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가 어떻습니까? 마음의 날씨를 말합니다. 맑음, 흐림, 비, 혹시 잠자없습니까? 생각만 하면 자꾸 눈물이 나는 분 없습니까?
한국 사람들의 이름 가운데는 끝이 oo자로 끝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신자와 명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뭐가 붙는 가에 따라서 의미가 확 달라집니다. 신자라는 이름 앞에 배자가 붙으면 뭐가 될까요? 배신자입니다. 명자 앞에 사자가 붙으면 뭐가 될까요? 사명자입니다. 당신은 어떤 신자입니까? 배신자입니까, 사명자입니까? 이번 부흥회를 통해서 사명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명자란 목회자나 선교사만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쓰임 받는 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 행복해집니까? 불행해집니까? 그대로입니까? 당신은 신앙생활 하면서 표정이 밝아졌습니까,아니면 어두워졌습니다. 교회 다니고 나서 부부 사이가 좋아졌습니까, 나빠졌습니까? 부모들은 자녀들을 따뜻하게 대합니까? 사납게 대합니까? 자녀들이 교회에 나가면 부담스럽습니까? 행복합니까? 집에서 키우는 애견이 주인이 교회 갔다 오면 변했다고 느낄까요? 자신에게 화풀이한다고 느낄까요? 이번 일일부흥회를 통해서 개인과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행복해지기를 축원합니다. 행복의 삼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흘러 보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경건한 가정의 아내였지만 눈물로 시간을 보내는 한 여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남편 엘가나는 에브라임 사람으로 레위 지파의 후손입니다(대상 6:34-38). 레위 지파는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을 돕는 역할을 하었습니다. 엘가나는 신앙이 돈독한 것 같은데 아내가 둘이었습니다. 당시 사사 시대가 얼마나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암울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엘가나의 두 아내 가운데 한 사람은 한나요, 한 사람은 브닌나입니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에 제사장은 누구인지 아십니까? 엘리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혼란한 사사 시대 말기에 대제사장직과 사사직을 겸직할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 실패함으로써 방탕한 두 아들로 인해 불운한 말년을 맞게 됩니다(삼상 2:27-36). 엘리는 노쇠한 관계로 제사장적 업무를 자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주로 일임하였습니다. 그들은 불량자들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가로채는 심각한 죄를 범했습니다. 이로 인해 결국 엘리 가문은 몰락하게 됩니다.
1.당신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십니까?
4절에 의하면 제사를 드리는 날에 엘가나는 제물의 분깃을 아내와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물의 분깃을 두 배를 줄 만큼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한나가 자녀를 갖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5, 6절에 보면 두번씩이나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브닌나는 남편이 자식이 없는 한나를 더 사랑하고 재물의 분깃을 자기보다 두 배가 주는 것을 보고 한나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완전 뒤집어진 것입니다. 7절에 보면 브닌나는 한나를 자극하여 심히 격분하게 하고 괴롭혔습니다. 한나의 입장에서 볼 때 브닌나는 한 집에 사는 적수, 원수였습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다는 것 때문에 너무 불행하였고,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에게 따듯하게 위로했습니다. 8절에 보면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퍼하느냐고 안스러워 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소? 한나는 남편의 위로와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자녀가 없다는 슬픔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다가 생기는 갈등도 아니고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 마다 이런 일이 생겼기 때문에 힘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문제 때문에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이고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될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이 무너지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곤 합니다. 그래서 한나는 가족들과의 식사가 마치면 곧장 기도하러 가기 위해 일어서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가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2.당신은 지금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십니까?
지금 한나는 너무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 통곡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10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서럽고 원통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는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한나는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 기도를 드립니다. 11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한나의 기도가 탄식의 기도에서 소원을 위한 기도로 바뀌게 됩니다. 자신의 소원을 위한 기도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소원을 위한 기도로만 끝나서는 안됩니다. 내 소원을 품는 기도와 하나님의 소원을 품는 기도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요? 11절 하반절입니다.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을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바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전체를 거룩한 도구로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다. 당시에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자녀를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그래서 많은 자녀들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암울한 시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누군가를 찾고 계셨는데 한나가 바로 그런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한나는 처음에는 자신의 문제에 사로잡혀 탄식하며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자식만 주시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자식을 주시면 평생을 하나님께 쓰임 받는 도구로 드리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한나는 문제에서 시작하여 소원으로 사명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응답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 버립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축원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기도할 때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술 취한 줄로 알고 한나를 책망합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대부분 큰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상황에서 한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한 엘리는 한나에게 네가 언제까지 취해 있겠느냐? 이제 술을 끊으라? 소리쳤던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책망을 들었던 한나는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누가 그랬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 시험 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엘리 제사장 앞에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15절에 의하면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보지 마옵소서.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통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심정을 통하는 기도란 자신의 마음을 쏟아붓는 기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온전히 맡기는 기도를 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슬프고 힘들 때 어떤 기도를 해오셨습니까? 자신 앞에서 한탄하고 푸념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까?그럼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기도 후에 성질을 부리고 다투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심정을 토해 놓는 기도를 해보셨습니까?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내 심정을 통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천정에 부딪혀서 내려오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한나와 같이 기가 막힌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다 토해 놓으십시오. 주님 제가 할 하고 싶었는데 잘 할 수 있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은 절박한 상황에 놓인 분들이 계십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예수님처러 하나님 앞에서 절규하며 기도하십시오,
