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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응답의 키워드가 무엇인가?(열왕기상 18:36),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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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본문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갈멜산에서 제단의 불이 떨어지는 내기를 하자고 도전합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 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비가 오지 않은 기간은 36개월입니다(4:25; 5:17). 어떻게 된 것일까요?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집에서 체류하기 시작한 때부터 3년을 가리킬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엘리아야 너는 아합에게 가서 비를 지면에 내리겠다고 선언하라(1). 그때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기근이 극심했습니다. 당시에 사마리아는 아합에 의해 소위 자연의 풍요로움과 생산의 풍부를 보장한다는 바알 신을 섬기는 중심지입니다(16:29-33). 그런데 바로 그곳이 극심한 기근으로 허덕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상 숭배의 죄악이 극심하면 나라에 기근이 찾아옵니다. 아합 왕은 오늘도 물이 있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힘들어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말과 노새만 염려합니다(5).

 

열왕기상 1816절에 보면 엘리야가 오바댜를 통해 아합 왕을 만나러 갑니다. 아합 왕이 엘리야를 보는 순간 그를 어떻게 부르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아합 왕이 엘리야에게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열왕기상 171절에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멩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겠다고 선포한 이후에 36개월 동안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는 엘리야가 아닌 아합 왕 자신입니다(18).

 

그러나 아합 왕의 독설에 대해 엘리야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 아버지의 집입니다. 아합의 부친 오므리는 가증한 우상 숭배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켰습니다(16:25, 26, 30-33). 아합 왕은 바알 숭배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던 것입니다. 아합 왕의 우상 숭배를 부추겼던 사람은 다름 아닌 왕후 이세벨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당시 왕비의 식탁에서 850명이나 되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함께 식사할 정도입니다.

 

그동안 극심한 고난으로 이스라엘이 괴로움을 당했던 이유는 당신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바알들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아합 왕은 이스라엘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엘리야 때문이라고 마녀사냥을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당신의 가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바알 신, 곧 돈에 대해 너무 많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당당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 자신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남을 쳐다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버리면 남의 허물에 민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 다른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가득채웁니다.

 

왕이시여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람을 보내어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들 400명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오게 해주십시오. 아합 왕이 850명의 선지자들을 갈멜산에 모으게 됩니다. 그 주위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폭탄선언을 합니다. 21절입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엘리야는 그들에게 이제는 하나님을 택하든지, 돈과 쾌락을 따르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촉구합니다. 더 이상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거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을 택하고, 세상에 나가서는 돈과 쾌락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이중적인 잣대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머뭇거리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알지만 다른 것에 미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갈 길이 막막하여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까?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자넷 로는 그의 저서 빌게이츠 미래를 바꾸는 기술에서 사람들이 먼저 변화를 원하지 않고는 결코 변화는 찾아올 수 없다고 합니다. 내 삶 속에서 허물어져 가는 것이 무엇인지, 기도하면서 새롭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엘리야의 분명한 결단에 대해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백성들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느냐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항변이 아닐까요? 신앙은 내가 알아서 할껀데 이래나 저래라 하지 말라는 반응이 아닐까요? 믿음의 원칙을 각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응답의 첫 번째 키워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고 축복을 받는 그 자체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는 450명입니다. 송아지 두 마리를 준비해서 가져다 주십시오. 한 마리는 바알 선지자들을 위하여 다른 한 마리를 나를 위해서입니다. 각각 송아지 한 마리를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놓고 불은 붙이지 마십시오. 각자의 신들을 불러서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랬더니 백성들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습니다. 방금 하나님을 택하든지, 바알을 택하든지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했을 때는 가만히 있던 그들이 이 말에 대해서는 옳다고 반응합니다. 바알은 자연력을 지배하는 신이자 태양과 불의 신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에게 너희가 숫자가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서 너희 신을 이름을 부르라고 합니다. 그들이 오전 내내 바알이여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부르짖지만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도 없습니다. 그들이 쌓은 제단 주위에 뛰놀았지만 반응이 없습니다. 정오가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바알 신이 지금 묵상하고 있는지, 잠깐 나갔는지, 취침 중이면 깨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바알 선지자들이 큰 소리로 바알 신을 찾고 규례를 따라 칼과 창으로 몸을 상하여 피를 흘립니다. 그들은 미친 듯이 춤을 추고 떠들었지만 저녁 소제 드릴 시간이 되도독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도 없고 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응답의 두 번째 키워드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내게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그들이 엘리야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합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열 두개의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제단을 쌓습니다. 불이 떨어지기에 앞서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우리가 주일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산만했던 주의 환경을 정리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필요합니다. 응답을 위한 키워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내려 놓은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열 두개의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두 세아, 15리터 용량을 채울만한 도랑을 만듭니다.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습니다. 엘리야는 소제를 드립니다. 당시에 소제를 드리는 시간은 오늘날 오후 3시 쯤(유대력의 9)이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희생 제물이 아닌 떡과 과자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소제는 하루을 하나님께 맡기는 의미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혹시 낮 동안 열기 때문에 나무에 불이 붙었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물을 세 번씩이나 부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자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믿음의 증거를 확보하려면 기도가 필요합니다. 저녁 소제 드릴 시간에 선지자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엘리야는 과거에도 살아계시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응답의 세 번째는 키워드는 기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정말 믿고 기도하십니까?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습관적으로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꼭 붙잡아야 할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8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엘리야의 기도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을 나타내기 원합니다. 둘째는 내가 주의 종인 것과 셋째는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리게 해주옵소서. 우리는 기도할 때 누구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은 지금 누구의 종입니까? 세상의 종입니까? 하나님의 종입니까? 당신은 지금 누구의 말을 따라 행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엘리야가 이 세 가지를 위해 기도하면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는 분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응답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기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량의 물을 핥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들은 신앙 고백에 불과할 뿐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습니다. 응답의 키워드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응답을 받은 후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응답 받은 후에 우리는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는 기회로 삼기 쉽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나를 많이 생각하기보다는 자기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업적은 우리를 고상하게 만들어주지 못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므로 우리의 업적을 고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메이스터 에크하르트, 일과 존재 중).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고 문제가 많은 것처럼 보여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압니다. 어제 오후에 천둥이 치면서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저도 울었습니다.  천둥치는 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음성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번개를 동반한 빛을 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나타나는 기회로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주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제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종인 것을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입증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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