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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책임감으로 끝까지 승부하라(민 11:4-17).

by liefd 2024.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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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모세에게 불평과 원망을 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입니다. 척박한 광야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시니다. 하지만 그들은 감사와 기쁨 대신 오히려 과거 애굽의 생활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고집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런 백성들을 위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본문 15절에서 모세는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면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합니다. 모세는 그들의 원망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16:8).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그들이 죽는 것보다 자신이 죽는 길을 택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보다 백성을 위하는 영적 지도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불평하고 비난하고 좌절하는 그들이지만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지도자 모세는 책임을 다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태도 가운데 책임감에 대해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책임감이란 무슨 일을 하든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일을 할 때 그 사람의 재능이나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사실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책임감의 한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직장에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하고 어떤 사람이 직장에 꼭 필요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A라는 사람은 머리가 잘 돌아가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예리하게 분석하며 언제나 앞서가는데, 맡겨준 일을 하는 태도는 열정적이지 않고 자신의 한계 안에서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B라는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은 물론 직장을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고 던지며 헌신합니다. 끝까지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집니다. 당신이 사장이라면 누구에게 회사를 맡기겠습니까? 거의 B타입의 사람일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는 사람도 같습니다. 성경은 일하는 태도에 대해서 많은 말씀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을 가진 사람을 세울 때 신중하게 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일이 쉽지 않고, 일을 할 때 잘 해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칭찬과 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6:3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초대교회에 처음으로 세운 일곱 집사를 택할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을 선택하도록 하여 교회의 일을 맡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3:8-13절에 집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의 일꾼을 세우면서 정확한 기준을 세워 주었습니다. 왜 이렇게 엄격한 집사를 세우도록 했습니까? 13절에 집사의 직분을 잘한 사람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절에 하나하나 시험하여(test) 보고 세우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은 약식으로 집사의 직을 주다보니 엄격함에 서는 거리가 멀지만, 이미 집사가 된 사람이든 앞으로 집사가 될 사람은 정말 잘 준비하여 하나님 앞에서나 교회 앞에서 칭찬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받게 되는 것이 영광스러운 것임을 알고 부족한 것은 채우고 약한 것은 회복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 하나님께 아름다운 직분자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직분자를 세우면서 힘든 과정을 주는 이유는 쉽게 직분을 생각하지 않고 일을 하다가 쉽게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못하게 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쉽게 집사가 되면 교회의 일도 쉽게 생각하고 직분도 가볍게 여겨 하나님의 거룩한 직분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신의 직분에 대해 다시 아름다운 지위인가? 부끄러운 지위인가? 보다 정확하게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하나님 앞에 설 때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왜 집사나 직분자에 대한 말씀들이 초대교회부터 지역교회인 서신서의 교회들과 계시록의 교회까지 강조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책임 때문입니다. 직분이란 책임이 주어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나 사역자로 교회의 일을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은 오늘 말씀의 제목을 평생 기억하며 매일 다짐하시길 바랍니다. ‘책임감으로 끝까지 승부한다.’ 나의 장점은 책임감이라고 자랑할 수 있을 때까지 체질화 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책임감이란 무엇입니까?

 

1. 짐을 지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상태를 하나님께 아뢰면서 모든 백성을 자신에게 맡겨준 짐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짐을 지게 하신 하나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책임감이란 짐을 지는 마음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일꾼들에게 했던 말이 바로 서로 짐을 지는 책임감 신앙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교회의 일은 짐을 지는 일들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좀 더 열심을 다해 하려고 하면 자신이 져야할 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에 보이게 되고 그 짐들을 자신이 다 질 수 없음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내가 할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마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 할 것이 별로 없고 밤을 새우며 기도할 정도로 기도내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하루 밤을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달래려고 작정을 하며 기도하고 금식을 하며 매달리는 것입니다. 직분자이지만 깊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일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의 짐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세우면서 교회가 어떤 곳인가를 알고 교회의 사람들은 서로 무엇을 해야 교회 생활을 잘하는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져야할 짐에 대해서 교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을 책망하실 때 내용이 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누가복음 11: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교회의 사역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져야할 짐을 자신이 지는 책임감이 있어야합니다. 특히 직분에 대한 책임, 맡겨주신 일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것이 어떤 짐이든 자신이 지려고 하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피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면 아무런 능력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 하나님은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책임감은 짐을 지는 것입니다.

