하지 않지만 쉬지 않는 것은 이 규정을 범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절기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들과 하나님께서 그 날에 조상들에게 베푸신 기적을 생각하며, 즉 절기의 의미를 되새기며 절기를 지내기 위하여 쉬어야 된다고 가르쳤다. 이 규정은 절기를 철저하게 지키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레위기 23:7은 성서에 따라 여러 가지로 번역되어 있다. 표준 새번역 성서에서는 "생업"을 위해서 일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으며, 개역 성서에서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NIV성경에서는 "일반적인 일" (regular work)을 해서는 안된다로, NRSV에서는 "일터에서(at your occupation) 일을 해서는 안된다"로 번역하였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히브리어는 abodah로서, "노동의", "일의"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안식일이나 속죄일에는 어떤 형태의 일도 해서는 안된다고 단순하게 규정하고 있는 반면(레 23:3), 유월절 절기 첫날에는 abodah에 해당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특별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역 성서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번역하였다. 유대인들은 abodah의 일에는 음식을 만들거나 빵을 굽는 일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하였다.
제 299 계명
유월절 기간 동안에는 계속 번제를 드려야 한다(레 23:8).
유월절 기간 동안에는 일년 내내 매일마다 드리는 번제에다가 추가적으로 유월절 기간에만 드리는 번제물을 더 드리도록 하였는데, 이 제물을 Korban Musaf라고 불렀다. 오늘날은 이 제물을 드리는 대신에 유대인들은 "Musaf 기도"를 드린다.
제 300, 301 계명
유월절 기간중 이레째 되는 날에는 다시 쉬어야 한다(제 300 계명; 레 23:8).
그날은 생업을 위해서 일해서는 안된다(제 301 계명; 레 23:8).
유월절 첫날처럼 마지막 날도 일하지 않고 쉬어야 했다. 이에 대해서는 제 297-298 계명을 참조하라. 율법은 절기 중 첫날과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는 다른 날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하여 특별한 규정이 나와 있지 않다. 유대인들은 절기 중간에는 꼭 필요한 일이나 생계를 위해서 필요한 일을 제외하고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한편 디아스포라들(여러 나라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이레가 아니라 이틀만 지켰다.
제 302 계명
유월절 둘째 날에는 첫 곡식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하고 제사장은 그것을 흔들어 바쳐야 한다(레 23:10).
유월절 둘째 날이 시작되는 밤에(유대인들은 하루가 저녁에 시작됨을 기억하라) 예루살렘 가까운 곳에서 맨 처음 열매를 맺은 보리 한 단을 베었다. 그리고 그것을 둘째날 아침에 마르기 전에 제사장에게로 가져왔다. 그러면 제사장이 성전의 동편 뜰에서 위 아래로, 좌우로 흔들어 바쳤다. 이것은 수확을 거둔 것에 대한 감사의 제물이었다. 유월절 첫날은 이집트에서의 해방을 기념하며 즐거워하는 날이었고, 둘째 날은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날이었다.
제 303-305 계명
첫 곡식 단을 바치기 전에는 거두어들인 곡식을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된다(제 303 계명; 레 23:14).
첫 곡식 단을 바치기 전에는 볶은 곡식도 먹어서는 안된다(제 304 계명; 레 23:14).
또한 햇곡식도 먹어서는 안된다(제 305 계명; 레 23:14).
니산월 16일 이전에는 햇곡식을 거두어들일 수 없었으며, 먹지도 못하였다. 여기에서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는 곡식은 5가지로서, 밀, 보리, 스펠트(spelt, 밀의 일종), 귀리, 호밀이었다. 이러한 곡식들은 첫단이 제사장에 의해 바쳐진 이후에 먹었으며,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유월절 둘째날 오후에 먹도록 하였다. 이 때 쯤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흔들어 바치는 제사가 끝났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햇곡식을 니산월 17일이 지나야 먹는다.
오순절에 관한 규례(제 306 - 309 계명)
제 306 계명
곡식단을 흔들어 바친 그 날부터 49일이 되는 때까지 매일매일 날을 세어야 한다(레 23:15).
유월절 시작부터 오순절까지의 기간은 유대인들은 상당히 중요시한다. 이 계명은 하루도 빠짐없이 오순절까지의 날짜를 계산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매일마다 오순절을 준비하며 기다리라는 의미가 있다. 유월절부터 날을 세는데 있어서 유대인들은 지난 날 수와 더불어 남은 날 수를 계산한다. 오순절이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들은 이 날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 받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토라를 수여 받는다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들에게 있어서 더 없이 큰 이벤트이다. 이러한 지상 최대의 이벤트가 일어났던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매일매일 날짜를 계수 하도록 이 계명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 307 계명
오순절에는 햇곡식으로 만든 빵 두개를 바쳐야 한다(레 23:17).
