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인 스코트 팩은 “왜 인생이 꼬이고 살수록 힘들어지는가? 그 이유는 자기 인생에 대해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 하나 해 나가다 보면 감당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나에게 문제가 있구나 인정하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많은 재물보다 낫습니다. 성도에게는 재물이나 어떤 명예보다 이름이 더 중요합니다. 신자로서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는 날이 출생히는 날보다 낫습니다. 이 세상에서 좋은 명성을 쌓으며 살다가 죽는 것이 어리석고 우매한 가운데 고통과 고난을 당하며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명예와는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때로는 슬픔이 웃음보다 낫습니다. 슬픔은 사람을 진실하게 만듭니다.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영혼과 마음을 치료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 왜 그럴까요? 잔칫집에서 술을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돌아보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입니다. 지혜자는 초상집에 가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삶의 의미와 목표를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죽음 이후에 받게 될 심판을 기억하며 준비하게 됩니다. 우매자의 마음은 잔치집에 가서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합니다.
책망이 노래보다 낫습니다.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순간 마음이 상하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돌이키는 기회로 삼게 됩니다. 지혜자의 충고는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행위를 교정해 줍니다. 한편 우매자의 노래 소리를 들을 때에는 기쁜 것 같지만 솔 밑에서 가시나무가 탈 때에 요란한 소리를 내지만 빨리 타버리는 것처럼 이내 사그러지고 맙니다.
탐욕이 지혜로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흐리게 합니다(7절). 쉬운 지름길을 찾기보다는 꾸준함이 낫습니다. 어떤 일을 인내하면서 끝까지 잘 마무리하는 것이 시작만 해놓고 중도에 그만 두는 것보다 낫습니다(8절).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습니다. 어떤 시험이나 좌절이 온다고 해도 포기하지 말고 참고 견디면 주님께서 친히 이루어주십니다.
성급하게 분노를 터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가슴에 머무는 것입니다(9절).
어떻게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망각한 채 지나간 시절만 그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다고 믿고 감사하면서 소망 중에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흔히 과거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현재의 고통에만 생각을 집중시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가 현재보다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혜는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처럼 귀합니다. 재산과 함께 있을 때 더욱 빛나고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이 돈만 있다고 해서 가치있고 복된 삶을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있을 때 그가 소유가 많든 적든 가치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을 손해본다 해도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이 지혜자의 삶입니다.
물론 돈보다 지혜의 유익이 훨씬 더 큽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어리석고 멸망으로 가는 길을 막아주고 의와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줍니다(12절).
세상 만사는 인간의 계획과 의지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섭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곧게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13절).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형통한 날이 있고 곤고한 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날들을 병행하게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가 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날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장래의 일들을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형통한 날들을 육체의 기회로 삼아 나태와 방종으로 빠지면 안됩니다.
곤고한 날에는 깊이 생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곤고한 날은 역경과 고난의 때를 말합니다. 곤고한 날에는 자신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곤고한 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당하는 일들을 우리 일생의 최후의 날과 같이 여겨야 합니다(어거스틴).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는 것은 적당하게 의인이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기준을 절대적으로 옳게 생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순간적인 충동이나 분노에 따라서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무절제하고 악을 행하거나 지나치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하나님을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전도자는 중용의 길을 걸으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18절). 인간의 육신에서 비롯한 행위는 좌로나 우로 치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좌우로 치우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는 지혜는 성안에 있는 열 명의 용사들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 다 모아 놓은 것보다 참된 지혜를 가진 한 사란이 더 낫습니다.
선한 일만 행하고 절대로 죄 짓지 않는 의인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20절).
다른 사람들의 하는 모든 말에 신경쓰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평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말로 들릴지 모릅니다(22절). 당신도 가끔 다른 사람을 저주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칭찬과 격려의 말이나 책망과 비난의 말을 잘 수용해서 더욱 성숙해 지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남이 나에게 욕하는 말을 듣고 지나치게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의인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지혜로는 이 세상 모든 것을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23-24절). 참다운 지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앞에서 인간 지혜의 한계성을 고백한 다음에 인간의 완악한 본성을 지적합니다(25절). 악한 여자는 만나면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합니다. 악한 여인의 유혹으로 벗어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데 있습니다(26절).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천 명의 사람 가운데 한사람을 찾았는데 남자입니다. 여자 가운데는 한 사람도 찾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창조하셨지만 많은 꾀들을 부림으로 범죄하게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29절). 우리는 지금 오염된 대기로 인한 미세먼지의 재앙을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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