 

2. 자신이 대속해서 감당하는 것입니다.

 

책임감이란 어떤 것이든 자신이 먼저 감당하려는 의지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모세의 위대함은 대속적 은혜를 구한 지도자였습니다. 즉시 자신을 죽여 달라고 애원하지만 그 깊은 뜻은 백성을 살리기 위한 부르짖음 이었습니다.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대속적 은혜입니다. 이것은 극도의 책임감을 말합니다. 대신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는 모습입니다. 교회의 일을 할 때 모세와 같은 영적 지도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백성들이 당하는 아픔을 대신 자신이 지고 가는 모세처럼 교회에서 어려움과 아픔이 있을 때 먼저 아픔과 고통을 자신이 감당하려고 해야 합니다. 교회의 일에 열심과 열정이 없는 이유는 책임을 지겠다는 적극적 태도보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소극적 태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먼저 바쳐 사람을 살리기 위해 책임을 지신 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속의 은혜를 몸소 보여주신 분입니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교회의 일을 하는 직분자들은 먼저 예수님을 닮아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이 밀알이 되는 신앙(12: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책임감이란 거룩한 희생이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인간관계나 사역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원인을 추적해 보면 서로가 희생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희생 되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느 것도 다 회복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희생보다 희생을 피하고 싶은 충동이 훨씬 높습니다. 상대방이 희생하기를 기대하지 자신이 희생을 먼저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희생하려고 하면 문제가 쉽게 풀립니다. 희생하면 자유하게 됩니다. 희생이 희망을 줍니다. 싸움이 일어나고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서로의 희생보다 이기려고 하는 경쟁심, 지지 않으려는 자만심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태도를 바꾸어보십시오.

 

싸우려고 하기보다 사랑을 하십시오. 이기려고 하기보다 지려고 하십시오.

예수님은 희생으로 책임을 다하셨습니다. 희생이 책임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함께 한 동역자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로마서 16:3-4

 

3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희생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목까지도 내놓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책임감이란 자신이 더욱 감당하려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3. 지도자의 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지도자의 의식을 갖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짐을 지고 죽기를 각오하며 책임을 다하려고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도자가 될 만한 장로와 지도자 70명을 모아 회막에 함께 서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책임지는 지도자를 원하셨습니다. 70인의 지도자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을 자신이 책임을 다하는 모세를 돕는 지도자를 세우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이런 책임감이 강한 영적 지도자입니다.

사역자란 영적 지도자로서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행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성경은 청지기라고 합니다. 청지기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옳지 않은 청지기에 대해 누가복음 16:1-1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10절의 말씀인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라는 말씀은 청지기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것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청지기입니다.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일은 이런 청지기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하길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고 하면서 선한 청지기로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선한 청지기가 많아야합니다.

선한 청지기 역할을 감당하는 지도자가 있으면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어떤 것을 맡겨도 이루어냅니다. 마치 모세의 시대에 70인의 영적지도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서 행하며 본을 보여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한다면 우리 교회도 얼마든지 주의 일을 잘 감당하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책임감이란 영적지도자의 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좋은 성도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지도자 즉 영적리더가 되십시오. 책임은 리더가 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신이 영적으로 권한을 받은 리더임을 확신하고 이제부터 교회의 일을 할 때 먼저 책임을 지는 태도로 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리고 주의 몸된 교회의 일을 위하여 직분을 맡으신 사역자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이 가장 마음속에 찔림으로 남습니까?

 

그동안 직분자로서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혹시 책임을 지는 것보다 책임을 회피하고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닙니까?

다시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서는 자신을 생각하며 결심하십시오.

 

책임감이란,

 

첫째, 자신이 져야할 짐을 지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이 대속적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신이 지도자의 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교회는 일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모세나 바울처럼 하나님 편에서 일하는 직분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나부터 직분자나 일꾼이나 청지기로서 치유, 회복, 변화를 통하여 진정한 책임감을 감당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아름다운 지위로 주 앞에서 인정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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