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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로 믿음(요한복음 17:21-23),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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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층 건물 앞에서 어떤 사람이 무거운 짐을 옮기느라 혼자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옆을 지나고 있던 한 청년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거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들을 때보다 오히려 그 짐은 더 꼼짝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알고 보니 엉뚱하게도 한 사람은 짐을 밖으로 끌었고 이 청년은 안으로 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스운 일 같지만 여기에 하나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무조건 힘을 쓴다고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이 같고 방향이 같고 뜻이 같고 믿음이 같을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생활이든 직장 생활이든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하나 되지 못하여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사회나 현대교회 안에는 점점 독특한 자기 이미지 실현, 자기주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벽들이 있습니다. 마치 서로가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가 된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가끔 북한에 관한 소식을 TV를 통해서 접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든지 마이크를 들이대면 친애하는 지도자 000이니 위대한 하늘의 별 000 동지께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입을 벌리면 같은 소리를 아무리 외쳐도 그런 것을 하나 되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유와 사랑이 보장되고 목적과 방향과 뜻과 믿음이 같을 때 비로소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과 같은 당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 되는 문제입니다. 요한복음 17:21-23절입니다.“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나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하나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되는 비결은 믿음의 일치, 중심의 일치가 될 때 가능합니다. 어떤 이해와 사랑 이전에 믿음의 통일이 없으면 하나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치의 모델은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입니다. 삼위는 각각 다른 위를 갖고 계시지만 일체가 되십니다. 이것을 삼위 일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나 직장, 가정에서 하나 되지 못하고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는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근본적인 믿음의 일치가 없을 때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 아무리 대화로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고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의 동질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음의 분량과 믿음의 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서로 하나 되기 위해선 큰 부분에 있어서 믿음의 일치와 통일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온전한 믿음과 사랑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추구하는 목적이 일치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강압과 속박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평생을 함께 살았어도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살았다면 그것은 하나 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 되겠다고 결심을 해도 믿음의 일치를 이루고 난 후에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70여년이 넘도록 하나 되자고 애타게 소원했지만 아직도 남과 북은 갈라져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하나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정치의 통일, 경제의 통일, 도덕의 통일, 가정의 통일, 교회의 통일 모두 하나 되는 과제를 안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자의 경우도 하나가 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경우에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앙고백을 함께하는 신자들이 여전히 분열되고 나눠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신자들이 서로 대립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교만 때문입니다. 신자가 하나 되는 것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병이 교만입니다. 교만하면 내가 하나님이 되고 내가 우상이 됩니다. 내가 심판자가 되고 내가 절대자가 됩니다.

 

창세기 11장에 바벨탑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사건 후 시날 광야에 도착한 사람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4절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하나님은 그들의 교만을 보시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어 사방으로 흩어버리십니다. 그러므로 분열은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신자의 경우에 하나 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자기 우월감입니다. 나는 특별하다는 특권의식 때문에 하나 되지 못합니다. 자기우월주의는 하나 되는 것을 파괴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물론 사람은 본래 다른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차이를 틀렸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기는 우월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모두가 똑똑하고 모든 사람이 잘났다고 하면 공동체는 깨어집니다.

 

하나 됨을 파괴하는 심각한 병은 자기 중심성입니다. 자기를 너무 사랑하고 자기 의견과 생각을 너무 고집하고 자기 생활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 되지 못합니다. 자기의 경험과 자기 욕심과 자기 자랑에 얽매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회생활도 그렇습니다. 너무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하면 하나 되지 못합니다.

 

빌립보서 2:2-5은 교회에서 하나 되는 중요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보다 나를 앞세우면 안 됩니다. 주님의 생각보다 내 생각이 너무 강해도 안 됩니다.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할 때 교회가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내 주장을 너무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진리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불변의 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것에 대해 자기 생각을 고집하면 사람이 따르지 않습니다. 외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손해 보지 않으려고 자꾸 손을 안으로 당기면 누구하나 거들어 주지 못합니다. 너무 강하게 사는 것은 피곤합니다. 너무 완벽하면 그것이 올무가 되기 쉽습니다. 사람이 약간 부족해야 사람이 붙는 것이며 사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낮아짐을 통해 유익하게 되는 시너지 효과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빌립보서 2:7-8절입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은 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신자를 하나 되게 하고 교회를 세워 가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모데후서 1 16절입니다.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평신도 오네시보로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자주 사도 바울을 유쾌하게 했습니다. 새 번역에는 “그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실망과 좌절에 빠졌을 때 활력과 용기와 생기를 불어 넣어준 사람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이런 오네시보로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면서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신자 가운데도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정말 존경하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삶의 자세가 반듯하고 늘 도전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없이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을 보게 되면 감동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누구와 친구가 되고 싶습니까?

 

단점을 말하고 고민에 시달리고 우울해 하는 친구는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언제나 용기와 힘을 북돋워 주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생수가 공급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고 희망을 불어 넣을 때 교회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을 내 곁에 보내주소서! 저는 약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런 성도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용기를 북돋우어 주고, 생기를 주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정말 살맛나는 일입니다. 좋은 믿음의 친구와 함께 한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용기를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행복 중의 행복입니다. 오네시보로가 바울에게 바로 그런 친구였습니다.

 

바울이 1 2 3차 선교여행, 그리고 교회 세우는 사역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노하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실패와 절망, 좌절에 부딪칠 때마다 언제나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런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축복된 주의 사역을 하면서 친구를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일을 하는 것보다 사람을 얻는 것이 더 소중합니다.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해 주는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오게 됩니다.

 

신자들이 명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때로는 본의 아니게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목사님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목사님에게 믿음의 빚을 진 자이며 사랑의 빚을 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그래도 기도하고 가정을 걱정하고 위해서 기도해 주신 분이 그분입니다. 좋은 믿음의 친구였고 예수 믿기 때문에 만난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를 잃지 않는 것이 예수 잘 믿는 신자입니다.

