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우리는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회전목마에 붙어있는 차는 아무리 핸들을 움직여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항상 같은 방향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시간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장소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대상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새로운 것을 주시리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한가지 방법만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분은 병을 고쳐주면 예수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믿기만 하면 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종교라는 밀림속에 들어가서 예수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정성을 다하다가 예수님을 멀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해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기이한 방법으로 나를 사랑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농부의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때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곡식에 따라서 수확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불변의 원칙은 고수하되 변하는 환경에는 지혜롭게 잘 대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나라를 다스리시는 방법과 교회와 개인을 다루는 방법을 농부의 하는 일을 통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채택된 방법은 정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가장 적당한 방법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방법은 시간에 따라 배려하십니다 (24절)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는가? 그 땅을 개간하며 고르기만 하겠는가?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농부는 경작 과정에서 밭을 갈 때와 씨를 뿌릴 때와 추수할 때를 조심스럽게 판단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를 분별하여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성품을 훈련시키십니다. 즉 밭을 일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묵은 땅을 기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의 생애에 쟁기질을 하는 것 같은 시련을 주십니다. 밭을 가는 고통과 눈물나는 괴로움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챙기질은 계속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쟁기질을 당하였읍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고통과 슬픔과 훈련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좋은 품종이라 하더라도 토양이 좋지 못하면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없습니다. 남들과 비교할 때 아무리 우수한 재능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품으로 바뀌지 않으면 그의 쌓은 모든 공적은 한낱 휴지에 불과합니다. 마음의 토양이 제대로 일구어지지 않으면 어떠한 수확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내 자신의 노력이나 수양으로 인해 마음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거듭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안식년에 땅을 쉬게 하는 제도는 이 기간 동안에 땅의 체질을 바꾸어 줌으로써 땅을 비옥하게 하고 모든 병충해를 막아주는 제도입니다.그러나 인간은 조급함으로 인해 1년 쉬면 당장 굶어 죽는 줄 알고 계속해서 곡물을 재배하기 때문에 갖은 병충해가 기성을 부리고 이를 막기 위해 인체에 해로운 농약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땅을 가는데 시간을 다 보내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나쁜 습관을 버린 후에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의 훈련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에 이미 시작됩니다. 마음의 훈련은 때때로 여러가지 아픔을 동반합니다. 이 훈련을 제대로 받아들이면 유익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면 우리의 성품이 오히려 더 비뚤어집니다.
둘째, 하나님의 방법은 장소에 따라 배려하십니다 (25절)
농부가 씨뿌리기에 알맞도록 땅을 만든 후에는 그 적합한 토양 위에 씨를 뿌리야 합니다.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했습니다. 자기 밭이란 표현은 밭에 적함한 씨앗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농부는 씨를 되는 대로 뿌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씨 뿔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씨를 너무 많이 뿌려서 그럴 수 있습니다. 또한 혼자서 일하기에 너무 넓은 땅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어째튼 밭에 적합한 씨앗이 있게 마련입니다. 진흙 땅에 맞는 곡식이 있고, 모래 땅에 맞는 곡식이 따로 있습니다. 신중한 농부는 씨의 특성에 따라 가장 좋은 위치에 뿌립니다. 소회향과 대회향은 양념으로 사용되는 작은 씨앗이므로 덜 가치있는 곳에 뿌리게 됩니다. 한편 소맥과 대맥은 중요한 곡물로서 주요한 장소에 심게 마련입니다.농부는 항상 최대의 수확을 거두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가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필요한 곳에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 [지도자의 유년시대]에서 인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뉘우치기 위하여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뉘우치기 위한 인생은 그것은 무언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 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진멸되지아니함이니라.”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성경에는 또한 한밭에 다른 종자를 섞지 말라고 했읍니다 (레 19:19). 본문에는 다른 두 종류가 섞이거나 혼합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여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니다.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요, 나아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혼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빛과 어두움이 어찌 함께 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떻게 함께 하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고후 6:14-16).
다른 종자를 섞지 말아야 할 일차적인 의미는 재래종은 웬만한 가뭄에도 견딜 수 있지만 잡종은 저항력이 약해서 잘 적응하지 못합니다. 너희가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 1:6).
셋째,`하나님의 방법은 타작에 따라 배려하신다 (27-28절)
유대인의 타작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단순히 막대기를 가지고 곡식이 떨어지도록 줄기를 때리는 것입니다(삿 6:11)
소회향과 대회향은 씨가 너무 작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② 동물 들의 발 밑에 곡식을 두어 짓밟도록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인은 소가 곡식을 떠는 동안 그 곡식을 주워 먹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신 25:4).
③ 곡식 위로 썰매를 끄는 것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썰매에 돌이나 단단한 재료를 달고 그것을 모는 사람이 썰매를 타고 있는 동안 당나귀나 소를 끌고 다녔습니다(삼하 24:22).몇몇 썰매는 끌기 위해 바퀴가 달려 있었습니다.소맥과 대맥과 같은 곡식에는 더 큰 힘이 요구 되기 때문에 그것을 도리깨로 털어냅니다. 그 위를 왔다 갔다 하는 쇠뭉치가 그 곡식을 털어냅니다.그러나 늘 떨기만 하지 않고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밝게 할지라도 부수거나 으깨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도리깨질이 있습니다.
어떤 것에는 자칫 잘못하면 손상을 입게 되고 어떤 것은 껍질조차 벗겨지지 않기도 합니다. 따라서 농부는 주위를 기울여 타작 기술을 도입합니다. 탈곡이란 단어는 영어의 환난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알곡이 껍질로부터 벗겨져서 분리되기 까지는 치루어야 할 대가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알곡을 분류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일반적으로 네가지 상이한 측면에서 나타납니다.
다윗의 경우와 같이 잘못에 대한 벌로 주어지는 경우, 욥의 경우와 같이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경우, 아브라함의 경우와 같이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한 경우, 바울의 경우와 같이 그릇된 상태를 예방하기 위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같이 신자에게는 더이상 응징과 같은 형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교정이 수단인 징계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냉담하거나 반항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벗겨지는 아픔이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기 위한 수단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너무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매를 너무 오래맞은 탓으로 영원히 매가 계속될 것이라는 불안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오래 때리셨으므로 머지 않아 곧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징계하실 때그 방식이 각각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릇되고 폐쇄된 고정관념 때문에 죽음의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만일 인간에게 아픈 감각이 없다면? 못을 밟아도 아프지 않아서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나병환자). '이제 죽고 싶다'는 말보다는 감사의 말을 하십시오. 신곡(divine Comedy)은 불행을 통해서 행복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언제까지 땅만 갈고 있겠는가? 언제까지 씨만 뿌리고 있겠는가? 언제 추수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기도는 자식을 돌리는 하나님의 손길이 되고, 어머니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자식에게 뿌리는 씨앗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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