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 알고 당하는 것이 힘들까요, 모르고 당하는 것이 힘들까요? 갑자기 당하는 것이 힘들까요? 서서히 당하는 것이 힘들까요? 알고 당하는 것이 힘들까요? 모르고 당하는 것이 힘들까요? 자기가 잘못해서 당하는 것이 힘들까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당하는 것이 힘들까요? 배신당하는 것이 힘들까요? 인정받는 것이 힘들까요? 인정받는 것이 힘들까요? 계속 유지하는 것이 힘들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을 다 체험하신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26장 56-68절에서 유대인들에게 사형판결의 선고를 받고 갖은 모욕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11-26절에서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최후 공판을 선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정식적인 판결이 선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채찍질 당하셨습니다. 가죽채찍에 납덩이를 달거나 큰 못과 뼈들을 달아서 등과 어깨와 얼굴등을 내리치면 피법벅이 된 찢어진 살갗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론몰이로 그런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의 사건에 대해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할 때 그들이 뭐라 하시는지 아십니까?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25절).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적으로 이러한 피의 대가를 치루게 됨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입술의 권세에 따라 사람이 살고 죽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미 탈진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채찍질에 고통을 당하시고 육체적으로 많이 맞으셨습니다. 정신적으로 수치와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본문 27-31절까지는 최고의 희롱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보여줍니다. 총독의 군인들이 총독의 관저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예수의 옷을 벗기고 자주색 옷(왕의 의복을 상징)을 입혔습니다. 가시로 관(왕의 금관을 상징)을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는 오른손에 갈대(왕의 홀의 상징)를 들게 하고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이러한 퍼머먼스는 유대인의 왕이 이렇게 끝난다는 수치심을 자아내는 것입니다. 어떤 군인들은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칩니다.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다시 예수님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갑니다.
예루살렘 성밖으로 나가는 길에 그들은 구레네 시몬을 만나 그 사람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 빌라도의 재판석에서 골고다까지의 거리는 팔 백미터 정도였지만 십자가를 지고가는 길은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컨디션은 그 전날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 기도 하시고 채찍질 당하시고 갖은 매를 맞으시고 탈진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하시므로 우리가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사 53:5)누구 때문에 그러셨을까요? 바로 당신과 나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채찍질하고 조롱하고 멸시하고 때리는 현장에 바로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드디어 골고다, 곧 해골의 장소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십니다. 기독교는 고난을 막아주는 보험증서가 아닙니다.
십자가 처형은 시간을 가장 오래 끌면서 사람을 죽이는 형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가로대 위에 눕혀졌고, 손목 윗부분에 쇠못을 박아 나무께 고정시킵니다. 그 다음 가로대를 도르래로 들어올려 세로 기중 못으로 고정시켜 묶었습니다. 그리고 발은 한 발 위에 다른 발을 올려놓고 그 위를 못을 박았습니다. 가슴이 죄어드는 것을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 극심하기 때문에 일종의 마취제인 쓸개탄 포도주를 에수님께 드리지만 맛을 보시고 그것도 거절하십니다.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그들이 나누어 가집니다.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패가 붙어 있습니다.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 자체가 수치심의 극치입니다.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고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고 폭언합니다. 당시에 종교적 지도자들도 함께 희롱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지만 자신은 구원할 수 없도다. 십자가에서 내려 와 봐라. 하나님을 신뢰하니 그가 구원하실걸. 심지어 십자가에 봇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을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 때 가장 어려운 순간이 이제 포기하고 싶고 내려오고 싶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는데 불구하고 주님은 끝까지 참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많이 힘든 순간이 있지만 십자가의 주님 바라보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하실 때 시간이 정오 12시부터 오후 세시까지입니다. 가장 밝은 시간에 온 땅에 칠흙같은 어두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제 9시쯤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단절의 고통을 시편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를 찾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졌습니다. 이 휘장은 18미터 높이로서 두꺼운 천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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