오순절에 바치는 빵은 보리로 만든 것으로서, 길이가 일곱뼘, 너비가 네뼘, 두께가 네손가락 크기만 하게 만들었다. 이날 바친 곡식제물(빵)은 제사장들이 자정이 되기 전까지 다 먹어야 했다(참조. 레 23:20). 또한 오순절에는 온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이 빵과 함께 일년된 어린 양 7마리와 수송아지 1마리, 숫양 2마리를 번제물로 바쳐야 했고, 속죄제물로 숫염소 1마리, 화목제물로 일년된 숫양 2마리를 바쳐야 했다(레 23:18-19).
제 308, 309 계명
오순절에는 쉬어야 한다(제 308 계명; 레 23:21).
오순절에는 생업을 위해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된다(제 309 계명; 레 23:21).
오순절에도 다른 절기들처럼 쉬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제 297, 298 계명의 설명을 참조하라.
유월절은 이레 동안 지키게 되어 있으나, 오순절은 하루만 지킨다. 그 이유를 모세가 율법을 하루 동안에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Maimonides). 그러면 왜 성서에는 오순절을 모세가 율법을 받은 날로서 기념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은가?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특별한 날을 정해서 그날만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날을 기념해서는 안 되고 일년 내내 항상 하나님의 율법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그 율법을 주신 것을 기념하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Ephraim Solomon of Luntshitz). 유대인들은 오순절에 우유를 먹는 관습이 있다. 그 까닭은 이렇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있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에게 율법을 받음으로 새로 태어난 아이처럼 되었다. 따라서 이를 기념하는 오순절에 유대인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가 우유를 먹는 것처럼 우유를 먹는 것이라고 한다.
신년 축제와 속죄일에 관한 규례(제 310 - 317 계명)
제 310, 311 계명
새해 첫날(일곱째달 초하루)은 쉬어야 한다(제 310 계명; 레 23:24).
새해 첫 날에는 일해서는 안된다(제 311 계명; 레 23:25).
유대력에 의하면 새해는 일곱째 달(티쉬리 월, 보통 9-10월경에 해당한다)에 시작된다. 그러나 성서는 티쉬리 월 첫 날을 신년으로 부르지는 않고,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날"로만 부르고 있다. 후대에 랍비들이 이 날을 신년(새해)으로 정하였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하시고 유대인들이 성일로 지키며 그날을 한 주간의 첫날로 여기는 것처럼, 일곱째 달을 한 해의 "거룩한 달"로 여겨 그 달을 한해가 시작되는 달로 정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절기로 지키는 새해 첫날에 아담이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새해 명절을 이틀 동안 지켰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새해가 되었음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새해 명절을 이틀 동안 지키게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년 첫날은 24시간에서 48시간으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이 계명은 새해 첫날은 다른 절기들에 그러는 것처럼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참조. 제 297-298 계명).
제 312 계명
새해 첫날은 살라 바치는 제물을 드려야 한다(레 23:25).
민수기에서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년된 어린 숫양 일곱 마리를 번제물로서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다(민 29:2).
제 313 계명
속죄일에는 금식해야 한다(레 23:27).
신년 축제의 마지막 날인 열흘째되는 날은 속죄일(Yom Kippur)로서 지킨다. 티쉬리월 10일을 속죄일로 정해진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유대의 전승은 전하고 있다. 1) 이 날은 아담이 회개하고 죄를 사함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2) 아브라함이 이 날에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후손들이 이 날 하나님 앞에 죄사함을 구하는 것은 적절한 것이다. 3) 모세가 두 번째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날이 이 날인데, 이 때 하나님에게서 받아 가지고 내려온 돌판은 금송아지를 섬긴 것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 날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날은 온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가 다 "고행"을 해야 되는 날이다. 여기에서 고행을 유대인들은 금식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 날 누구나가 다 의무적으로 회개하며 금식을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일년 중 의무적으로 금식하는 날은 이 날 하루뿐이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들은 일주일에 두번씩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하였다(참조. 눅 18:12). 그것은 모세가 월요일에 시내 산에 올라가서 율법을 받고 목요일에 내려왔다고 하는 전승에 근거한 것이다.
