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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성령설교, 권성수

by liefd 2024.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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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우리 몸에 배도록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훈련시키셨고, 이삭을 훈련시키셨고, 야곱을 훈련시키셨다. 하나님은 요셉을 훈련시키시고, 모세를 훈련시키시고, 다윗을 훈련시키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시키셨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닮는 삶의 발동이 걸리도록 생활 속에서 훈련시키신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항상 훈련된 사람들이고, 훈련되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성공하지 못한다(조이스 마이어).

목회자가 훈련 목회를 하지 않으면 수십 년 예수님을 믿어도 거의 변화되지 않는다.

제자훈련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설교자가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교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는 훈련을 받겠다는 동기를 유발한다.

 

1부 설교의 동향과 방향

구설교학기 진리의 전달에 초점을 둔다면 신설교학은 청중의 체험이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 중요하다.

연역적인 설교는 세 개의 부스러기를 간신히 아교로 퉁여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귀납법적 설교는 설교 전체를 하나로 묶을뿐 아니라 설교자와 청중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첫 장면에서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서 어느 방향으로 묶어 두고 서서히 전개하여 문제의 절정으로 올라간 다음 마지막 부분에 가서 시청자의 궁금증과 답답함을 풀어주는 식이다.

 

로리는 이야기식 설교 수성에서 5단계의 플롯을 제시했다.

 

1단계 : 아이쿠”(평정을 깨는 단계). 주인공이 뜻하지 않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2단계 : 어허”(모순을 분석하는 단계). 청중은 일이 점점 꼬이고 있네

 

3단계 :  아하”(해결의 실마리를 드러내는 단계), 청중이 아하이젠 되겠구나

 

4단계 ; 와아”(복음을 체험하는 단계), 청중은 와하 드디어 해결됐구나 한다.

 

5단계 야아”(결과를 기대하는 단계), 설교자는 문제가 해결되거 나면 얼마나 좋은 결과가 오는 지를 말한다.

 

로리, 신비의 가장자리에서 춤추는 설교, 설교 플롯의 네 단계를 제시했다.

 

갈등-혼런-급반전 -해소/ 이것은 문학의 기승전결과 비슷

 

로리는 이야기 설교는 구체적인 것들로부터 시작해서 일반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법적 설교라고 했다.

 

구설교학과 신설교학은 차이가 있다.

- 구설교학은 요점을 잡고 그것을 강조해서 전달한다. 반면에 신설교학은 흐름, 혹은 움직임을 강조한다.

 

- 구설교학은 성경의 진리를 전달하고자 하지만, 신설교학은 청중의 체험을 유발하고자 한다.

 

-구설교학은 합리적으로 설득하지만, 신설교학은 정서적으로 터치한다.

 

- 구설교학은 본문을 해석하지만, 신설교학은 본문을 전개한다.

 

- 구설교학은 본문의 의미를 살리지만, 신설교학은 본문의 장르를 살린다.

 

- 구설교학이 성경저자의 의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신설교학은 독자나 청중의 반응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15절에서 말은 로고스(logos), 큰 확신은 파토스(pathos),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된 것은 에토스(ethos)라고 할 수 있다.

 

설교는 성령의 영향을 받은 설교자가 성령의 영향을 받은 메시지를 성령의 영향을 받은 청중에게 전하여 성령으로 주님을 닮는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2부 복음

브라이언 채플은 성경이 설교자의 삶(ethos)에서 출발해서, 설교자의 마음(pathos)을 거쳐 설교자의 말(logos)을 통해 청중에게 전달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1-4 : 복음과 관련

1:6-10 복음의 결과로 데살로나가 사람들이 많은 환난 중에 복음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입

2: 1-12 바울은 많은 싸움과 고난과 모욕 중에, 심지어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복음을 전함

2:13-20 복음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3:1-21 바울은 복음을 위해 환난 당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로하고 굳게 하여 요동하지 않게 하는 일꾼이 필요하다고 했다.

4:1-12 바울은 복음은 윤리적 권면과 명령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했다.

4:13-5:11 바울은 우리는 죽은 신자들 때문에 소망없는 자들처럼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복음의 내용은 데살로니가전서보다 로마서에 더 체계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복음의 핵심은 데살로니가보다 사도행전에 더 잘 드러나 있다. 바울이 전한 복읍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다(17:2-30. 에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가 고난과 죽음을 당해야 했는가?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떤 의의가 있는가?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줍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다(4:25).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1:16-17).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믿는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1 0:14).

중요한 것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성경), 선포되는 말씀(설교)이 인격적인 말씀(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삶의 복음을 체험하고 전달해야 한다.

현시대에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힘들도록 만드는 분위기는 후현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후현대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신념이다.

 

바울 서신은 전반부에는 복음의 신학적 내용, 후반부에는 복음의 생활적 적용이 나오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순종이 믿음의 본질이다(16:26), 믿음의 순종을 위하여(헬라어 직역).

