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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 주간 셋째 날

by liefd 2026.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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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견디는 자(마가복음 13:13), 김덕선 목사

 

이전에는 잘 버티고 참았는데 지금은 왜 그렇게 못 참을까요? 어떠 기고문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유익한 내용인 것 같아서 소개해 드립니다.

1970-1990년대는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의지형 시대라고 합니다. '잘 살아보세!" 라는 구호와 카리스마가 강력한 의지형 리더가 먹혔던 시대입니다.

1990-2010년대는 사고형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먹고 살기 보다 안전을 더 중요시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사고형 리도가 필요한 시대였습니다.

2010-2030년대는 감정형의 시대입니다. 때문에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서 더 이상 참지 못합니다. 타인의 감성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한 리더가 요구됩니다.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말세의 징조 가운데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천재지변으로 인해 펜데믹 현상이 일어납니다(8). 둘째, 가족 관계가 위기를 겪게 됩니다(12). 셋째, 교회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마가복음 1313절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왜 교회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는지 아십니까?

 

요한복음 1518, 19절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3절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사랑을 받으셨을까요? 미움을 받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는 사랑을 받으셨지만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종교적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다고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나 신자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까요? 사랑을 받을까요? 신자라고 하면서 세상에서 사랑을 받는 경우는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속해 있거나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입니다. 신자라고 하지만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방식대로 살아가다 보면 미움을 받게 됩니다. 신자는 잘못해서 비난을 받지 않도록 잘 해야 합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하는데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파하는데 장애가 될까봐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않았다고 토로합니다.

 

고린도전서 912절입니다.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신자가 비난을 받아서는 안되지만 미움은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알고 있는데 왜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을까요? 말세가 되면 사람의 미혹을 받아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신자에 대한 실망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거나 등한히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일부로 평판이 나쁜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 제대로 하려고 하는데 사람들로부터 미움 받아서 잘 해오던 것을 놓아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과거에 잘 한 것으로 안됩니다. 앞으로 잘하겠다는 각오만으로 안됩니다.

 

에스겔서 3312, 13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받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려 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당시에 유대인들은 자기 의를 구원의 요건으로 확신하고 조상들의 의가 자손들에게 전가된다는 그릇된 구원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된 구원을 가진 사람은 계속적으로 의를 실행합니다.

 

말세에 신앙 문제로 인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원수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코로나 사태에 믿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끝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우리를 어려움과 힘든 상황으로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이것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가 고난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끝까지 견딜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 314절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을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붙잡고 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고집할만큼 그들은 완고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완주를 해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끝까지 잘 마쳐야 합니다. 말세가 되어 가면 고통 당하는 때가 이르면서 사람들이 잘 참지를 못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불법이 성행하므로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집니다. 참기 어려워졌다는 것은 사랑이 식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참을 수 있는 힘은 사랑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참기 어렵다는 것은 사랑이 바닥이라는 신호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는 것으로 시작해서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끝납니다. 7절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밎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수치와 모욕을 어떻게 끝까지 견디셨을까요? 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견디셨는지 아십니까? 히브리서 122절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께서는 온갖 고통과 멸시를 당하시면서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은 십자가의 고통 후에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셨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아 기뻐하며 찬영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릴 것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견디셨습니다.

 

히브리서 123절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자신을 반역하여 거역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참으신 이유는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하다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칼을 뽑아서 말고의 귀를 베어버릴 때 예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주님을 생각하므로 이것까지 참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의 경주를 더 이상 계속할 힘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될 때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께 기도드릴 때 주님께서 참을 수 있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 상황에 도달하고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께서 끝까지 참을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윌리엄 버클레이는 피곤하여 낙심하게 될 위험이라는 이 단어를 아리스토텔레스은 결승 지점을 막 통과한 후에 숨을 헐떡이다가 땅에 쓰러지는 경우에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려면 시련을 당할 때에도 우리의 믿음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오래참아 주신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참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깨닫고 실천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이처드 필립스는 그의 저서 히브리서 강해에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락 문화에 빠져 무분별한 텔레비전 시청과 불건전한 문학, 부당한 영화에 엄청난 시간을 허비한다고 지적합니다. "이것이 내게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가, 방해가 되는가를 자문해야 한" 라고 합니다.

 

출세와 야망과 취미, 인간관계와 친구, 습관과 관심사도 장애뮬이 될 수가 있다고 경고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더 이상 경주할 수 없을 만큼 피관과 낙심이 찾아올 때 십자가에 못박히신 에수를 바라볼 때 끝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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