탈무드에서 랍비들은 "고행" 을 하기 위해서는 금식뿐만 아니라 얼굴이나 손을 씻거나 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는 것도 삼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편 그들은 중병에 걸렸을 때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였으나, 그렇게 큰 병이 아닌 경우에는 조금만 먹거나 마셔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분량을, 음식의 경우에는 올리브 하나 정도의 양만큼, 그리고 음료의 경우는 반숫가락 정도의 양만큼만 먹도록 허락하였다. 임신한 여인은 금식을 하지 않아도 무관하였다.
제 314 계명
속죄일에는 살라 바치는 제물을 드려야 한다(레 23:27).
다른 특별 절기들에 그랬던 것처럼 속죄일에도 살라서 바치는 제물을 드려야 했다.
제 315 계명
속죄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된다(레 23:28).
속죄일에 쉬는 것은 안식일처럼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루를 속죄를 받는 일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Ibn Ezra). 이 날은 다른 절기 때와는 달리 음식을 하거나 빵을 굽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는 이 날은 금식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돌로 치도록 되어 있는 반면, 속죄일에 일하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쫓아내는 벌이 주어졌다. 안식일에 하지 말도록 규정된 모든 것들은 이 날에도 해서는 안되었다.
제 316 계명
속죄일에는 어떤 것도 먹거나 마셔서는 안된다(레 23:29).
이에 대해서는 제 313 계명의 설명을 참조하라.
제 317 계명
속죄일에는 쉬어야 한다(레 23:32).
제 297, 298, 315 계명을 참조하라.
초막절에 관한 규례(제 318 - 325 계명)
제 318 계명
초막절 첫날에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레 23:35).
초막절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에서 초막(장막)을 짓고 생활하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를 "수확의 축제"(Hag ha-Asif)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전 시대에는 이 절기는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다기 보다는 수확을 거두어들인 것을 기뻐하는 축제였다. 유대인들은 이 명절에 유월절이나 오순절 때보다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농작물을 이미 거두어 창고에 들였음으로 그들은 마음껏 기뻐하며 여드레 동안 축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절기들에 그러는 것처럼 초막절 첫날에도 일을 해서는 안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제 297, 298 계명을 참조하라.
제 319 계명
초막절에는 어떤 종류의 일을 해서도 안된다(레 23:35).
유월절이나 오순절 때처럼 초막절에도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빵을 굽는 일과 요리하는 일은 허락되었다. 더 자세한 것은 제 297, 298 계명의 설명을 참조하라.
제 320 계명
초막절 절기 동안 매일 살라 바치는 제물을 드려야 한다(레 23:36).
초막절을 지키는 동안 매일마다 살라 바치는 제물을 바쳐야 했다. 이는 속죄일이나 유월절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수기 29장은 이 규정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제 321 계명
초막절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쉬어야 한다(레 23:36).
"명절 끝 날"(Shemini Atzeres; 참조. 요 7:37)로 불려지는 초막절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초막절 절기 동안 계속 그랬던 것처럼 음식을 만드는 일과 빵을 굽는 일을 제외하고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유대 구전법은 이 날에는 어떤 일을 하지 않을 경우 큰 손실이 생길 수 있으면, 그 일은 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더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제 297, 298 계명에 대한 설명을 참조하라
제 322 계명
초막절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살라 바치는 제물을 드려야 한다(레 23:36).
다른 특별 절기들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초막절 기간 동안에 매일마다 그랬던 것처럼, 초막절 마지막 날에도 성전에서는 살라 바치는 제물을 드려야 했다.
제 323 계명
초막절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생업을 위해 일해서는 안된다(레 23:37).
제 297, 298, 321 계명을 참조하라.
제 324 계명
초막절 첫날에는 좋은 나무에서 난 열매와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나뭇가지, 갯버들을 가져와야 한다(레 23:40).
