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성지 답사에 갔을 때 저는 갈멜산 꼭대기 위에 세워진 동상의 모양을 한장 동안 뚫어지게 바라 보았습니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들을 칼로 죽이고 발로 밟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저 아래에는 지중해의 시퍼런 물이 굽이쳐 흐르고 있습니다. 지중해를 굽어 보고 있는 갈멜산 꼭대기 에서 엘리야는 아합왕과 바알 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들에게 대결을 벌이는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들은 누가 참 하나님인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그렇게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엘리야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내었다고 하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위험부담이 상당히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엘리야 가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엘리야는 간이 큰 남자였기 때문에 그럴까요? 이 시합에 많은 돈이 걸려 있기 때문에 그럴까요? 자신이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고 싶어서 그럴까요?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면 불을 내려 주시겠다고 계시를 받아서 그럴까요?.
대결의 방법을 선택한 후 엘리야는 당신들이 먼저 하시오"고 말했습니다. 송아지 한 마리를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25절), 그들이 오전 내내 그들이 제단을 돌면서 우상 숭배하는 춤을 공연했으면 한 목소리로 "바알이시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라는 주문을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태양이 가장 작렬할 때 즉 그들의 신의 능력이 절정에 달해 있다고 생각되는 그때에 엘리야는 바알을 조롱했습니다.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 다. 그러나 그들이 숭배하는 믿음의 대상은 잘못되었습니다. 당신의 믿음의 대상은 믿을만 합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응답도 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온갖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그들이 완전히 실패한 후 이제는 진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일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30절)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아무도 나중에 속임수를 썼다고 공격하지 못하도록 공개적으로 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 가운데 하나도 모든 사람이 지켜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사역을 공개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도 많은 사람 들이 보는 앞에서 큰소리로 부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할 정도록 속삭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잘 안될지도 모르니까 마음으로 그렇게 외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큰소리로 나사로 나오라고 소리쳤던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나사로의 이름을 지정한 것은 다른 사람도 무덤에서 나올까봐 그렸다고 합니다. 병정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했을 때에도 왜 내가 성전에 있을 때 잡지 아니 하더니 비밀리에 체포하느냐가 꾸짖었던 것입니다(마 14:48-49), 기독교는 모든 일들을 공개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단들은 비밀리에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근근히 지켜 나갈 뿐 다른 사람에게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백성들이 그의 주위에 모였을 때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각지과에서 사람들을 뽑아 자기를 도와 하나님께 드릴 제단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신앙 안에서 그들이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회개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준비시켰습니다. 그 다음에 나무를 정렬하고 희생으로 드릴 소의 각을 떠서 그것들을 제단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다른 명령을 내렸습니다. 첫째로 통 넷에 물을 가져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하기 전에 무너진 단을 수축한 것과 같이 우리 마음 가운데 최악으로 인해 무너지고 파괴된 부분을 찾아내어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의 치료를 요청해야 합니다.
당시에는 3년동안 가뭄이 있었고 물을 구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산길로 내려가서 통에 바닷물을 채운 다음 다시 산위로 올라와서 물을 쏟아 부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끝냈을 때 다시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숨을 헐 먹거리며 올라와서는 다시 제단을 물로 채웠습니다. 세 번 그리하라고 엘리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가 이렇게 열두통의 물을 제단에 부은 것은 사람들이 지피는 불로는 도무지 안되고 하나님의 기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을 구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사소한 일에 대해서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안전한 여행이 되어 주시기를, 아들이 감기에 이겨낼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밤잠을 잘 살 수 있도록도와 주시기를 등등. 그러나 우리는 큰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일어나리라고 알고 있는 부분에 한해서 기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기적같은 일을 이루어주 시도록 기도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니다. 매일 똑같은 것을 기도하는 일에 지겨워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당신은 믿고 있습니까?
이어서 엘리야는 다시 공개적으로 하나님게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들이키게 하는 것을 알게 하소서(36-37절), 엘리야는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알리기를 그토록 원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그러한 일에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때로는 공개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내었습니까?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량의 물을 핥은지라. 와! 그들은 두려워하고 놀라워했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라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예기치 못한 변화인가?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 기도했던 술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제단 위에 하나님의 불이 떨어진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엘리야가 그러한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오늘날도 불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줄 믿 으십니까?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님의 소원을 품는 기도(사무엘상 1:9-18), 김덕선 목사 (1) | 2026.03.17 |
|---|---|
| 응답의 키워드가 무엇인가?(열왕기상 18:36), 김덕선 목사 (3) | 2026.03.14 |
| 찬양은 예배다(열왕기상 8:54-61), 김덕선 목사 (0) | 2026.03.14 |
| 십자가에서 죽은 건 나인가, 예수님인가?(갈 2:20), 깁덕선 목사 (2) | 2026.03.14 |
| 시련을 당할 때 기뻐하는 진짜 비밀이 있다(야고보서 1:2-4) (0) | 2026.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