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나타난 젊은 청년과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그동안 솔직히 어떤 것을 느꼈습니까? 재물을 다 버리고 나를 쫓으라는 예수님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까? 얼마든지 재물을 잘 활용하면 좋을텐데 구태여 계산을 다 처분할 필
요가 있습니까? 오늘날도 말하면 교회에 헌금도 많이하고 선교도 하고 구제도 하고 좋은 일하려면 돈 없이 됩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젊은 청년은 사실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나이에 재산도 많이 모았고 독실한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신앙의 장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잘 믿어보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더구나 그는 영생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과연 내가 구원을 받았는가? 어떻게 하면 내가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나 자신의 신앙에 대해 한편으로는 안심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상당한 불안을 느끼면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오늘날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여러가지 이유로 미루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 바빠서 그런데 사업의 기반을 잡고 나면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다는 이유를 대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직은 정리할 것이 너무 많아서요. 너무 젊기 때문에 좀 더 누릴 것 누리다가 교회 나올께요?
게다가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이야기 할만큼 겸손한 청년이었습니다. 더구나 영생의 문제에 대해 자신이 없음을 고백할 정도로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영생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규칙이나 형식적인 계명을 준수한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십계명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강조한 1-4 계명을 뒤로 한채, 인간관계를 다룬 5-10 계명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부자 청년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한채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의무에 대해 충실하려고 노력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되지 않은채 인간의 관계를 강조하면 신앙 자체가 무거운 짐이 되거나 매우 부담스러운 것 이 되고 맙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기만 하면 사람과의 관계도 잘 유지되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부자 청년은 율법 준수에 대해 자신 만만하게 대답했습니다. 마 19:20절에는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나이까? 부자 청년은 자신의 부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21절).
물론 부자 청년의 신앙은 인정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앙이 좋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내 신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신앙이 좋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지 청년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라는 답변을 서슴치 않고 내뱉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율법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만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본래 율법은 자신의 부족을 깨달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믿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주시면 다 지켜 행하겠다고 큰 소리쳤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마치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다 행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율법은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비쳐 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십계명의 일부 가운데 다 지켰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다 지켰다는 말입니까? 그는 계명을 지키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잘 지켰다는 것을 마치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잘 지킨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부자 청년이 자신이 계명을 잘 지키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책임은 당시 종교적 지도 자들에게도 있습니다.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많은 규칙들을 내세워서 그것들만 잘 지키면 신앙이 좋은 것으로 잘못된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율법의 핵심을 놓쳐 버리고 세부 조항에 매여서 어떤 이는 신앙의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어떤 이는 율법이 지워 주는 무거운 짐에 눌려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당시의 종교적 잘못된 전통에 대해 신랄하게 공격했던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마치 올법을 어기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그들의 신앙에 혼돈을 일으키게 합니다. 예를 들면 일부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율법에 대해 더 완벽한 요구를 하셨습니다. 미워하기만 해도 살인한 것과 다름이 없다. 여자를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기만 해도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과 같다. 간음한 여인이 현장에 사 로잡혀 왔을 때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올법의 정신 이 자신의 부족을 깨닫게 하는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의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할 자가 아무도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내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받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고 했습니 다. 즉 자기 소유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영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부인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이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여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상담한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이 청년에게 있어서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재물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한 가저 비족한 것에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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