복음을 최초로 수용하는 믿음은 복음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윤리와 직결되어 있다. 믿음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수단이고, 순종을 본질적 요소로 담고 있다.

 

. 설교자는 동시에 믿음의 본질적 열매로서의 행위가 없는 죽은 복음을 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회가 너무 오랫동안 주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들어오는가 하는 것으로 교회를 평가해왔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 내내 상처받은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주님을 섬기는가? 이것으로 교회를 평가하라(찰스 로절)

 

릭 위렌은 최근에 자신의 실책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오셨다. 나는 오랫동안 눈에 가리개가 쓰였는지 이 부분을 보지 못했다."

 

성경 전체의 최고의 주제는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파한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24:27).

 

우리의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는 교회에 계속 말씀하시고, 교회를 통해 세상에 계속 말씀하신다. 내가 말하지만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설교는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다(고후 10:4).

청중에게 성경이 요구하는 사람이 되고 성경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라고만 하면 안된다. 청중으로 하여금 그렇게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1:3), 통제의 능력(147:15-18), 설득의 능력(23:28-29), 목적수행의 능력(5 5:10-11), 인간 동기를 뛰어넘는 능력(1:18)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그 속에 임재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활동하시기 때문이다(1:3, 1:3).

 

구약은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기독교인은 생활의 모든 측면과 행위와 소망을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그 모든 일의 동기이고, 능력의 원천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채플은 “...처럼 되라, 착하게 살라, 훈련 받으라 등의 설교를 치명적인 설교라고 혹평했다. 이런 부류의 설교는 복을 받기 위해서 어떤 인물이 되라. 어떤 행동을 취하라. 어떤 훈련을 받으라는 식의 설교라는 것이다.

 

성경이 성경의 인물들을 본받아야 할 모델로 제시하는 것이 사실이지만(고전11:1, 11:39), 은혜로 그런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우리의 어떤 설교도 요구만 하고 은혜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매주일 하라, 하지 말라만 전하고 할 수 있고, 하지 않을 수 있는 구원의 힘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덕설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산하게 된다.

 

설교자가 그리스도를 강조하지 않으면 청중은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사라진다.

그러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가 현실적으로 힘을 실어 주시는 주님 안에서 힘을 다해 수고하는 삶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1:29). 그것이 소원을 두고 추진하도록 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성취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2:12-13).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더 큰 은혜를 사모한다.

 

우리 나라의 10가정 중 6 가정이 싱글 가정 또는 결손 가정이다. 하루 4천 건의 낙태로 세계 2위이다. 연간 버려지는 아이들이 12천명이다. 매래 100쌍이 새로 결혼하면 이미 결혼한 사람들 중에 47쌍이 이혼한다.

 

설교에 하나님은 있는데 예수님이 없다. 도덕설교는 있는데 복음설교가 없다는 말이다. 나는 설교시간마다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가?

평소에는 윤리적인 문제를 분석한 후 회개와 도전을 강조하는 설교만 하지 않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 설교를 하지 않는가?

 

설교자가 말씀에 사로잡혀 심령과 확신과 안타까움과 열정의 불이 붙어야 한다.

본문을 성령께서 먼저 설교자의 인격과 체험에 적용하시고 그 후에 설교자를 통해 청중에게 적용하시는 것이다.

 

설교자는 설교자가 자연스럽고 드라마틱하게 전달할 수 있고 청중이 듣기에 쉽도록 구어체로 작성해야 한다. 수동태보다는 능동태, 명사보다는 동사,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 해설체 보다는 대화체, 어려운 단어보다는 단순하고 친숙한 단어를 활용해야 한다. 또한 설교자의 언어가 청중에게 어던 심리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조십스럽게 작성해야 한다.

 

설교자는 후현대주의적인 청중분석을 통해서 유모처럼 복음의 젖을 효과적으로 먹어야 한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모든 것을 얻는다. 생명을 얻고, 능력을 받고, 복을 받고, 문제 해결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답이다.

 

제임스 멕콩키는 성령님의 능력이 큰 댐의 수압과 같다고 했다. 우리가 헌신의 삶을 살면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 속으로 홍수처럼 밀려들어 온다. 맥콩키는 또한 성령님의 능력이 전차의 전선과 같아서 전차가 전설과 연결되기만 하면 전류가 흘러 들어온다고 했다.

 

3부 능력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은 말로만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지혜와 능력, 아마도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임한 것과 같다.

복음의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능력으로 임할 뿐 아니라 큰 확신으로 임했다. 능력은 복음을 설교할 때 나타나는 객관적인 결과이고, 큰 확신은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자의 주관적인 상태이다.

 

설교의 효과가 나타나게 하는 원동력은 성령의 사역이다. 말씀의 능력은 곧 성령을 통해서 나타나는 능력인 것이다(웨인 맥딜).

