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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빛이 있으라(창세기 1:2-3),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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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그동안 창세기 1장은 창조에 관해 다루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창조의 순서에 대해 머무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첫째 날에는 빛이 창조되었고, 둘째날에는 궁창이, 셋째날에는 바다,, 식물이, 넷 날에는 , , 별이, 다섯째 날에는 조류와, 어류, 여섯째 날에는 동물과 사람이 각각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물론 창조의 순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창조의 주체와 창조의 원리에 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가운데 창조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창조의 필요성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1. 빛이 있으라고 하셨을까요?(2, 창조의 필요성)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있어서 삼일간은 혼돈의 상태에서 점차적으로 질서를 잡아 가셨습니다. 후의 삼일간은 공허한 상태에서 점차 필요한 것을 채워 나가셨읍니다. 하나님은 혼돈(카오스)으로부터 질서(코스모스) 만드셨습니다.

 

4:23절에도 보면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혼돈'은 순서가 뒤바뀌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의 외적인 상태는 질서가 잡혀 있는 같은데, 마디로 스케줄이 잡혀 있는 같은데 내적인 상태는 너무나 정리가 안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내적인 상태가 불안하기 때문에 외적으로 완벽한 스케쥴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우리 자신을 다시 정리해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여기에 어떻게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가? 나는 그곳에 어떻게 갈수 있는가? 또한 혼돈은 터전이 흔들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자신의 생애를 어떠한 터전 위에 세우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이는 건강의 터전 외에 자신을 세워 나갑니다. 건강에 대해서 신경을 매우 씁니다. 건강 다이제스트를 구독합니다. 건강에 좋다고 하는 것은 먹으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돈의 터전 위에, 어떤 이는 권력의 터전 외에, 어떤 이는 자식의 터전 위에, 어떤 이는 인기의 터전 위에 자신을 세우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받아야 모든 혼돈 상태에서 질서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공허'한 상태란 비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아무 것도 채워 있지 않은 상태, 필요한 것이 없는 상태, 마음의 진공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노이로제 증상은 공허감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여 갈팡질팡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4:17절에 말씀과 같이 너희는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든 필요없다. 아무 것도 아니다는 생각온 대개 신앙이 좋은 같지만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받으면 모든 부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주위를 둘러볼 우리는 슬퍼집니다. 자신을 들여다 우리는 우울해 집니다.그러나 하나님을 바라 우리는 은총을 입게 됩니다.

 

 2. 어떻게 빛이 있게 되었나요? (3, 창조의 원리와 창조의 주체)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조의 주체는 하나님이요, 창조의 근거는 이르시되요, 창조의 효과는 그대로 되니라.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습니다. 말씀의 권위는 능력의 권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말은 만물을 복종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은 생명력이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이사야 14:15절에도 이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말은 밍령과 복종과 행위를 나타냅니다(가라사대 게임).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된다고 하는 확신이 얼마나 있는가 그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순간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내가 믿었다고 하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적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복음에 대항하는 면역주사를 맞았습니다. 말씀을 생각대로 판단하고 항상 글쎄요 하는 주를 달았던 순간을 회개해야 합니다. 말씀은 그렇지만 그렇게 될까요? 글쎄요? 자기 기분에 하루에 수십번씩 변하는 그런 믿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없습니다.

 

믿음은 가지로 분류할 있습니다.

 

첫째, 남의 믿음이란 남들이 하는 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자기 믿음은 방식대로 주님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마가복음 누가복음 외에 내가 복음이란 책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믿음의 다른 유형은 하나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믿음을 말합니다. 말씀을 붙드는 믿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너무 말로 때우는 경향이 많습니다. 너무 관념적입니다. 성경은 장난이 아니라 삶의 변화, 생명의 차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제까지 삶을 살다가 오늘은 개념화하곤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은 개념의 차이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입니다. 우리는 흔히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서 관점의 차이로 규정해 버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그런 차원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또한 히브리어 동사(하야) 무시간적입니다. 현재 과거 미래가 동시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현재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히브리어 동사는 존재, 생성, 작용, 계속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기 때문에 빛이 존재하게 되었고 빛이 다양하게 생성되었고, 뿐만아니라 빛의 역할과 작용이 나타났고 계속해서 빛이 비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말씀이 오늘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6: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했기 때문에 믿음 가운데 기도하면 무슨 병이든 낫습니다. 믿고 구하는 것도 그대로 된다고 했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대하는 차원에 문제가 있습니다. 해석차원, 이해차원, 비판차원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적용차온, 행동차온 변화차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신앙의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저지를 있는 가장 잘못 중에 하나는 하나님까지 우리에게 날마다 새로운 것을 주시리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 역시 절대로 변화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불신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신앙의 개념화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이상 있는 것안에서 바둥거리지 말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빛의 속도는 초속 30 킬로입니다. 1 동안에 지구둘레를 일곱바퀴 반을 돈다고 합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 가는데 8 19 걸린다고 합니다. 이세상에서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의 불신앙으로 인간의 고집으로 인간의 감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게 비추는 불기둥에 의해 인도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주님의 영광의 빛이 목동들에 의해 주위를 비추었습니다. 빛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었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나 목적에 부합했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한가지 일을 완성하거나 종료할 때까지는 좋다라는 말을 쓰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좋았다는 원문에 뜻은 신하고 완벽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지칭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는 거기에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빚이십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신자는 세상의 빛입니다. 빛이 있게 되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빛의 반대는 어두움인데 개인주의 이기주 외인데 이제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사랑과 친교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남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어 놓으라고 하는 사람 치고 자신이 놓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사랑하기 차원에서-사랑할수 없는 차원-사랑 안하기 차원).

 

세상은 말씀으로 지어졌습니다. 세상은 말씀으로 다스려집니다. 세상은 말씀으로 움직이도록 기획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세상은 인간의 말에 따라 순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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