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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6년 고난 주간 첫째 날

by liefd 2026.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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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청결 사건(마가복음 11:15-19)

 

“그럴 바엔 차라리 교회 가지 마라”는 책 저자인 밥 호스테틀러는 교회에 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교회가 되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교회가 된다는 것은 성경을 읽고 배우며, 예배와 기도, 세례와 교제, 금식과 구제같은 활동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교회가 된다는 것은 정체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된다는 것은 하나 되어 서로 의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종려주일에 군중들을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하신일이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여기서 성전이란 지성소가 아니라 이방인의 뜰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마지막 한 주 고난주간을 시작하시면서 성전 청결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당시에 절기를 지키려고 각 나라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찾아왔습니다. 희생 제물로 드려질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먼 곳에서 끌고 오다 보면 도중에 병이 들거나 상처가 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희생제물에 대해 불합격 판정을 내리면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허가를 받은 사람들이 특정한 장소, 이방인의 뜻에서 희생제물을 구입할 수 있는 특혜를 주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정한 뇌물을 상납하고 장소사용료도 포함된 금액을 산정해야 하기 때문에 폭리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먼 곳에서부터 와서 예배를 드리는 순례자들을 희생 제사를 위해 필요한 짐승, 나무, 새 포도주, 소금, 기름 등이 이방인들의 뜰에서 매매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은 명절 때마다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유대인들은 상대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위해서 편리를 도모하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지만 영적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것을 용납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오늘날 교회에서 바자회를 통하여 수익금으로 구제를 하거나 선교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상행위가 이루어진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당시에 해외로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던 일반화폐로는 성전세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많은 수수료를 지불하고 돈을 환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이러한 광경을 목격하시고 매매하는 자들을 내 좇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가진 것에 대해 손해를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돈을 뿌리거나 비둘기를 날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의 형식적인 희생 제사를 거부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7:10에 의하면 사람들은 도적질과 살인, 간음, 거짓 맹세, 우상숭배를 일삼으면서도 여호와의 전에서 제사를 아무렇지도 않고 드렸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형식적인 예배에 대해서 질타합니다. 이사야 66 3-4절입니다.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기뻐하며 마음의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그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쁨을 추구하였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과격하셨을까요? 당시의 성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굴혈로 변질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예배는 공허하고 부패와 분쟁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흡사한지 모릅니다. 기독교 단체에서 이권개입과 폭력과 분쟁이 난무하는 모습으로 인해 교회가 세상에서 역할을 이미 상실한 같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당시에 성전이 기도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곳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성전이 아니라 부패의 온상이며 위선과 욕심의 투기장이 되고 장사꾼의 무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를 구하는 길은 강도의 굴혈을 만든 것을 회개하고 교회를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했지만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인기나 이익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로 인한 충격, 신앙의 편리주의로 인해 영적인 좋은 유산을 다 내려놓고 있는 모습, 예수님의 채찍을 들고 휘두르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교회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교회를 이용하면 안됩니다. 문제의식을 갖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청결 사건을 바라보면서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고 한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2:17).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자가 됩시다( 1:24). 고된 훈련 같은 기도를 그만하고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성경 읽는 것 그 자체보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기회로 삼읍시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의 삶을 나눕시다. 의무적으로 봉사하지 말고 은사를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깁시다.  어떠한 경우에도 도와주는 자리에 서지 말고 사랑으로 섬기는 자리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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