엘리 제사장이 한나의 속사정을 듣고 한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대해서 한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당신이 한나의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말했을까요? 지금까지 자녀가 없었는데 괜찮습니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할 때 그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한나는 가서 식사를 하고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습니다(18절).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고 나서도 여전히 수색이 가득하지 않습니까? 수색으로 가는 버스는 타지 말아야 합니다. 우거지 국(우거지상)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찬송가 486장을 좋아합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이 세상에 죄악 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후렴은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후렴으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여전히 수심이 가득하고 지쳐 있고 죽을상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후렴으로 넘어가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 에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은혜를 누리고 평안한 안식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역시 한나와 같이 하나님께 마음을 통하는 기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 다시는 수색이 없는 기도를 드리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은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는 아멘하지만 눈만 뜨면 노멘으로 바뀌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벨을 누르고 현관문에 들어서는 순간 그 집 전체가 한약 냄새로 코를 찔렀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그분의 연약한 부분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멘을 얼마나 잘 하는지 불안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다과를 나누면서 그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사가 하는 말이 이 병은 절대로 고치지 못한데요? 완전히 초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아프려고 작정한 것 같았습니다. 눈만 감으면 아멘인데 눈을 뜨면 라멘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품는 기도, 하나님 앞에 심정을 통하는 기도, 약속을 믿고 마음의 평안이 있는 기도는 응답을 받게 됩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한나를 생각하신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만 생각해 주시고 기억해 주시면 자녀가 태어날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질병에서 고침받을 것입니다. 막혔던 부분이 뚫어질 것입니다. 기도하여 태어난 자녀가 바로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란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나갸 얻은 사무엘을 평생에 하나님 전에 바치겠다고 한 기도의 약속을 지켰을까요?
21절에 보면 엘가나와 온 식구가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한나가 사무엘을 평생 하나님 전에 바치겠다고 서원하였다 할지라도(11절), 그녀의 남편 엘가나는 그 서원을 무효화시킬 수도 있었습니다(민 30:6-8). 그러나 엘가나는 그 서원을 기꺼이 인정하였고, 사무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서원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서원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서원한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에 대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데 반해, 우리는 그 약속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상황에 따라서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3. 당신은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계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소원을 품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목회자나 선교사만 하나님께서 소원을 두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소원을 두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당신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직책이 무엇입니까? 공직에 있습니까? 개인 사업을 합니까? 전업 주부인가요? 그 일과 직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에서 38년 동안이나 연못가에 누워 있던 중풍병자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이 중풍병자는 38년동안의 긴 병치레를 하면서 낫고자 하는 마음 자체를 포기했을 것입니다.이것은 무력화된 학습경험입니다. 나는 아무래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38년 된 환자 앞에서 네가 낫고자 하는 소원이 아직도 있느냐?고 도전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낫고자 하는 소원을 불일 듯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의 고질병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상처를 품지 말고 소망을 품으면 좋겠습니다. 어렸을 때 어미닭이 알을 품으면 병아리가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주님은 거룩한 소원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품은 뜻이 주의 뜻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거룩한 소원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소원을 품고 사는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행할 힘을 주십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시 37:4). 우리는 믿음이 신실한 사람, 거룩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의 힘이 되신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이 당신에게 힘과 능력이 되어 주셔서 그 소원을 행하게 하십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동남 아시아에 선교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수년 전에 말레지아에 지구상에 원시인에 가장 가까운 생활을 하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가게도 없고 남자는 사냥을 다니고 여자는 창살로 바다의 고기를 잡아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한 집에 자녀들을 평균 10명 이상 낳는데 영양실조로 6, 7명은 죽는다고 했습니다.
선교사님을 따라 우리가 준비한 과자를 가지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였습니다. 어느 한 집에 갔는데 선교사님이 그 집에 엄마의 아름을 불렀는데 안에서 대답이 없었습니다. 선교사님이 갈대로 엮은 문을 걷었을 때 그 집의 아이가 엄마의 젖을 빨다가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이 글썽하였습니다. 선교사님을 통해 사연을 들어보니 젖이 나오지 않아 아이가 영양실조로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울컥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한 열흘이 지났는데도 그 어머니의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고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겁니다.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그 어머니의 눈물이 맺힌 눈망울이 계속 떠오르는데 제게 주시는 소원이 있습니까?
그때 주님이 제게 이런 마음의 감동을 주셨습니다. ‘죽은 아이를 품에 앉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느냐. 이곳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울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란다.’
그때부터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땅 내려다 보시면서 그곳에 꼭 살아나야 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그곳에 교회를 세우게 하소서. 그 래서 동남 아시아 지역에 네 교회를 세우게 되고 1500명 이상의 영혼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한참 후에 그 선교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죽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할 수 없을 까요? 목사님 아이들이 더러운 물에서 놀다가 세균 감염이 되어서 죽어가는데 플라스틱으로 된 놀이기구 구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직회 때 그 이야기를 드렸더니 모 권사님이 제게 소원을 주셔서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이루어드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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