초막절 첫날에 유대인들은 네뼘 이상 되는 종려나무 가지와 세뼘 이상 되는 무성한 나무--이를 유대인들은 도금양(myrtle)으로 해석한다--와 갯버들을 오른 손에 들고, 그리고 달걀보다 작은 크기의 etrog(감귤의 일종)을 왼 손에 쥐고 사방으로 그리고 위 아래로 흔들었다. 성전에서는 매일 그렇게 하였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에트로그 열매는 아브라함에 비교되고, 종려나무는 이삭에, 도금양은 야곱에, 그리고 갯버들은 요셉에 비교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에트로그는 심장에, 종려나무는 등뼈에, 도금양은 눈에, 갯버들은 입술에 비교하기도 한다. 이 신체의 네 부분은 우리로 하여금 죄악을 범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서, 초막절에 이 네 가지 식물을 들고 흔들면서 용서를 구하는데, 이 때 사람들은 그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는 신체들을 상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트로그는 향이 좋은 열매이다. 그리고 종려나무는 열매는 있으나 향이 없다. 도금양은 좋은 향기를 풍기지만 열매가 없다. 그러나 갯버들은 열매도 없고 향도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지식은 있으나 선행이 없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지식은 없으나 선행이 있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다 없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둘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 네 가지 식물을 들고 흔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를 깨닫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이 네 가지를 각각 이스라엘을 지배하였던 네 민족, 즉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다른 해석은 이렇다. 이 네 가지 식물은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히브리인들은 장막절에 곧 다가오게 될 겨울에 비가 많이 오기를 기도한다. 그들은 이처럼 수분을 상당히 많이 필요로 하는 식물들을 손에 들고 비가 많이 오기를 기도했다는 것이다.
제 325 계명
초막절 기간에는 이레 동안 초막에서 지내야 한다(레 23:42).
초막절 기간 동안에는 한 주간 동안 밖에다 만든 초막(장막)에서 지내야 했다. 이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텐트 생활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조상이 당한 고통을 그들 자신이 직접 체험하기 위하여 집에서 지내지 않고 이 초막에서 한 주간을 지냈던 것이다. 이렇게 한 주간 동안 초막에서 지냄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을 그들의 조상들과 동일시할 수 있었으며,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초막은 높이가 20 큐빗 이상을 넘거나 10 뼘 이하가 되어서는 안되었다. 바닥 넓이는 사방이 7 뼘 이상이 되어야 했다. 또한 이 초막은 적어도 벽이 세개 이상이어야 했다. 그러나 두 나무 사이에다가 초막을 만들 때 그 나무를 벽으로 삼을 수는 있었다. 마차 위에다 이런 초막을 만들어도 무관하였다. 원칙적으로 한 주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을 이 초막 안에서 다 해야 했다. 그러나 과일과 물은 초막 밖에서 먹고 마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환자나 그를 돌보아야 하는 사람은 초막에 기거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랍비들은 어떤 기후 조건 아래에서도 초막에서 한 주간 동안 지내야 한다고 가르쳤으나, 지금 유대인들은 이 규정에 따라 장막에서 한 주간을 기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가을철의 추운 날씨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오늘날 초막절을 방 안에서 지킨다.
한편 초막절을 겨울이 가까워 오는 철에 지키도록 한 것은, 만일 초막절을 봄이나 여름에 지키라고 했다면, 유대인들에게는 초막은 더위를 피해 주는 안락한 곳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고생한 것을 체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날씨가 싸늘한 때에 밖에서 한 주간 동안 생활하게 함으로서 고생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하여 초막절을 날씨가 싸늘한 철에 지키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Jacob b. Asher). 그런가 하면, 라쉬밤(Rashbam)은 하나님께서 수확하고 난 다음에 초막절을 지키게 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수확을 하고 나서 만족감에 빠져 있을 때에, 밖에서 고생하도록 함으로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안식년에 관한 규정(제 326 - 329 계명)
제 326 - 329 계명
안식년에는 땅을 놀려야 한다(제 326 계명; 레 25:4).
안식년에는 포도원을 가꾸어서도 안된다(제 327 계명; 레 25:4).
안식년에 저절로 열린 곡식들도 거두어 드려서는 안된다(제 328 계명; 레 25:5).
안식년에는 저절로 열린 과실들도 거두어 드려서는 안된다(제 329 계명; 레 25:5).
토지를 쉬게 하여 더욱 기름지게 함으로서 더 많은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도록 하기 위하여 이 계명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고대 사회에 있어서 땅은 제일 중요한 재산이었다. 바로 그러한 땅이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며 사람은 단지 그 땅의 청지기에 지나지 않음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이 규정이 주어진 것이다. 즉 안식년은 토지 소유주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해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땅에서 경작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사고 파는 것에 관하여 엄격하였다. 율법은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레 25:23), 팔았다고 할지라도 희년이 되면 다시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하였다.
이렇게 칠 년에 한 해씩 땅을 묵히게 되면,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위기가 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명을 준수함으로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가 있었으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급해 준다는 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땅을 놀리는 동안에는 이방인들은 열심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가꾼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하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마음의 밭을 갈고 영적인 결실을 거두기 위한 일로 바쁘게 한 해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셔서 안식년을 지낼 수 있었다. 이처럼 안식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땅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주고 있다.
