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히도벨의 모략(謀略)
다윗 왕의 주변에도 역시 머리가 뛰어난 모사들이 많이 있었으며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오늘성경에 나오는 아히도벨과 후새라는 사람입니다.
'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 고 한 말씀처럼 하나님이 아히도벨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판단이 명석한 사람이었습니다(삼하 16:23).
아히도벨은 압살롬에 쫓겨 도피중에 있는 다윗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다윗을 더욱 곤궁에 빠뜨려 이길 수 있는 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아히도벨에게 압살롬이 어떻게 행하는 것이 좋은가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윗을 궁지에 빠뜨릴 음흉한 계책을 제안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다윗이 거느리던 후궁을 압살롬이 동침하게 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삼하 16:21).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그렇게 함으로써 압살롬과 다윗의 부자지간의 정을 단절시키고, 압살롬을 추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윗과 원수가 되게 하여 배신하지 못하게 하고, 그의 손녀 밧세바를 범한 다윗의 죄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을 보복하려는 심산에서 나온 야비한 방법이었습니다(삼하 11:3).
아히도벨은 그것이 인간으로써 얼마나 비윤리적이며, 근친상간을 금한 하나님의 율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는
신앙적인 문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아니한 금수와 같은 행동을 압살롬에게 제안할 만큼 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압살롬은 그 같은 아히도벨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다윗이 죄를 범했던 왕궁의 지붕에 장막을 치고 공공연하게 다윗의
후궁을 범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미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셨던 징계를 이루는 일에 아히도벨이 악하게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삼하 12:11).
이 일로 말미암아 압살롬과 다윗, 아히도벨과 다윗은 서로 다시 화합이 불가능한 극한 상황에까지 이르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히도벨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윗이 약해진 기회를 틈타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계략을 압살롬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이 압살롬을 피하여 도피하는 동안 지금쯤은 모든 보급도 끊어지고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있는 최악의 상태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히도벨은 그 기회를 틈타 자기가 직접 일만 이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지금 당장
가서 다윗을 기습을 한다면 다윗을 능히 죽일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다윗의 일행은 저절로 압살롬에게 투항할 것이라는
제안을 하였습니다(2절).
그 같은 제안에 대해서 압살롬은 물론 주변사람들이 그것을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히도벨만이 아니라 압살롬과 그를 따르는 지도자들이 얼마나 사악한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4절).
그러나 알고 보면 압살롬은 다윗이 낳은 아들이며, 아히도벨도 다윗의 오른 팔 노릇을 하던 모사요, 그에 동조하는 이스라엘 장로들도 얼마전까지 다윗을 충성스럽게 받들던 신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들은 모두 신앙적으로는 물론 인간적으로도 다윗을 배신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그렇게 극악한 방법으로 다윗을 궁지에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패한 인간의 실체이며, 믿을 수 없는 세상의 인심입니다.
2. 후새의 모략
압살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을 반역하면서 제일 먼저 포섭한 사람이 바로 모사 아히도벨이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등지고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12절).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다윗은 아히도벨이 자기를 배신하고 압살롬의 편에 붙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 문제를 놓고 무슨 보복을 계획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삼상 15:31).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히도벨 버금가는 모사 후새를 붙여 주셨습니다. 다윗은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지혜롭게 그 일을 대처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아히도벨 못지 않은 모사 후새를 압살롬의 진영에 심은 일입니다. 다윗을 충성스럽게 받드는 후새가 아히도벨의 배신을 보고 동조하는 대신 끝까지 다윗을 따르자 다윗은 후새를 압살롬에게 돌려보내면서 그곳에 남아 다윗을 위해 일해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삼하 15:34).
만일 그것이 드러나게 되면 후새는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것이 다윗을 돕는 일이라면 사양치 않고 다윗의 뜻을 따라 압살롬에게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거짓 맹세를 하여 압살롬의 모사가 되었습니다. 아히도벨이 군사 일만 이천을 거느리고 가서 다윗을 기습하자는 제안을 압살롬이 좋게 받아드리고 행동에 옮기기 전 후새에게 아히도벨의 전략을 말하면서 그에게 또 다른 새로운 전략을 물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였습니다. 후새는 명예심을 좋아하는 압살롬의 영웅심을 부추기면서 신중론을 제안하였습니다. 비록 지금 다윗이 쫓기고 있지만 다윗의 주변에는 전과가 화려한 용장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기습을 했다가는 도리어 역습을 당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백성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압살롬의 명예가 실추될 우려가 있으니 전군을 동원하고 압살롬이 선두에 서서 총 진두 지휘를 하여 일망타진을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압살롬과 그 측근은 기습작전을 주장하는 아히도벨의 안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여 총공격을 하자는 신중론을 주장하는 후새의 상반된 의견을 놓고 고심하다가 예상했던 대로 후새의 신중론을 채택하였습니다(14절). 다윗에게는 이처럼 압살롬이 아히도벨 대신 후새의 제안을 더 좋게 여기고 채택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였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아히도벨의 제안대로 기습을 했다면 다윗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후새는 즉시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통해 다윗에게 두 사람을 몰래 보내어 그 계획을 미리 알려주어 피신하도록 조치함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군사를 재정비할 기회를 벌게 되었습니다(22절).반면에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자기의 제안을 받아드리지 않고 후새의 제안을 따르는 것이 압살롬이 패배를 자초하는 것이며 그 결과 압살롬만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다윗에게 당할 비참한 미래를 예견하고 보따리를 싸들고 귀향하여 목매어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배신자의 최후인 것입니다(23절).
우리는 그와 같은 아히도벨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 배신을 하였던 가룟 유다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은 삼십을 던져 버리고 목매어 죽은 사건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인의 최후입니다.
3. 진정한 모사
오늘 성경에서 아히도벨이나 후새 모두가 두뇌가 명석한 사람들로 최고 지도자 인 왕을 보필하던 지혜자들입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1) 아히도벨은 그 지혜를 이기적인 목적으로 악한데 사용하였습니다.
압살롬으로 하여금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부모에게 불효하고, 하나님을 불신앙하고 그를 따르는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악한 왕이 되게 하는 일에 일조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히도벨은 끝내 목매어 자결하는 비참한 최후를 자초함으로 그 자신이 진정한 모사나 지혜자가 아니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후새는 다윗과 백성들을 살리는데 기여했습니다
후새는 압살롬이 득세를 할지라도 변함 없이 한 주인만을 섬기며 다윗에게 생명를 걸고 충성을 다하여 다윗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백성들을 살리는 선한 일에 큰 기여를 함으로 위기에 처한 왕과 이스라엘 왕국을 건지는 일을 하였습니다.
과연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진정한 모사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머리가 좋고 판단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좋은 조건일 수 있으나 반드시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만
말할 수 없음은 과연 그것을 어디에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 있으며,
성공이 될 수 도 있고 실패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모략은 하나님의 영광과 정의를 위해 선용되어질 때만이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혜를 가지고 악한 일에 사용을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미련한 것만도 못한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도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도전합니다. 이단자들을 보면 얼마나 성경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논리로 해석을 하는지 모릅니다. 문제는 그 결과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어느 특정인을 신격화시키는데 사용함으로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인들을 노략해 가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군들도 누구 못지 않게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초대 교회가 지도자들을 뽑을 때 보면 여러 조건 중에 하나가 바로 성령만 충만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도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찾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지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과 세상을 일을 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그 지혜를 무엇에 사용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잠 4:6).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잠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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