큰 확신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파토스에 해당하는 것이다. 파토스는 연사가 전달하고 청중이 체험하는 열정, 열기, 느낌을 포함하는 메시지의 정서적인 측면이다.

 

설교가 강의가 아니라 설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과 큰 확신의 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은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실 뿐만 아니라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신다.

고린도후서 121-22절에서 성령으로 기름부으셨고, 성령으로 도장 찍어 주셨고, 성령을 천국 유산의 보증으로 주셨다.

 

성령은 봉사를 위한 구별과 위임에서 기름이고, 인정과 안정을 위한 도장이고, 앞으로 나타날 영광스러운 유산의 보증이다.

설교자가 그리스도와 생동적 관계를 맺고 살면 마음에 확신과 감격과 감동과 감사와 열정의 불을 체험하게 된다.

바울은 유익이라는 관점에서 합리적인 논리로 호소한다(고전 6:12). 바울은 감성에도 호소했다.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고후 10-13)

 

바울의 특징적 스타일

첫째, 권위의 특징이 있다.

 

바울은 사도의 권위와 아버지의 권위, 화자의 권위를 드러냈다.

바울은 명령법도 자주 사용했다.

바울은 통상적인 설득 방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자신에게 복음을 계시하신 권위의 방식으로 전한 것이다.

 

둘째, 바울의 스타일에는 신앙 공동체라는 특징이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로 설교했다. 또한 다른 신앙 공동체에게도 편지를 보내어 공동체 의식을 고취했다.

 

셋째, 바울의 스타일에는 신학적인 특징이 있다.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복음은 사실과 일치한다는 면에서 진리이고, 논리적 일관성이 있다는 면에서도 진리이며, 그 효용가치가 영원한 생명이라는 면에서도 진리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복음의 절대 진리성을 확신시켜 주신다.

성령은 설교에 활력과 열정을 준다.

의견의 경우 사람들이 의견을 붙잡고 있지만, 확신의 경우 확신이 사람을 붙잡고 있다. 확신은 상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우리를 행동으로 몰로 가는 영적인 본능이다.

 

여호수아도 확신의 사람이었다(24:15). 삼손도 확신의 사람이었다(16:30), 롯도 확신의 사람이었고(1:17), 사무엘도 확신의 사람이었고(삼상 15:22-23), 나단도 확신의 사람이었다(삼하 12:7). 엘리야도 확신의 사람이었고(왕상 18:21), 에드더도 확신의 사람이었고(4:16), 욥도 확신의 사람이었다(2:10). 다니엘도 확신의 사람이었고(1:8),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확신의 사람이었다(3:18). 세례요한도 확신의 사람이었고(3:7; 14:4), 사도들도 확신의 사람들이었다(4:19-20; 5;29). 스데반도 확신의 사람이었다(7:51). 바울도 확신의 사람이었고(1:21),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확신의 사람이었다(1:21).

 

맥체인이 지적한대로 하나님이 복주시는 것은 큰 재능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에 대한 위대한 신앙이다. 많은 경우에 목회의 성공은 거의 전적으로 강렬한 열의, 영혼들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열정, 하나님의 일을 위한 진지한 열심에 좌우된다.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불이 붙어 있는가? 당신의 가슴 속에 불이 있는가?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직장에서 직원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태도와 경험이다.

 

스펄전은 불타는 가슴은 스스로 곧 불타는 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설교자가 전하는 주제에 진지한 관심을 느끼고 있으면 청중은 항상 그런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이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가 먼저 진리의 말씀에 사로잡혀 그것을 가지고 청중을 돕고자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야 그것이 열정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열정적 설교는 가슴의 설교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설교자들은 복음의 능력에 감전된 사람들이었다. 설교는 성령의 권위로, 불타는 열정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열정은 이렇게 진리에 대한 진지한 마음,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직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못듣고 죽으면 안된다는 시급성과도 직결되어 있다.

 

세상과 육체와 마귀는 사람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을 삼키려는 영원한 불은 세상의 어떤 화재보다 더 무섭다.

설교에는 빛과 열이 있어야 한다. 열없는 빛은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빛없는 열은 항구적인 가치가 없다.

설교는 능력과 생명과 에너지와 활력이 있어야 한다.

 

사실 설교자에게 끊임없는 열정의 원천이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불길이다.

사랑의 불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또한 청중을 가까이 해야 한다.

 

설교자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자신의 삶을 열어 두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요구에 대해서 자신의 삶을 열어 놓아야 한다.

 

칼빈은 루터와 함께 성경권위에 대한 최종확신은 교회전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의 증거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 조명은 말씀의 내용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적용은 말씀의 내용을 신자의 삶에 적용시키는 성령의 사역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거룩의 맥박이다.

거룩이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12:14)는 말은 거룩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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