 

고린도전서 16:17-18입니다.“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참으로 감동적인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입니다. 마음을 시원케 해주고, 용기를 돋아주며,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나타나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고 시원스럽게 일이 풀리도록 해주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자는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며 서로의 도움 속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늘 강하고, 늘 성령 충만하고 늘 은혜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믿음의 친구가 필요합니다. 용기를 주는 친구, 생기를 불어넣는 친구,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는 믿음의 동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이었던 엘레나 루즈벨트의 일화입니다. 그녀의 자서전을 보면 눈물 없이는 읽지 못할 정도로 얼룩진 일생임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10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뒤 고생을 하며 자랐고 한번도 풍족하게 돈을 써 볼일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돈에 대해 말하길 ‘돈은 눈물과 땀으로 그려진 종이’라고 표현할 만큼 고통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20살 때 루즈벨트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젊고, 패기 있고, 장래성이 있는 남자인 루즈벨트,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관절염에 걸려 다리가 말라버리는 불행을 맞게 되었습니다. 루즈벨트는 하는 수없이 휠체어에 쇠붙이를 대고 다리를 고정시켜 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즈벨트가 엘리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불구자가 되었는데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하오?

 

엘리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내가 그 동안 당신의 다리만 사랑한 줄 알았나요?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인격과 당신의 삶이 예요. 그리고 하나님도 당신을 사랑하고 계시잖아요.

 

이 말은 다리 불구로 열등 의식과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루즈벨트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게 되었습니다. 1932년 그는 다리가 불구임에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1936년 재선, 1940 3, 1944 4선까지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미국 대통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불구의 남편에게 용기와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던 엘리나는 루즈벨트의 영원한 아내이기도 했지만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인격의 소유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파헤치고, 실수를 질책하고, 단점을 꼬집어 내는 것은 그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기에 하나 됨이 있고, 평안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 16절에 보면 바울이 오네시보로를 칭찬하는 내용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울은 쇠사슬에 매여 죄수로서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이런 바울에게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바울의 진실을 평가해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인간관계는 한사람의 인간됨을 순수하게 인정해 주는 일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준다는 것처럼 용기를 주는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모습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을 그대로 이해해주고 알아주시는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보고 그 여인의 고민을 이해하며 죄인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을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고민하는 니고데모의 마음의 공허감을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에 집착하고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받는 삭개오를 이해해 주셨습니다. 동전 두 푼을 헌금 통에 넣는 과부의 심정과 신앙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인정받고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열망입니다. 인간은 어느 곳에서나 소속감을 갖기 원하며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교회이든 가정에서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 입장이나 기준에 맞는 것만을 고른다면 얼마가지 않아서 실증이 나고 사람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어떤 음성이 들려졌습니까? 누가복음 3:22절입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한다는 인정과 너로 말미암아 기쁘다는 확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 먼저 용기를 주셨습니다.

 

신자가 교회생활 가운데 가장 약한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의 신앙, 인격, 자질을 인정하지 않는 점입니다. 이제부터 서로 먼저 인정해주어야 서로 힘을 얻습니다. 나의 신앙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도 꾹 참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관대하고 너그러운 분위기 속에서 일하는 재미가 있고 소속감이 더욱 강하게 살아나는 것입니다. 가슴에 품을 수 있고 사랑으로 껴안을 수 있는 그런 곳에 교회의 하나 됨과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 17절에서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이렇게 칭찬하고 있습니다.“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이런 사람이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가정과 직장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아픔을 당하는 사람에게 찾아가 그 아픔을 나누는 따뜻한 사람이 그립습니다.

 

우리는 받으려고만 하지 베푸는 것에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삭막한 광야에서 사는 것처럼 메말라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바뀌어야 합니다. 부지런히 아픔을 당하는 사람을 찾아가십시오.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십시오. 서로 염려해 주고 사랑해 주는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해 집니다.

 

오늘날 오네시보로와 같은 성도가 교회에 절대로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고, 용기를 북돋워 줄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사람, 고통 받는 사람을 염려해 주고, 자기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 헌신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런 오네시보로가 바울 곁에 있었기에 바울의 전도여행이나 교회를 세우는 사역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성장하고 축복된 교회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면 바로 이런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오네시보로와 같은 믿음으로 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서로 베풀고, 사랑하고, 용기를 주고, 이해하고, 염려해주면 어떤 얼음도 녹아버립니다. 상대방이 이해할 때까지 그 모습을 보이십시오. 여기에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하나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사랑을 깨달을 때까지 이런 삶을 살아가십시다.

 

어느 청년이 전쟁에 나가 두 눈을 잃었습니다. 그는 장님이 되었다고 원망하며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대에서 붕대를 풀기 전에 의사가 말하기를 다행히도 한쪽 눈은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희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한쪽 눈만 있으면 애꾸눈이 아니냐고 하며 원망을 하며 소리칩니다. 그가 불평 속에서 붕대를 풀자 눈앞에 제일 먼저 보이는 얼굴이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놀랍게도 어머니의 한쪽 눈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제야 이 청년은 자신의 눈 하나가 어머니의 눈인 것을 깨닫고 어머니를 껴안으면서 깊이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알 때까지 묵묵히 사랑을 보입시다. 오네시보로처럼 바울에게 용기와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자가 됩시다. 어느 곳에서든지 연약하여 넘어지는 자를 찾아가 일으켜주는 자가 됩시다.

 

우리는 주안에서 하나입니다. 하나로 믿음을 가지고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의식과 믿음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크리스찬의 가정입니다. 하나 됨을 파괴하려는 사탄을 물리치고 믿음으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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