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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1-2),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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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모두 66장으로 되어있는데, 1-39장은 심판의 멧세지인데 반해 40-66장까지는 회복과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읍니다. 1-39장은 구약을, 40-66장은 신약을 다루고 있읍니다. 구약의 맨 마지막 부분은 저주로 끝나는 데 반해 신약의 맨 마지막 부분은 은혜로 끝납니다. 오늘 본문 40장은 바로 심판의 메시지가 끝나고 다시 은혜와 위로의 메시지가 시작됩니다. 40장에서 66장까지 위로의 메시지가 13번 나타납니다.

 

 

 

1. 누구를 위로해야 할까요?(1-3절)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위로하라, 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치도록 말하라. 어머니가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하듯이 부드럽고 격려하듯이 하라. 이제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이 끝났고, 죄 용서를 받았느니라.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받았다고 하라(1, 2절)

 

즉 고난의 날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환난의 이유가 제거되고 환난의 목적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죄값은 다 치루어졌고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됩니다. 마르틴 루터가 사단과 나누는 대화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가 이런 일들을 했지, 마르틴 루터?" 그렇다고 루터가 대답했읍니다. 그러면 당신과 같은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라고 사단이 다그쳤습니다. 그것이 전부인가? 라고 루터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라고 사단이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자기손에 든 긴 목록에서 더 많은 죄를 읽어내려 갔습니다. "내가 이런 일들을 했었지? 그렇다, 그것이 전부인가? 이같은 상황은 마르틴 루터의 모든 죄를 낭독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게 전부다. 그래도 네가 하나님의 종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결국 지옥불에 떨어질 죄인일 뿐이다"라고 고 사단이 외쳤습니다. 그러자 루터가 "네 말이 맞다. 나는 그 목록보다 훨씬 더 큰 죄인이다. 하지만 네가 잊은 것이 하나 있구나. 그 목록 맨 위에 빨간 글씨로 이것을 써넣어라."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먼지 내 백성들을 위로하라. 선지자들의 역할은 백성들을 거듭거듭 위로하는  것입니다. "위로하라"는 것은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로"(comfort)란 단어는 적극적이고 강력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 다. "포르트"(fort)란 힘을 의미하는데 미국의 도시중에는 포트워스, 포트롤린스가 있습니다. 포르트란  본래 적으로부터 위험스러운 지역 가운데 있는 요새를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자신의 강력한 힘으로 임하실 때 진정한 위로가 주어집니다. 우리는 언제 위로를 받게 됩니까? 누군가 나와 똑같은 형편에 놓여 있을 때 위로를 받게 됩니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줄때 위로를 받게 됩니다. 누군가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때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위로는 일시적인 것일뿐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진정한 위로, 깊은 위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데 있습니다. 즉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진정 한 위로가 됩니다. 먼저 우리가 남을 위로하기 전에 위로를 먼저 받아야 합 니다. 위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위로,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의 위로,  일평생 나를 변호해주시는 성령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2.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요?(3-7)

 

첫째, 이 위로는 복음의 메시지를 통해서 주어집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외치는 소리입니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가리킵니다. 참된 위로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주어집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6-17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 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읍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그 원인으로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그 원인의 결과로 볼 수 있읍니다.

 

구약 시대에 옛언약은 그 약속들과 축복들이 일시적이고 땅위에 속한 것인데 반해, 신약시대에 새언약은 더 좋은 소망과 더 좋은 약속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더 영속적이고 불변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감정의 분위기나 느낌들은 날씨만큼이나 변덕이 심하기 때문에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위로란 말은 비참함을 완화하는 것인데 그 힘이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외부에 있습니다. 위로는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부터 발한 것이며,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에 기초한 것입니다. 믿음이 객관적인 소망을 붙잡을 때에 영혼속에 강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증에 위로라'(119:50).  

 

둘째, 그러한 마음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는 준비 작업이 필요합니다.

 

골짜기와 같은 음흉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산과 같은 교만한 생각도 낮추어야 합니다. 고르지 않은 심리도 정리되어야 합니다. 험한 곳과 같은 까다롭고 각박한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편견과 부패한 근심과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철된 회개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합니다. 진정한 위로는 문제를 그대로 보이는데 괜찮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속 사람이 능력으로 강해져야 합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이든, 외로운 사람이든, 방황하는 사람이든 모든 필요에 대한 해답은 자신으로부터 시선을 빼고, 남으로부터의 시선을 외면하고, 다시 사신 승리의 주님께 시선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세째, 위로는 받아들이는 자세에 달려있습니다.

 

먼저, 위로는 변하게 되어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둘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듭니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오늘의 자랑이 내일의 수치로 끝나게 됩니다. 오늘의 수치가 내일의 자랑으로 이어집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성공의 시간 차이입니다. 소유에 대한 태도 차이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변하게 되어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또한 위로는 변하지 않는 하나 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주어집니다. 6절에 말하는 자의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를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소리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믿을만한 소식통은 GBS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뉴스가 있지만 진정한 위로를 주는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소리를 들어보라 들어보라 들어보라 그 이름 믿는 자 복받으리 어서 곧 일어나라 지금 오라 지금 오라 자비한 주께로 지금 곧 나아오라".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조차 닿지 않을 것같은 절망에 빠지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치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때 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진정한 위로는 변하지 않는 소식을 붙드는데 있읍니다. 어떤 분이 인생의 불안과 두려움의 문제를 가지고 의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그 환자의 질병이 영적인데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어느 목사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환자에게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는데 누구도 나를 해치지 못한다는 말씀을 자기에게 주신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서 모든 불안과 두려움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시편 94:18-19절에도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라고 했읍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13:5-6).

 

요즈음 어떤 의사들은 정신적으로 불안해 하는 환자들에게 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 진정한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와같이 위로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남을 위로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대방의 현명한 결정이나 행동에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착각은 한번 하기 시 작하면 커트라인이 없어진다고 하는 유명한 말이 있읍니다. 먼저 칭찬할 것을 하고 건설적인 태도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히 상냥하게 말해야 합니다. 물론 너무 긁으면 피부를 상하게 하고 말이 너무 많으면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러시아의 속담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위로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로의 말이 오가야 합니다. 위로의 인사가 오가야 합니다. 위로의 마음이 오가야 합니다.

 

박두진의 가원이라는 시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당신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되게,

 

당신의 피홀림이 우리의 피흘림되게,

 

당신이 찢어짐이 우리 의 찢어짐되게,

 

당신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되게,

 

당신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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