1세기의 유대 역사가 요셉푸스는 알렉산더 대제가 안식년에는 유대인들이 일하지 않았음으로 그들에게 세금을 매기지 않았음을 보고하고 있다. 율리우스 시저도 알렉산더처럼 유대인들에게 안식년에는 세금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오늘날도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들 가운데 이 계명을 그대로 준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규정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으며,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었었다.
희년(禧年)에 관한 규정(제 330 - 335 계명)
제 330 계명
안식년을 일곱 번 세어야 한다(레 25:8).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번 지난 다음 해를 말한다. 즉 50년째 되는 해가 희년이 된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7이라는 숫자를 주기로 하고 있다. 7일째 되는 날을 안식일로 지키며, 7년째 되는 해를 안식년으로 지킨다. 안식년을 일곱번 지난 다음 해를 희년으로 정하여 지킨다. 그들은 또한 유월절 시작 다음날부터 일곱번 안식일을 지난 다음 날을 오순절로 지킨다. 유대인들은 이처럼 7이라는 숫자를 거룩히 여겨, 한 해의 일곱째 달인 티쉬리 월을 "거룩한 달"로 여겨 그 달을 새해의 첫 달로 계산한다. 이 계명은 희년이 되기까지 햇수를 셈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유대의 산헤드린은 매해 첫 날에 첫 번째 해, 두 번째 해, 세 번째 해. . . 같은 식으로 희년이 되기까지 햇수를 셈하였다. 율법은 또한 유월절부터 오순절까지 매일마다 날을 계수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레 23:15; 참조. 제 306 계명).
제 331 계명
속죄일에는 뿔나팔을 불어야 한다(레 25:9).
50년째 되는 해 새해 첫 날, 산헤드린은 그 해가 희년임을 선포한다. 그러면 모든 히브리 종들이 자유케 된다. 그리고 열흘 후에, 즉 속죄일에 뿔나팔(shofar)을 분다. 이때 부는 나팔은 매해 신년에 부는 나팔과 같은 것이었다. 부는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법정에서만 이 나팔을 분 것이 아니라 온 백성들이 누구나 다 이 뿔나팔을 불었다. 이것은 모든 종들이 해방되고 모든 땅들이 본래의 임자에게로 돌아가는 표식이었다. 한편, 희년(히브리어로 yovel)의 어원을 "나팔"에서 찾기도 한다. 희년은 나팔을 부는 해라고 하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나팔을 부는 것 자체가 아니라 나팔을 붊으로서 종들이 자유를 얻게 된다는 데 있다고 한다(Nachmanides).
뿔나팔을 희년의 속죄일에 불도록 한 것은, 속죄일에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희년에도 모든 종들이 그들을 구속하고 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케 되어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었다.
제 332 계명
50년째 되는 해(희년)를 거룩히 여기라(레 25:10).
희년이 되면 속죄일에 먼저 산헤드린에서는 그 해를 거룩하게 하는 기도를 드리고 뿔나팔을 분다. 그러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이 사는 곳에서 뿔나팔을 불고, 그 나팔 소리는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게 된다. 그와 동시에 종들은 풀려나게 되고 땅은 본래의 임자에게로 되돌려지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서 희년이 시작되었다.
희년에는 안식년에 금지된 모든 것들이 다 금지되었다. 그러나 안식년과는 달리 땅을 단순히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본 주인에게로 돌려주어야 했다. 이런 일들은 희년 끝에 하는 것이 아니라 희년이 시작될 때에 하도록 하였다.
제 333 계명
희년에는 심거나 거두어서는 안된다(레 25:11).
희년에는 안식년과 마찬가지로 경작과 추수가 금지되었다. 희년은 일곱 번째 안식년 다음 해에 오게 된다. 따라서 이 계명을 지키자면 연속 2년동안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된다. 칠 년에 한번씩 안식년에 농사를 짓지 않는 것도 큰 일인데, 안식년과 희년, 이렇게 2년동안 계속 경작을 하지 않을 경우 생존에 큰 위협이 닥치게 된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이 때야말로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더욱 굳게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제 334 계명
희년에는 저절로 열린 포도를 거두어들여서도 안된다(레 25:11).
이것은 안식년에 관한 규정(제 329 계명)과 같다.
제 335 계명
희년에는 저절로 맺힌 열매를 필요 이상으로 거두어들여서는 안된다(참조. 레 25:11).
이 규정은 레위기 25:11에 근거한 것이긴 하나, 성서에는 이러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제 334 계명에서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많이 가꾸는 포도나무 열매에 한정해서 규정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야생 열매를 먹을 만큼만 따먹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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