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원망과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도가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먼저 범하기 쉬운 죄가 원망 불평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무서운 죄가 원망 불평의 죄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하게 된 가장 큰 죄가 원망 불평의 죄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성경에서 말하는 원망은 어떤 것일까요? 단순히 힘들고 어렵다고 블평하는 것일까요? 몸이 아파서 마음에 안든다고 짜증도 내면 안되는 것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원망이란 하나님께서 베울어 주신 은혜를 뒤집는 것을 말합니다. 상황이 어렵고 힘들다고 단순히 불평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멸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신앙의 초보일 때에는 원망 불평해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광야로 들어오자 원망부터 하기 시작합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부터 17장 16절까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라의 사건에서부터 르비딤 사건까지 그 여정을 보면 그들은 매번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에 그들에게 별다른 징계를 내리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간구에 응답하시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기존 신자가 원망 불평했을 때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1년 2개월이 지난 후에 제일 먼저 징계를 받은 사건이 바로 원망 불평의 죄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출20-FP27장)의 가르침을 받은 후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원망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에 사르게 하시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했더니 기분 나쁘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불로 징계하십니다.
물론 교회 생활하다 마음 상할 일이 많이 있고 그로 인해 원망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망은 전염병과 같아서 나 한 사람의 원망이 교회 전체를 원망의 도가니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이후에는 원망을 하면 하나님께서 벌하십니다. 물론 신약시대에는 그때그때 죽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소생하지 못하고 파리해져 갑니다.
원망 불평하는 사람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민수기 13장 25절에서 33절까지에 이스라엘 열두 정탐군들의 보고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13장 27절에 보면 가나안 땅에 대한 좋은 평가를 보고하게 됩니다.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라“ 그런데 민수기 13장 32절에서는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기 시작합니다. 이와같이 원망 불평하는 사람은 좋은 부분까지도 나쁘게 평가하게 됩니다.
원망과 불평은 순식간에 전염됩니다.
이러한 보고를 듣고 백성들은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을까요? 민수기 14장 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민수기 14장 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열 두 정탐꾼 보고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1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만 광야에서 멸망하게 됩니다.
원망과 불평은 언제나 책임을 전가시키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됩니다. 또한 원망과 불평은 언제나 비교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할 때 그들은 지금 광야의 생활과 애굽에서 생활을 비교합니다. 그들은 지금 광야에서 누리는 축복은 까막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시간과 자유를 빼앗겼던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다만 애굽에서 좋았던 것, 주로 먹고 마시는 그런 몇 가지를 떠올리면서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말합니다.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잊어버리고 당장에 불편한 것 때문에 원망하지 마십시오.
방법의 차이 때문에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마십시오.
민수기 21장 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을 돌아가는 것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여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서로의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마십시오. 서로 잘해보려고 하다가 마음이 갈라지고 불편하게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방법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마음이 상해서는 안됩니다.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원망과 불평하면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저것 연결시켜서 원망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이스라엘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는데 그들이 다른 문제까지도 꺼집어 내면서 원망 불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민수기 21장 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원망 불평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것 저것 꺼집어 내서 연결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 불평하는 것을 보면 항상 현재 생활에 불편한 것 가지고 나옵니다. 또한 왜 우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냐고 투정합니다. 차라리 여기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당장 불편한 현실 문제로 인해 불만을 토로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평하는 것을 다 듣고 계시고 어떠한 마음을 가지실까?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합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민 14장 27절). 그때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게 하십니다.
민수기 21장 7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과 불평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그들은 모세에게 당신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방법을 찾아보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블뱀은 바라보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T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원망과 불평은 불순종 때문에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취하고 하셨을 때 그대로 순종하면 되는데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을 때 원망 불평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절대로 불평하는 일이 없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감당한 후에도 나는 무익한 종이다 마땅히 내가 해야 할 것을 한 것뿐이다. 누가 칭찬을 하거나 격려하면 오히려 부끄러워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어떠한 경우에도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마십시오. 신약시대에는 원망과 불평을 한다고 해서 그때그때 죽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침체됩니다. 원망과 불평하면 믿음이 자라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면 축복을 받기는커녕 저주를 받게 됩니다. 시편 기자와 같이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122편 3-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되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원망 불평하지 마십시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민수기 14장 2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원망과 불평은 창조의 목적과는 배치되는 무서운 죄입니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인데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영광을 폐하는 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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